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82

언젠가는

어느덧 늦단풍 속에 낙엽이 하나 둘 지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요즘 고음질 flac 파일로 pc파이 음악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들을 때면 가수의 보컬의 호소력과 멜로디나 사운드의 특징을 주로 귀기울여 듣는 습관이 있어  대체로 가사는 귀에 담아 두지 않는 편입니다. 모처럼 1990년대 고음질로 녹음된 이상은씨의 '언젠가는'을 듣게 되었습니다. 쓸쓸한 멜로디와 호소력있는 드럼이 참 깊숙히 와닿는 멋진 음악입니다만  갑자기 오늘따라 첫 머리의 가사가 뜨끔하게 가슴을 찌르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곡을 부른 가수나 저나 그 시절 비슷한 나이를 살았지만 과연 이런심오한 첫 머리의 가사를 이해하고 부른 것인지... 30년이 지나 다시 듣는 곡의 가사가 이렇게나 미래를 예언하는 의미가..

일상 스케치 2024.11.11

AI와 내로남불

요즘은 AI의 생활속 급격한 보급과 IT 기술 발달이 하루하루 두려울 정도로 놀랍기만 합니다. 올해 SK텔레콤에서 보급한 에이닷 앱의 통화중 녹음 기능을 즐겨 사용하면서 이런 점을 특히 실감하는데요. 아이폰의 통화중 녹음에는  선명한 녹음 기능 이외에도 AI 기술을 활용한 통화요약, 상세요약, 전문 텍스트화 기능도 유용합니다.  특히 상대방과의 수신 통화를 끝내고 나면 곧바로 에이닷이 전체 통화 내용을 분석해 적절한 제목을 액정에 띄워주는데요.  마치 논술 전문가나 방송 기자가 통화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핵심을 짚어주는 것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만큼 놀랍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가 내 통화를 엿듣는 것같다는 찜찜함도 느끼곤 합니다. 특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건 단순히 통화중에 나온 몇몇 단어를 골라..

일상 스케치 2024.11.08

명함을 바꾸었습니다

일개 교사가 명함이 얼마나 필요있냐고 할 수 있지만 10여년전 관내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맹학교 내 시각장애 통합교육 지원센터 홍보를 하면서 가장 편한게 명함 한 장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수업을 하지 않는 신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서로 펜을 찾고 폰에 기록하기보다는 종이 한 장 나누는게 편하더군요. 그래서 지금껏 가지고 다니는 필수 소지품 중 하나가 명함이 담긴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기존 명함들을 모조리 버리고 새로 200장 들이 새명함을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속이나 지위가 바뀔 때 명함을 새로 찍곤 할텐데요. 저는 제가 애용하던 이메일 주소가 변경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비용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35년전 대학에 들어가 어찌 ..

일상 스케치 2024.10.05

시각장애 보행 안내의 새로운 변화

29000원하는 한 달 정식 chatgpt 4o 앱을 구독해 놓고 이것 저것 열심히 해보는 중입니다. 그사이 음성대화로 오만가지 세상의 궁금증을 끝없이 물어보았고 개인적인 인 생 상담에는 답도 정말 첫째 둘째 셌재 해가며 그럴싸하게 합니다.  유머와 농담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고,  엄청난 크기의 영어 문서를 첨부시켜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말로 번역된 문서로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우리말은 영어로, 영어는 우리말로 통역해 달라고 하니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통역 업무를 참을성있게 계속 합니다. 그밖에 정품 chatgpt와 연결된 다른 회사의 ai와 연결된 부가 기능도 해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내가 생각나는대로 떠올린 화면을 말로 설명한 다음에 1분짜리 사람..

일상 스케치 2024.06.30

목단

비가 그치고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돌다가 작은 햇살 사이로 피어난 모란꽃을 집사람이 찍습니다. 너무 너무 예쁘다는데 실명하기 전 도회지에서만 자라다보니 이런 좋은 꽃을 미처 보지 못한게 아쉽기만 합니다. 문득 집사람이 목단이라고도 부른다는 말에 어디서 들었지 생각해보다 어릴적 할머니와 담요를  펼쳐놓고 치던 민화토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유치한 색감의 화투판에서 보던 목단이 이 모란을 의미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그 그림보다 훨씬 예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기상이변에 살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어쩌면 우리 인간들보다 이 자연만큼 한결같이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석들도 없습니다.

일상 스케치 2024.05.06

사람보다낫다

예전에는 동백이란 남도의 섬이나 따스한 곳에서만 구경하는 꽃인줄 알았습니다. 몇 년전 집사람이 동백 화분을 사왔다고하기에 집에서도 동백꽃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건지 낯설기만 하더군요. 역시나 나름 베란다 화분 키우기의 달인이 된 집사람에게도 동백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4년이 되도록 아무리 자식보다 더 살갑게 다루어도 동백은 우리에게 냉정할 정도로 잎만 보여줄 뿐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집안 청소를 하다가 고개를 돌린 아내가 베란다로 달려갑니다. 전혀 보지 못하던 빨간 꽃들이 창밖을 메우고 있다나요. 마침내 그 고고한 동백이란 녀석들이 꽃망울을 터트렸더군요. 아무리 애지중지 챙겨도 답을 않던 녀석들이 오히려 혹독하게 꽃샘바람과 늦추위에 내버려두니 스스로 못견디고 꽃을 보여줍니다...

일상 스케치 2024.03.02

럼주

어느 날 아내가 시키지도 않은 럼주를 사왔다며 한 잔 따라 줍니다. 여러 해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 한 병 사온 것 말고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예천 럼주가 인터넷에서 민속주로 판매가 되고 있다네요. 술도 못먹는 사람이 어쩐 일이냐 했더니 알고 본즉 요즘 자신이 만들고 있는 빵에 럼주를 넣어야 맛이 난다해서 굳이 이 비싼(?) 술을 샀다고 실토합니다. 사람도 없어서 못먹는 이 귀한 술을 일개 빵에다가 부어 버린다니 진짜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특별히 예술성을 가미해서 빵을 완성했다며 갖고 와 만져보게 합니다. 이리저리 꼬인 게 제법 예술작품 같습니다. 여기에 그 귀한 럼주가 들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맛은 뭐 보시는 대로 먹을만 하긴 하..

일상 스케치 2024.02.04

걷기

그나마 걷기가 신통치 않은 시각장애인 교사에게 방학은 몇 안되는 걸음수조차 확보하기 힘든 시기입니다. 러닝머신이나 집앞 산책 등 이런 저런 대안을 찾아보지만 날씨 탓, 업무 탓 등등 핑계만 늘어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핑계의 핵심은 대안 기기에 집중되더니 어느 사이 집안에 에어 클라이머라는 기기가 생겼습니다. 기존 스테퍼보다 덜 어렵고 걷는 재미도 있어 요즘 한창 이용하고 있는데요. 토스앱의 만보기로 몇 원씩 돈도 챙겨가며 걸음수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걷기 시작하면서 토스앱 만보기 화면에 나온 다음의 문구가 사람을 참 당황하게 만듭니다. "굴러서 냉장고까지 갈 수 있는 타입"

일상 스케치 2024.02.02

빵냄새

집사람이 늦은 크리스마스와 다가오는 새해를 기념하며 빵을 만든다고 아침 내 온 집안에 냄새를 풍깁니다. 그러더니 몇 시간이 지나 완성됐다며 아이들과 함께 부엌쪽에서 탄성이 가득합니다. 뭔 일 났냐며 가보니 제 손에 따스한 무언가를 만져주네요. 진짜 만져보기에도 제법 큰 게 별이 맞습니다~~ 먹어버리기 아깝다며 사진으로 찍고 제가 갖고 있는 ai 인식앱으로 촬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이 진짜 정확하게 내용을 설명합니다. 작년에 집사람이 만든 빵은 누런 치킨이라고 하더니 그 사이 많이 똑똑해졌습니다. 장면, 흰 냅킨에 흰 토핑을 얹은 별 모양의 빵 모두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일상 스케치 2023.12.30

화이트크리스마스

12월 24일 아침,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는 아내의 말을 대하며 얼마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인지 새삼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참으로 좋아하겠구나 하고 미소가 번집니다. 지난 이틀간 이곳 대전에 뿌려진 눈을 대하면서도 이젠 얼마나 미끄러울까부터 생각이들고 차는 어떻게 눈청소를 해야 하나 걱정이 먼저 드는 저를 보며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고 떠올려 봅니다. 아마 1995년이었을 것 같네요. 첫 아이를 낳아 1년간 부모님께 양육을 부탁드린 탓에 여유있는 신혼 부부처럼 지내던 중 12월 24일 낮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성탄 때 시내 나간다는 건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압사를 각오하고 하는 배짱 두둑한 사람들의 전유물인줄만 알고 지냈는데 그래도 그 해 우리 부부는 그게 도대체 어떤 기분인지 한 번은..

일상 스케치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