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단상

tosoony 2022. 8. 16. 00:51

교사들에게 방학은 그동안 미루어 둔 자기개발 연수와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시간입니다.
저에게는 그간 못했던 독서와 세간에서 회자되는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이기도 하는데요.
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10여회가 넘는 방영분 속에서 우영우는 국민들에게 자폐 스펙트럼이 다양한 이유와 진정으로 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일깨우는 유익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물론 일각에서는 중증의 발달장애, 자폐로 하루 하루를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가족의 고통과 이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현실을 희화화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역시 우영우는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하겠는데요. 
글을 쓰기에 앞서 이번 작품은 과거 막연하게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근엄하게 드라마를 이끌어 가려고만 하던 기존의 연출 행태에서 탈피하여 한 회 한 회 법률 사건을 쉽게 끌어가면서도 그 속에서 장애인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노력에 감탄했다는 저의 소감을 전합니다.
저는 오늘 종영을 앞두고 있는 우영우의 명장면 중에서 몇 가지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극 중에서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와 대척점에 서있는 권민우 변호사는 항상 그녀를 못마땅해합니다.
우연히 우 변호사가 평소 정기 채용 과정이 아닌 별도의 특채로 입사하게 된 과정이 자신들이 근무하는 로펌의 대표와 우변호사 아버지의 친분에 의한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고 이를 직장 내 상사와 익명 게시판 등을 통해 특혜라며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되는데요. 특히 그러한 특혜의 이유 중 하나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혜택은 부당하다는 이유를 제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며칠 뒤 직장 내에서 동료 여변호사인 최수연은 권민우와 마주친 자리에서 우변호사의 특혜 시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들의 경우 졸업 전에 이미 대형 로펌에 취업되는 데 반해서 법대 수석 졸업과 로스쿨 수석 졸업을 한 능력있는 우변호사같은 사람이 졸업을 한 지 6개월이 넘도록 취업을 못한 사실 그 자체가 그녀가 오히려 차별을 받아온 것이라는 걸 모르냐며 일갈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작가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모순된 시선을 날카롭게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장애인의 권리와 참여에 대한 의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직장내 차별이나 이동과 접근성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대해 '어쩔 수 있어", '이 사회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해결해 줄 수 있겠어?', '이정도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이 직장에서 같이 어울리려면 그 정도는 니가 해결해야 하는거 아냐?" 등의 경직된 사고 체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접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도 우리 사회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철인 삼종경기에서 자전거를 힘들게 타고 완주한 사실에 대해 인간승리라며 박수를 쳐주지만 실상 평소에 그들이이 겪는 애로를 시정하기 위해서 개조된 자전거를 개발해 주거나 도로를 쉽게 달릴 수 있도록 고쳐주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작 장애인들이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편견에 고통받는 순간에는 줄곧 그 현실에 대해 눈감으면서도 그들이 받은 차별을 국가나 공조직이 해결해주지 못하기에 만들어 놓은 권리 차원의 제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특혜 또는 역차별 논리인 것입니다.
앞서 드라마에서 권민우의 이의 제기가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실력있는 한 개인이 차별과 고통 속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로펌 내 인사 채용 방식을 개선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제도 마련을 위해 그들 스스로 앞장섰어야 했습니다.
또한 지난 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와 모 정당 대표와의 토론 사건 역시 결국은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순된 시선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두 번째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혜와 권리의 논란입니다.
아직까지도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이루어지는 국가 시책과 재정 투입에 대해 일부의 사람들은 국가가 장애인들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 베푸는 시혜적 혜택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이씁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긴축 재정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손을 대애 하는 곳은 당연히 복지 분야여야 하고, 이렇기에 해당 분야의 혜택을 보는 이들은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아야하지 않겠냐는 의식이 부지불식간에 자리하게 됩니다.
제가 입사 초기부터 비장애인 선배님들로부터 줄곧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너는 비장애인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앞장서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그 누구에게나 필요한 유익한 덕담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장애를 가진 저에게만 반복해서 그러한 기치를 앞세우라는 말씀 속에는 니가 누구보다 다른 이들이나 국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정서가 기저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의 권리 보장과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걸릶돌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얼마 전 어느 분과 의 대화에서 제가 사는 지역의 장애인 콜택시 운영과 관련해 시에서 이 장콜 운영을 위해 엄청난 재정 투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장애인들이 큰 혜택을 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분에게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뿐 아니라 대부분의 도시에서 운행중인 대중교통의 하나인 시내버스 운영을 위해 시에서 장콜 운영비의 수십, 수백배의 운영비를 보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요.
우리 시에서 돌아다니는 시내버스 전체에 지체장애인용 리프트와 시각장애인용 음향 신호 장치를 설치하는 비용과 장콜 운영비 중 어느 것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매일 타고 다니는 시내버스비를 시가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장애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장콜 비용에 대해서는 특혜이며 과다하다고 생각하는 논리는 무엇일까요.

오늘 tv 속 히트 작품인 우영우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비현실적인 예쁜 자폐 캐릭터나 그녀의 주위에서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하는 멋진 남자 배우와의 사랑 에피소드를 어필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 그 답은 저와 우리들이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다음에는 시각장애 우영우, 지체장애 우영우가 tv 속에서 우리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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