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선물받은하루

tosoony 2023. 9. 28. 11:38

고등학교 시절 학교 기숙사 옆 방에 기타를 잘 치는 형이 있었습니다.
문 밖으로 들리는 그 때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좋았던지.
 아무 준비도 없이 형의 방으로 불쑥 들어가 무작정 하나씩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졸라 c코드부터 해서 통기타를 소위 가라로 배웠습니다.

80년대 말 대학에 들어가고 노래방도 없던 시절. 
수업이 끝난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잔디밭과 벤치에서 막걸리 마시고 노래부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술을 먹지 못하던 제가 비장애인들 사이에 끼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라로 배운 기타 실력을 이용해 분위기를 맞춰 주는 것이었는데요.
그래도 그 때 배운 엉터리 재주가 바탕이 되어 지금의 집사람에게도 인심을 얻고 한동안 대학 시절의 작은 재미로 많은 추억을 남긴 것 같습니다.

졸업 후 집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속버스로 지방을 갈 때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보면 우리처럼 헐레벌떡 화장실 다녀오는 게 아니라 
여유롭게 실내 음식점에서 이것 저것 식사하는 사람들이 왜그리 부러웠는지요.
그래서   통근을 위해 차를 장만하자마자  세운 첫 번째 계획은 
방학 때마다 꼭 어딘가로 가족 여행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pc통신(당시는 천리안과 하이텔이 대세였음)으로 검색을 하고 전화로 일일이 예약을 해가며 집사람을 설득해 
이제 겨우 두 돌이 넘은 아이를 태워서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물론 갈 때는 여기저기 휴게소를 들러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여유롭게 식사도 해가며 푸근한 여행의 감미로움도 맛보았습니다.
나중엔 몇 차례 태국, 일본, 중국, 유럽까지 이국의 설렘도 맛볼 수 있었네요.

30, 40대 직장에서 이런 저런 일 욕심으로 많은 사업도 벌려 보고 몸도 마음도 지쳐갔지만 
그 때의  소소한 애환 조차도 작은 보람으로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 마음속 공허함으로 남는 아쉬움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건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넉넉치 않은 가정 씀씀이 중에서도 저희 4남매를 위해 한가지씩 소위 사교육을 시켜 주었는데요.
딸 둘은 피아노 학원, 저는 태권도와 주산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원래 집안에 피아노를 장만하면서 저에게도 피아노 학원을 보낼까 생각하고 누이들이 저를 피아노 의자에 앉혀놓고 젖가락 행진곡 등을 가르쳐주며 친근해지게 만들었습니다만 
그 때는 왜 피아노 배우는게 그렇게나 귀찮고 쑥스럽기만 했을까요.
저는 그 때마다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싫다고 했었네요.
그런데 막상 실명을 하고 어른이 되어 학교에서 교실을 순회하며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며 반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쩌면 그렇게나 멋져 보이는지.
그리고 왜 어릴적 그런 황금같은 기회를 차버렸는지 참으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이 오십이 되자 더이상 무언가를 미뤄서는 안되겠다는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한테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를 정해 한가지씩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피아노 레슨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오후 방과후수업으로 피아노를 지도하는 유능한 강사님께 아이들 지도가 끝난 퇴근 후 남아서 제게 개인 레슨을 조심스럽게 부탁드렸고 
그 분은 다행히도 흔쾌히 허락해 주시더군요.
당시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소위 바이엘 등의 기초부터 시작하는 정식 코스가 아니라 제가 연주하고 싶은 몇 곡을 완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고민하시던 강사님은 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경력이 많은 덕에 제게 일일이 손가락을 건반위에 짚어주며 
하나하나 곡 멜로디를 암기해 가는 방식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시각장애 교육 경력이 나름 많던 저조차도 대부분의 시각장애 아이들이 점자 악보 없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걸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머리와 손,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발까지 각각 따로 노는지. 
레슨 시간 내내 온통 진땀을 빼며 강사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영화음악, 드라마 OST 등 4곡의 곡을 완주해 볼 수 있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공통된 취미는 음악감상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절대음감이 있거나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시각장애인이 되고부터 라디오와 카세트 테이프, LP 레코드, cd음반 수집에 취미를 붙이면서 
제 방에는 나름 오디오와 음반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음원을 들으면서 좀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다는 목마름이 늘 있었습니다.
90년대  대전 시내 대흥동 성당 근처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레코드 음반 가게가 있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외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멋진 클래식 음악이 어찌나 좋던지요.
하루는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가 여자 주인으로부터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한 두장씩 음반을 사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레코드 가게에서 틀어주시는 음악은 그렇게나 청량하게 들리던 것이 제 오디오에서는 완전히 실망스러운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야 당시 레코드 가게의 오디오 시설이 천만원이 넘는 장비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후 제 마음속에서는 저도 언젠가는 저런 고급형 하이파이 시스템으로 제 방을 꾸며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취미라는게 엄청난 비용을 담보로 하기 마련이었고 
특히 오디오는 구비할 장비도 여러 가지에 작은 소리의 향상을 위해서도 수십, 수백만원을 투자하는게 이쪽의 생리였습니다.
그 후에도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갈증에 아쉬워하며 20여년의 세월을 보내씁니다.
그 사이 세상은 LP, CD 음반을 소장하는 시대를 지나 mp3에 무손실 파일을 소장하는 데서 
이제는 파일을 번거롭게 내 기기에 담지 않고 인터넷과 휴대폰 기반의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고음질의 음원을 막바로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0대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음악감상의 즐거움을 더이상 미뤄서는 기회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해부터 하나 둘씩 소위 비자금을 모아 기기를 장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앰프와 스피커, dac에 네트워크 플레이어라는 것까지 모두 나름 짝을 맞추어 중급의 기기 장만을 마쳤네요.
물론 상당수는 중고로 구입해 큰 부담은 줄였습니다.
머리아픈 학교 업무에 예민해 있다가 요즘 집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설렘 중 하나는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한창 기타에 열중할 때 주변의 지인이 얘기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자신도 기타를 배우고 싶지만 지금은 다른 일로 바빠서 나중에 하겠다고...
30, 40대 여행에 한창일 때 그는 지금으 열심히 돈 모을 때고 나중에 여유생기면 편안히 다녀오겠다고...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철없는 20대 때 모닥불 앞에서 통키타 칠 때의 느낌과 40먹어 기타칠 때의 감흥이 같을 수 없고, 
젊은 시절 배낭메고 유럽 시내를 가슴떨리게 활보할 때의 감동과 50, 60대 때 힘겹게 다리 떨리며 걸을 때의 소회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 우리들은 행복과 꿈을 미루며 살고 있습니다.
가슴속에 담고 있는 꿈과 간절함은 누구나 있을 텐데요.
그 시간을 억지로 미룰 순 있겠지만 과연 지금의 감동이 그 때도 동일할지 에 대해서는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선물(present)같은 하루, 현재(present)를 행복하게...
  
https://www.youtube.com/watch?v=v1FuO5pL8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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