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AI 114

tosoony 2025. 2. 9. 18:04

어릴적 학교가 파해 집에 돌아올 때마다 으레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맞는지 실랑이를 벌이며 목소리를 높이던 주제들이 있습니다.
'태권브이와 마징가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우리나라 모처에 외계인이 세운 비밀기지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 은밀히 숨어 다닌다더라'
'***국에 ****로 전화하면 뭐든지 물어봐도 답을 해주는 만물박사가 있다더라'
 그 중에 일부는 정말 맞는지 서로 내기까지 하곤 했는데요.
실제로 정확한 번호까지 돌며 만물박사가 있다는 말에 한동안 서로 돌아가면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가 전화 주인으로부터 진탕 욕을 얻어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볼 때마다 같은 말을 하곤 했는데요.
'네이버에 물어봐'
일개 특정 사이트에 불과한 네이버가 마치 살아있는 만물박사인 양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네이버를 입력했고 
거기에 나오는 답은 거부할 수 없는 정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세월과 it의 변화에 밀려 점차 존재감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대신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무언가 궁금할 때면 일단 유투브부터 열어보는 습관에 익숙해졌습니다.
대부분이 개인이 임의로 만든 영상물로 일부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정보가 섞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참 신기하게 그 안에서 원하는 걸 찾아냅니다.

최근 1, 2년 사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ai는 앞서 사람들이 가진 이런 습관을 다시 새롭게 재구성하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지식 여부 정도를 묻는데서 출발해 복잡한 논리구조를 가진 대답은 물론 결과 예측도 가능하게 되었고 
어느덧 답변 분야도 이공계를 포함해 사회 전반의 모든 주제가 가능한 수준에 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ai가 사람들의 심리 상담과 우울증 해소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보도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우리 사람들보다 월등히 똑똑하면서 더욱 인간스럽게 인간이 원하는 바를 알려주는 ai로 인해 
특별히 무언가를 스스로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검색 결과로 나온 이런 저런 내용을 찬찬히 비교하면서 땀흘려 올바른 내용만 골라 정리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화려한 비주얼의 영상물을 시청하며 전세계 여러 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확인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실감나는 연애편지, 훈화, 레포트는 물론 왠만한 전문 프로그램 코딩도 혼자 척척 맡아서 하는 ai 덕에 
이제는 무언가를 스스로 맡아서 처리한다는 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학교에서도 조만간 교내의 여러 대회 운영을 재검토해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독후감 쓰기, 부모님께 감사편지 쓰기, 웅변대회, 대학 자기소개서 작성, 영어 원서 번역 등 많은 분야에서 그간 학생들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젠 누가 만든 것인지 구분하기 곤란한 지경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ai 도입을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ai의 도입으로 그만큼 사람들은 여유있는 시간을 다른 창의적인 분야에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빨리, 고민하지 않고 내려주는 결론에 익숙하다보니 우리 스스로 시간을 두고 무언가를 찾아 고민하고 어느 것이 더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기능 자체를 상실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짧은 시간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도파민 중독자가 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구시대의 유물인 아나로그적 매체에 익숙한 저는 요즘도 114로 원하는 상호를 검색하곤 합니다.
네이버 검색으로 상호를 검색하고 연락처를 찾아 화면에 출력된 번호를 입력하기도 성가시고 
유투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따라 하며 무언가를 하기도 귀찮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114에서 불러주는 번호를 외우지 않고 1번만 누르면 바로 상대측으로 전화를 걸어주는 기능은 참 저같은 나이의 사람들에게 유용(?)합니다.
오늘도 114로 인근 동네 음식점 매장 번호를 묻습니다.
그런데 AI 상담원이라며 누군가 대신 지역과 상호를 말해 달랍니다.
'가오동 ***'
그런데 잠시 아무 말이 없더니 대뜸 상담원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진짜 사람 목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상호를 묻습니다.
매번 반복되는 이 상황에서 예전 같았으면 우습기도 하고 좀 더 지나면 AI 기능이 더 나아지겠지 하며 넘어가곤 했습니다만 
오늘은 이 어설픔이 괜스레 어이가 없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합니다. 
'에이~~ 차라리 내일부터는 chatgpt 음성모드로 물어봐야겠다'

좋은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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