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장애인의 날이 저물어 갑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은 일년 중 딱 하루만 기억되는 이런 세상에 힘들어 하곤 합니다.
요즘같은 날이면 신문 기사나 유명 정치인들의 덕담 속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 하나가 헬렌켈러입니다.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익숙해진 그녀와 그녀를 교육한 설리번의 일화와 삽화는 지금도 유년시절의 기억속에서 생생하기만 합니다.
특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향한 그녀의 멋진 조언은 언제나 감동 그 자체로 우리에게 울림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과연 헬렌켈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헬렌켈러가 재활을 위해 흘린 땀방울과 보고 듣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 일찍부터 안구 적출과 의안 수술을 해야 했고 강연을 할 때면 항상 희고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나서려 애썼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장애인에 대해서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려 하는 건 아닐까요.
오래 전 이 즈음 서울의 모 방송사에서 저에 대한 TV 영상물 촬영을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당 프로의 기획 의도는 여러 날 저를 따라다니며 하루의 일과를 촬영하는 것이었는데요.
하루는 직장에서나 퇴근 길에서 흰지팡이로 너무도 익숙하게 잘 걸어가는 저를 보며 pd가 쫓아오더니 당황해하며 부탁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걷지 말고 조금 헤매고 더듬어 주면 안되겠냐구요.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감동을 시청자에게 주고 싶어하는 pd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당시 왜? 라는 의구심은 지금도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해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고 그들이 어떤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일전에 올린 글에서 저는 TV 오디션 프로그램 때마다 장애인이 출연하면 여지없이 연예인 심사위원들이 눈물을 쏟는 장면이 강조되는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왜 우리들은 미국 TV 프로 속에 출연하는 스티뷰원더의 어색한 몸짓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관객에 대해서는 무던하게 바라보면서 우리 주변의 장애인에 대해 특별한 잣대로 대하려는 것일까요?
그리고 자문해 봅니다.
오늘 이 순간 바로 내 옆 자리에 헬렌켈러가 동료로 근무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각장애인과AI의 역설 (0) | 2024.06.06 |
---|---|
선물받은하루 (2) | 2023.09.28 |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단상 (0) | 2022.08.16 |
영화감상 (0) | 2022.03.10 |
잘못된프레임 (0) | 2021.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