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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net 기반 넓은마을의 퇴장을 기억하며 2

tosoony 2024. 6. 24. 14:33

오늘은 대전맹학교 입사 후 초기 컴퓨터 담당 교사로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겪은 애로와 서버 구축을 통해 학교 자체로 BBS를 운영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93년 일반 시각장애인들에 비해 대학 시절부터 컴퓨터와 모뎀을 통한 PC통신에 익숙해져 있던 저는 졸업 후 대전맹학교로 발령을 받아 처음 교장선생님과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학교 내에 비장애인 컴퓨터 교사는 있지만 시각장애 당사자의 눈높이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교사가 없어 어려움이 많으니 저에게 원래 교과 시간을 줄여 컴퓨터 교과를 지도해달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부임하자마자 원래의 전공 분야 대신에 뜻하지 않게 자격증 하나 없이 컴퓨터 교사로 변신하여 학생들과 컴퓨터실에서 온종일 씨름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당시는 286,, 386, 펜티엄 등 느린 연산 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나칠 정도로 커다란 본체를 가진 조립 PC가 대세였는데, 여기에 가라사대 카드를 슬롯에 장착하면 부팅과 함께 목소리가 깨어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MS-DOS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이래야 몇몇 초보 수준의 윷놀이, 주사위게임, 타자연습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컴퓨터실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와 속도가 빠른 좋은 컴퓨터를 선점하기 위해 다투기 일쑤였고 퇴근 시간이 되어 내쫓을 때까지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라사대 소리는 밖에서 컴퓨터실 앞을 지나갈 때면 마치 장마철 물을 댄 논에서 들리는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를 연상케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학생들의 기초적인 정보화 마인드 함양을 위해 MS-dos 3.3 중심의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파일 및 시스템 관리는 물론 간간히 PC통심망에서 다운받은 신기한 기능을 가진 유틸리티들을 소개하며 학생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거기에 더해 당시 LG복지재단과 라이온스클럽 등에서 운영하던 컴퓨터 경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gw-basic과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활용한 프로그램 파일 작성법을 지도하며 아이들과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 즐겁게 지내던 기억은 제 마음 속 자산이 되어씁니다.

여담이지만 지금도 가끔 꿈에서 'cls', 'dir' 같은 MS-DOS 명령어를 입력하는 제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1995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95와 함께 텍스트에서 그래픽 중심으로 운영체제를 전환함에 따라 저는 한순간에 무능한 교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마우스로 포커스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쩔쩔매는 걸 5살짜리 딸아이가 1초만에 클릭을 해주고 나갈 때면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고, 컴퓨터 교사라면서 윈도우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저시력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할 때가 늘어나면서 컴퓨터 교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전세계적으로 윈도우의 접근성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서둘러 이를 보완한 윈도우98이 보급되고 각 나라별로 화면읽기 프로그램들이 윈도우 시스템에 맞게 소리로 변환할 수있는 여러 기능을 탑재하게 되었꼬, 우리나라에서도 '소리눈98', '소리눈2000', '드림보이스' 등이 차례로 개발되면서 미약하나마 윈도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는 퇴근 후 천리안과 하이텔, 에듀넷 등에서 여러 동호회의 시삽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장애가 무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형평성을 갖춘 객관적인 플랫폼이 있어야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씁니다.

그러던 중 1999년 이웃 지역의 맹학교에 출장을 갔다가 그곳 컴퓨터실에서 시각장애 선생님들이 소규모 사설 BBS 프로그램으로 게싶판과 자료실을 구성하고 자기들끼리 자료 공유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텍스트 기반의 각종 BBS 운영 소프트웨어들이 PC통신망에 널려 있고, 설치와 운영이 어렵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온 저는 곧바로 부장님과 교장선생님을 찾아 대전맹학교 차원의 전용 BBS 시스템 운용이 교육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외부 업체에 견적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학교 차원의 BBS 시쓰템을 운영하려면 물리적인 랜선 포설을 하는 기반 공사와 서버 구축 등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제게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굴러 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밀레니엄 2000년 벽두부터 당시 김대중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 사업 추진과 함께 모든 학교에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학내망 설치 예산을 지원하였고, 그 덕에 저는 학교 재정을 한 푼도 소비하지 않은 상태로 학교 모든 교실에 랜선 기반 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난 해 묻어 두었던 학내망 전용 BBS 프로그램 설치를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이 때 눈에 띈 것이 바로 'XHOST'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무실이 아닌 컴퓨터실 옆방에 마련된 공학실이라는 곳에서 다른 또래 저시력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고 있었는데, PC통신에 떠돌던 여러 프리웨어 BBS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둘이서 끙끙거리며 공부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개발자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도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텍스트 기반의 BBS는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고 대부분 개발자들은 웹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주력하는 상황이라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XHOST 개발자인 김*대 소장님은 달랐습니다. 대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던 소장님은 바쁜 본업 중에도 시각장애인들의 특별한 사정과 저희들의 간절함을 이해하시고 유선상으로 거의 모든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특히 나중엔 직접 저희 학교로 출장을 오셔서 학교가 마련한 서버와 방화벽에 XHOST 기반의 대전맹학교 BBS를 개통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사이 저는 맹학교 최초로 대전맹학교 학내망 BBS 메뉴와 각각의 게시판별 기능을 구현하고 버그를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나날을 밤을 새워가며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리하여 2000년 어느 늦은 여름, 마침내 우리나라 맹학교 가운데 최초로 텍스트 기반 학내망 BBS를 개통하게 됩니다.

대전맹학교 BBS는 과거 전화와 모뎀으로 접속하던 방식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telnet'이라고 불리는 원거리 서버 접속 방식을 사용하여 MS-DOS 상에서 'sltcp'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접속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이후 윈도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이야기멀티''새롬 데이터맨' 등으로도 접속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대전맹학교 BBS'참새 방앗간'이라고 불리는 자유 게시판과 '보물창고'라는 자료실 및 전자우편과 체팅방 등 당시 천리안 등에서 제공하는 거의 모든 메뉴를 갖추고 있어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 속에 이용률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전맹학교 BBS는 재학생 뿐 아니라 외부 동문과 일반 시각장애 회원들에게도 가입을 허용함으로써 가입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등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대전맹학교 BBS는 텍스트 기반의 화면 구성과 이야기 멀티 등 당시 사양길에 접어든 구형의 소프트웨어로만 접속이 가능하여 학교 내 정안인 교사나 비장애인의 사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에 저와 XHOST 소장님을 중심으로 대전맹학교 BBS를 웹과 BBS가 연동이 되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하고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땀흘려 작업에 나선 결과 다음 해인 2001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전맹학교 WEB BBS'라는 개념의 시스템을 개통하게 됩니다.

대전맹학교 WEB BBS는 텍스트 기반의 telnet BBS로 접속하여 작성한 내용과 WEB 홈페이지로 접속하여 작성한 모든 데이터가 동일하게 서로 공유되도록 함으로써 사용자의 특성과 수준에 따라 편리한 방식으로 접속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로써 그간 참여에 어려움을 겪떤 학부모와 정안인 교사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의 학교 홈페이지 활용이 극대화됨으로써 학부모들은 학생이 telnet로 작성한 여러 글을 손쉽게 파악하고 답을 하는 등 사용 활성화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2003년부터는 교직원 메뉴를 신설하여 교직원간 업무 공유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용의 최적화된 WEB BBS 모델의 효시를 이루어내게 되었습니다.

대전맹학교 WEB BBS에서는 단순한 정보 공유와 학습 자료 활용이라는 기능 외에 학생의 흥미를 높이기 위한 독특한 메뉴도 개발하여 운영하였는데, 주사위 게임과 레벨업을 활용한 텍스트 머드 게임과 외부 문자 발송 시스템과 연계하여 텍스트상에서 다른 휴대폰 사용자에게 문자를 발송할 수 있는 메뉴를 최초로 개발하여 시각장애인의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한편 대전맹학교 WEB BBS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용 홈페이지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외부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한국 시각장애인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넓은마을'과 실로암 복지관의 '아이프리' 담당자 등과도 기술 개선에 대한 활발한 접촉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압니다.

이후 실제로 넓은마을 시스템을 XHOSTWEB BBS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2000년대 초 대전맹학교 WEB BBS 시스템을 이전받게 되었고, 이는 지금의 넓은마을의 뼈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대전맹학교의 WEB BBS2004년 개통된 국립 특수교육원의 '이얍' 통신망에도 전수되어 한소네용 멀티미디어 교과서와 EBS 자료 보급 등에도 기여했습니다.

한편 대전맹학교 WEB BBS는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컨텐츠의 특성상 사진이나 동영상 및 각종 멀티미디어 자료의 경우 웹과 telnet 모두에서 백퍼센트 동일한 내용을 제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수시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웹과 BBS의 연동 루틴이 깨어지거나 버그가 발생하는 등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웹접근성 지침이나 장차법 등이 제정되기 이전의 어려운 국내 인터넷 상황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에 돌파구로 WEBtelnet BBS를 연동시킴으로써 시각장애인들의 정보화 향상에 기여한 대전맹학교 WEB BBS의 가치는 나름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telnet 운영의 어려움과 대전맹학교 최초 모바일 소리도서관 운영 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