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82

베고니아

아침부터 집사람이 베란다에 핀 베고니아가 너무 너무 이쁘다고 난리입니다. 꽃이 안 이쁜게 어디 있겠냐 속으로 생각합니다만 옆에서 자꾸 업이 되어 이야기하는데 시각장애인으로 호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밋밋한 제 반응에 이젠 아예 화분을 통째로 들고 와 꽃을 만져보여주기까지 합니다. 거참. 이참에 시각장애인이 만져서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IT 발전은 저혼자서 아이들 인물 사진도 찍어주고 바닥에 돌아다니는 조그만 종이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도 알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얼마전 학회에서 만난 설리번 플러스 앱 대표분과의 대화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하면 조만간 시각장애인들이 지금보다 더 편리하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해..

일상 스케치 2023.08.26

이상 자연현상

엊그제까지 깔끔하기만 하던 거실 바닥이 금요일 저녁 퇴근하며 들어서는데 온통 어석거리는 먼지 느낌이 가득합니다. 식탁 대리석 위며 장식장 위를 손으로 쓸어보아도 온통 노란 가루가 묻어난다고 합니다. 이게 뭐지? 원인은 송화가루였습니다. 보통 송화가루는 4월말이나 5월 초순 동네 하늘을 뒤덮곤 하던 것이 상례였는데 4월 중순을 막 넘긴 때에 이렇게나 송화가루가 온 대지를 뒤덮는 경우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낯설기만 합니다. 올해는 특히 3월 중 잠시 지나간 이상 더위로 온갖 봄꽃들이 동시에 피어나는 통에 아쉬운 봄날의 짧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몸이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소소한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이런 이상한 자연연상은 앞으로 더욱 더 자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답답합니다. 지난..

일상 스케치 2023.04.28

귀해야 아름답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구경한 꽃이라곤 우리집 마당에 피어난 하얀 목련과 동네 회색담장을 따라 핀 개나리가 전부였습니다. 그 후 대구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우리 주위에는 뜻밖에 참 많은 꽃들이 시기별로 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 봄부터 매화에 산수유, 목련을 필두로 개나리와 벚꽃 등이 피어나고 4월 조팝나무꽃에 이어 라일락 향기가 교정을 가득 메우고 난 5월이 되면 두류산을 아카시아가 가득 메운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올해 3월 중반에 갑자기 밀어닥친 고온으로 아파트 산책로에는 개나리와 목련, 진달래에 이어 벚꽃이 모두 함께 뒤섞여 피어나는 진풍경이 가득합니다. 다행히 지난 주말 좋은 날씨 덕에 아이들과 함께 이틀 내내 보문산 오월드 벚꽃길과 대청호 오백리길에 핀 벚꽃 터널을 ..

일상 스케치 2023.04.03

캡슐커피

지난 해 봄 동료 선생님이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너무 좋다며 하도 자랑을 하기에 가족들 앞에서 나도 한번 사볼까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얼마 후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가 아빠 생일선물이라며 어누 날 덜렁 기기를 가지고 들어 옵니다. 그 전까지 캡슐머신이란 인스턴트 커피맛에 더해 상대적으로 비싼 캡슐 가격으로 비경제적이라는 오래된 관념이 제게도 있어 왔는데요. 당일 시음용으로 가져온 몇 가지 캡슐 커피를 마셔 본 순간 단박에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향에 따라 진한 맛에서부터 농도 조절을 할 수도 있고 드립에서만 볼 수 있었던 크래마를 캡슐 커피에서 구현했다는 게 정말 놀라울 뿐이더군요. 지난 20여년간 휴대용 압착식 원두 커피에서부터 여러 종류의 메이커를 써 보았지만 이런 풍부한 맛을 드립이 아..

일상 스케치 2023.02.09

낮말은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2편

2013년 1월에 구입한 정확하게 만 10년이 된 우리집 SUV 자동차가 이제 힘을 다해 가는지 요즘 들어 몇 달이 멀다하고 잔고장으로 수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의 직장이 인근의 다른 도시에 위치해 있고 매일 고속도를 운행하다 보니 10년간 32만 키로를 넘도록 이렇게 든든하게 출퇴근길을 버텨준 녀석이 고맙기도 합니다. 지난 주 설 당일, 복잡한 설을 지나 다음날 서울에 사는 어머니와 형제들끼리 여유있게 식사 자리를 갖자는 말에 정체 시간을 피해 해가 진 저녁 역귀성을 위해서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수석의 역할은 운전자가 졸리거나 피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주업무입니다. 마침 이틀 전 맘먹고 차를 바꿔야겠다는 마음에 영업사원을 불러 요즘 뜨고 있는 전기차를 구입하기로 계약을 마..

일상 스케치 2023.01.29

코로나

지난 주말 우리집에서 코로나에 제일 먼저 걸리고 연이어 나머지 가족들을 전염시켜 본의 아니게 한 주를 꼬박 집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증상이 모두 심하지들 않아 차라리 같이 걸린 게 다행이라며 답답하지만 간만의 휴가라 생각하고 보냈네요. 덕분에 집사람이 만든 빵도 얻어 먹어 보고 미루어 둔 네플릭스 드라마도 완주하는 호강을 합니다. 아래는 꽃모양 틀로 만든 빵입니다. 맛도 괜찮네요~~

일상 스케치 2022.12.03

음악감상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하나씩 갖고 있는 취미가 있는데요. 일부는 맨몸으로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취미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 상당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영화감상, 음악감상 이런 것들이 굳이 말하면 저에게도 나름의 취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얼마전 주변 지인이 좋은 음질의 음악감상을 위해 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시스템을 갖추고 삶의 만족감을 높이고 있다는 말에 괸하게 위축되는 마음이 들더군요. 형편도 안되지만 아파트에서 조금만 소리를 키워도 아랫층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좋은 하이파이 시스템을 소화하기란 원래부터 불가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이용하는 벅스 스트리밍 이용권 중에 프리미엄 flac 전용 상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일상 스케치 2022.10.23

오늘도 베란다에 핀 사랑초가 너무 예쁘다며 집사람이 온통 감탄하며 사진을 보내줍니다. 저도 나름 어릴 적 보았던 여러 예쁜 꽃들을 상상하며 공감해 보려 애를 써봅니다. 우리 집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꽃에 대해 선호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를수록 셀카나 인물 사진보다 풍경 사진이나 예쁜 꽃들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지... 그러다 문득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꽃이었다."

일상 스케치 2022.09.17

장애인의투표

선거 투표 관련해서는 글을 안쓰려 했는데 다른 분들도 같은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하여 잠시 적어 봅니다. 그간 아내와 함께 투표장에서 함께 기표소에 들어간 지 20여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의 투표권 보장을 위해 국가에서는 점자보조용구를 제작해 제공하고 있지만 접힌 보조용구 사이에 투표용지를 끼워 넣고 각각의 뚫린 구멍에 정확하게 도장을 찍어야만 하는 과정에서 용지가 밀리기도 하고 실수를 할 수 있기에 보완적으로 배우자나 가족이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보장하고 있는데요. 매번 투표소에서 담당직원과 실랑이를 하곤 합니다. 소위 말해 점자보조용구를 주었으니 시각장애인 혼자서 기표소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문제로 매번 다투는 게 너무 어이없더라구요. 지난 대선에서도 역시 같은 문제로 큰 소리..

일상 스케치 2022.06.01

세월과나이

부엌에서 평소 듣지 못하던 끽끽하는 소리가 들려 아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평소 사용하던 전동 칼갈이가 고장났는지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사주신 것인데 결국 수명이 다 한 것 같다네요. 그렇다면 올해로 29년. 작년 여름, 결혼할 때 부모님 댁에서 갖고 온 금성 선풍기가 목이 부러져 버리면서 이제 이것이 신혼 살림의 마지막이구나 했는데 숨어서 세월을 견딘 녀석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집안에서 우리 부부와 함께 세월을 이겨낸 녀석이 또 하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베란다의 군자란. 결혼할 때 신혼집 휑한 베란다를 채워야 한다며 아버지가 당신의 집 베란다에서 안아다 놓아준 잘 자란 군자란. 그래서 이 녀석은 대체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하나 중요한..

일상 스케치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