저시력 162

telnet 기반 넓은마을의 퇴장을 기억하며 2

오늘은 대전맹학교 입사 후 초기 컴퓨터 담당 교사로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겪은 애로와 서버 구축을 통해 학교 자체로 BBS를 운영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93년 일반 시각장애인들에 비해 대학 시절부터 컴퓨터와 모뎀을 통한 PC통신에 익숙해져 있던 저는 졸업 후 대전맹학교로 발령을 받아 처음 교장선생님과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교장선생님께서는 학교 내에 비장애인 컴퓨터 교사는 있지만 시각장애 당사자의 눈높이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교사가 없어 어려움이 많으니 저에게 원래 교과 시간을 줄여 컴퓨터 교과를 지도해달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이런 이유로 저는 부임하자마자 원래의 전공 분야 대신에 뜻하지 않게 자격증 하나 없이 컴퓨터 교사로 변신하여 학생들과 컴퓨터실에서 온종일 씨름하는 교사가 되었..

정보마당 2024.06.24

telnet 기반 넓은마을의 퇴장을 기억하며 1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정보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온 넓은마을이 마침내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간 넓은마을은 1990년대 전화선을 통한 모뎀 서비스를 시작으로 인터넷 도입에 따라 telnet, 웹과 telnet 연동 방식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면서도 끈기있게 3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온 장수 통신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 끝에서 저도 일부나마 몸을 담았던 적이 있는 사람으로 누구보다 시원 섭섭한 감회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telnet과 웹 연동 방식의 '넓은마을'의 퇴장을 앞둔 오늘, 지나간 세월의 흐름을 짧은 지면으로나마 보존하고자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사이버 통신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 대학 입학을 하던 때였습니다. 1980년대 ..

정보마당 2024.06.23

시각장애인과AI의 역설

모두들 chatgpt와 ai로 인한 사회적 충격에 놀라와하고 있으실 것 같습니다.오늘도 한 신문에서는 전직 ai회사 직원들의 ai로 인한 인류 멸망에 대한 위기 토로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IT썰] AI 만든 직원들의 섬뜩한 경고…"인류 멸망 시킬지도"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60507523823538 그런데 최소한 시각장애인에게 ai는 기회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있습니다.ai가 가진 무궁무진한 역할 중 하나로 눈앞의 화면 묘사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는데요.앞으로는 기존 시각장애인용 이미지 묘사앱들이 필요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단순히 피사체의 종류를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다소 문학적인 수사를 동원한 극히 인간적인 수려한 문장으로 설명해주는 ..

단상 2024.06.06

목단

비가 그치고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돌다가 작은 햇살 사이로 피어난 모란꽃을 집사람이 찍습니다. 너무 너무 예쁘다는데 실명하기 전 도회지에서만 자라다보니 이런 좋은 꽃을 미처 보지 못한게 아쉽기만 합니다. 문득 집사람이 목단이라고도 부른다는 말에 어디서 들었지 생각해보다 어릴적 할머니와 담요를  펼쳐놓고 치던 민화토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유치한 색감의 화투판에서 보던 목단이 이 모란을 의미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그 그림보다 훨씬 예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기상이변에 살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어쩌면 우리 인간들보다 이 자연만큼 한결같이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석들도 없습니다.

일상 스케치 2024.05.06

헬렌켈러의드레스

올해도 어김없이 장애인의 날이 저물어 갑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은 일년 중 딱 하루만 기억되는 이런 세상에 힘들어 하곤 합니다. 요즘같은 날이면 신문 기사나 유명 정치인들의 덕담 속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 하나가 헬렌켈러입니다.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익숙해진 그녀와 그녀를 교육한 설리번의 일화와 삽화는 지금도 유년시절의 기억속에서 생생하기만 합니다. 특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향한 그녀의 멋진 조언은 언제나 감동 그 자체로 우리에게 울림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과연 헬렌켈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헬렌켈러가 재활을 위해 흘린 땀방울과 보고 듣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단상 2024.04.20

내가 준비하는 '소풍'을 설렘으로 만들고 싶다면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생각과 다르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는데요. 별 것 아닌 일임에도 누구의 무게가 더 무겁고 누구의 일이 더 큰지를 가르는 소모적 논쟁으로 온통 하루가 저뭅니다. 그러다 허탈한 마음으로 문을 나설 때면 답도 모른 채 오늘 내가 무엇을 한 것일까, 이게 대체 내게 어떤 값어치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 전부터 '소풍'이라는 영화에 대한 리뷰와 몇몇 인터뷰를 접하며 왜 사람들이 저리도 일개 영화를 입에 오르내리는지 궁금해 했었습니다. 특히 나문희 배우의 애정어린 영화평을 대하며 소위 메이저 또는 화려한 cg와 헐리우드 영화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소자본, 그것도 노년기에 접어든 세명의 이들이 주연인 영화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황금같은 선거일..

군자란과세월

요 몇년 봄꽃들이 기상이변으로 한꺼번에 모두 피어 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봄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미 피어서 지기 시작하고도 남을 벚꽃들이 몽우리만 겨우 맺은 채 요지부동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베란다에서 30년 넘게 한결같이 봄을 알리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 서울 부모님댁에서 넘겨받은 군자란이 바로 그 녀석들인데요. 최소 30년이 넘은게 분명한데 부모님으로부터 받을 때도 풍성한 녀석들이었던 걸 보면 도통 나이를 모르겠습니다. 예네들은 도대체 세월을 먹기는 하는 걸까요.

끄적끄적 2024.03.31

GPT와 작은 두려움

조금 전 American Printing House for the blind 페북 글에 연결된 링크를 타고 들어갔더니 새로운 전자점자기가 출시되어 보급 중인 것 같습니다. 보조공학과 전자점자기는 평소 관심사이기도 하여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과 사진은 아래 링크로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고 저는 관련하여 최근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번역 수준에 대해 잠시 이야기할까 합니다. 평소 보통의 긴 영어 원문 중 정확한 해석이 필요할 경우 일단은 아이폰앱으로 깔려진 우리가 잘 아는 몇 가지 번역 앱의 힘을 빌리는데요. 이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제가 보기엔 여전히 맥락에 맞지 않은 단어와 구어체와 학술적 문구가 뒤섞여 대략의 분위기만 알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chat gpt로 해석해 달라고 하고 ..

사람보다낫다

예전에는 동백이란 남도의 섬이나 따스한 곳에서만 구경하는 꽃인줄 알았습니다. 몇 년전 집사람이 동백 화분을 사왔다고하기에 집에서도 동백꽃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건지 낯설기만 하더군요. 역시나 나름 베란다 화분 키우기의 달인이 된 집사람에게도 동백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4년이 되도록 아무리 자식보다 더 살갑게 다루어도 동백은 우리에게 냉정할 정도로 잎만 보여줄 뿐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집안 청소를 하다가 고개를 돌린 아내가 베란다로 달려갑니다. 전혀 보지 못하던 빨간 꽃들이 창밖을 메우고 있다나요. 마침내 그 고고한 동백이란 녀석들이 꽃망울을 터트렸더군요. 아무리 애지중지 챙겨도 답을 않던 녀석들이 오히려 혹독하게 꽃샘바람과 늦추위에 내버려두니 스스로 못견디고 꽃을 보여줍니다...

일상 스케치 202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