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생각과 다르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는데요.
별 것 아닌 일임에도 누구의 무게가 더 무겁고 누구의 일이 더 큰지를 가르는 소모적 논쟁으로 온통 하루가 저뭅니다.
그러다 허탈한 마음으로 문을 나설 때면 답도 모른 채 오늘 내가 무엇을 한 것일까, 이게 대체 내게 어떤 값어치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 전부터 '소풍'이라는 영화에 대한 리뷰와 몇몇 인터뷰를 접하며 왜 사람들이 저리도 일개 영화를 입에 오르내리는지 궁금해 했었습니다.
특히 나문희 배우의 애정어린 영화평을 대하며 소위 메이저 또는 화려한 cg와 헐리우드 영화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소자본, 그것도 노년기에 접어든 세명의 이들이 주연인 영화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황금같은 선거일 휴일을 앞두고 때마침 화면해설로 출시된 영화 제목을 보고 맘먹고 감상을 시작했네요.
조금 전 영화 앤딩 음악을 끝내고 느낀 감동은 한마디로 메마른 사막을 건너다 한 컵의 귀한 생수를 마신 느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이 작은 영화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더군요.
대개 노년의 배우나 삶의 마지막을 다루는 영화들의 특징은 대체로 어둡고 허무하거나 정반대로 환타지를 보는 것처럼 현실을 미화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2시간 러닝 타임 내내 1분 1초, 버릴 장면과 버릴 대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겠네요.
오히려 감독이 이끌어가는 장면과 대사가 너무 직설적이고 적나라해서 영화 내내 어디 숨거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의 눈부신 연기는
영화 전체를 진부하지도 않고 과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도 아닌 청량제같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합니다.
그리고 나의 지난 젊은 시절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다가올 나의 마지막은 과연 소풍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무언가에 몸과 마음이 짓눌려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하고 싶지 않다면 맘먹고 이 영화를 보시면 어떨까요.
설사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다시 종이 한 장, 1시간의 일거리를 앞에 놓고 다투는 현실로 되돌아갈 지언정
아마도 이 2시간의 투자는 아깝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행복한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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