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서 자원봉사자 몇 분이 만든 촉각 그림책을 기증받으면서 어릴 적 꿈에 빠져 희망어린 미래를 꿈꾸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 당시 안데르센 동화 속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내 곁에서 항상 접할 수 있던 친근한 친구들이었다.
특히 벌거벗은 임금님은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우화적 성격을 띤 수작이었다.
지난 한 달여간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역병과 가뭄에 시달리면서 희망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
도대체 이 공허함은 언제나 끝나려는지.
그런데메르스에 지치고 둔감해질 이즈음 우리는 4대강의 재앙에 또 한번 좌절하고 있다.
매년 심해지는 녹조랏떼와 무너질 위기에 있는 보, 물고기들의떼죽음.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과 사상 최대의 가뭄에도 불구하고 넘칠 듯 가둬둔 보 안의 물은 가뭄은 이제 끝이라는 전 정권의 찬사를 블랙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뉴스를 반복해서 접하며 드는 상식적이면서도 답답한 궁금증 하나.
하늘에 대고 공연한 주먹질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듯 절절히 명확한 결과가 몇 년째 쏟아지는데도 왜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걸까?
종이 신문을 넘겨보아도,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보아도 4대강의 오염으로 생계를 잃었다는 어민들의 수상 시위 소식은 몇 줄짜리 스트레이트성 기사로 나가면서도 누구 누구 연예인 부부가 두 번째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 기사는 아침 7시 tv 뉴스 중에도 튀어나온다.
'논란'이라는 교묘한 용어와 면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허울 속에 수십조원이라는 국가 예산을 물속에 퍼붓고도 온 국민들은 몇 년째 누구 하나에게 하소연도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에서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스꽝스러운 행차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처지와 위신 때문에 실제 눈에 보이는 것을외면한 채 박수와 환호를 외쳐댄다..
그런데 학교도 가 본 적 없고 부모의 치맛품에서 마음대로 뛰놀 줄만 알던 아이의 입에서 터진 당연한 한 마디가 세상 사람들의 진실을 깨우고 모든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부끄러움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는 동화의 결말은 이 시대 지금의 우리에게 큰 무언가를 일깨우는 건 아닌지.
우린 언제나 이 아이만도 못한 우스꽝스러운 짓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