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제대로 배워야

tosoony 2017. 10. 15. 00:20

 

현장에서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매일을 씨름하며 보내면서 우리 맹학교 교육현장에는 아직까지도 저시력 학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고집스런 가치관이 혼재한다는 점을 실감한다.

그 중 하나는 저시력 학생일지라도 점자를 능숙하게 익혀야 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나태하거나 성실하지 못하다고 보는 관점이며, 또 하나는 저시력 학생이 확대 독서기를 통해 묵자를 볼 수만 있다면 모든 교육 매체를 묵자로 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저시력 학생 중에서 진행성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점자 교육을 강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극히 예외적인 사례가 전혀 아님에도 점자를 강조하지 않을 경우 그나마 알고 있는 점자마저 망각할 것이라는 노파심에서 수업 장면이나 정규 평가시험에서마저 공공연히 점자를 강요하는 것은 저시력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라고 하겠다.
또한 아무리 HD급의 고화질 확대 독서기가 보편화되었다 하여 화면 가득 겨우 한 두 글자 정도밖에 확인할 수 없는 시력임에도 확대 독서기로 독서를 지도하거나 수 십 포인트씩 확대 출력을 해주는 것 또한 저시력 교육의 발전을 왜곡시키는 극히 위험스러운 조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에 더하여 요즘 중복장애 교육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장애 학생 특히 시각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통합교육이 모든 경우에 도깨비 방망이인양 적용만 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획일적 관점 역시 위험한 논리가 아닐까?
최근 중증 중복장애 학생의 맹학교 내 분리수업에 관해 이를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반대의 논리가 시각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논리와 다르지 않다.
중복장애 학생은 단순 시각장애 학생과는 학습매체에서부터 적용해야 할 학습내용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일반 통합학급에서 해결할 수 없는 독특한 교육적 조치가 항시 요구되는 친구들이다.
그러한 중복장애 학생마저 통합교육의 잣대로 끌어안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현재 미국 맹학교의 사례는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타산지석이라고 볼 때 왜 미국의 모든 맹학교에 중복장애 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또 강력한 미국 내 통합교육 관련 법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왜 맹학교에 잔류하고 있는지 살펴 보았으면 한다.


나 역시 부족한 일개 특수교사로서 하루를 반성하곤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점 하나는, 모든 걸 배울 때는 제대로 배워야겠다라는 생각.

 

사진설명: 미국 오버브룩 맹학교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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