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영화관에서

tosoony 2015. 3. 22. 02:38

몇 년전 집 근처에 생긴 멀티플렉스 영화관.

맘먹고 친구들끼리 시간 예약하고 정장 차려입고 차를 타고서 시내로 한참을 가야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 이벤트인 줄 알았던 영화감상을,

이제는 언제든 맘만 먹으면 동네 슈퍼가듯이 슬리퍼 차림으로 밤 늦게까지라도 보고 나올 수 있는 손쉬운 일로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편치 않은 마음들.

왜 특정 인기 영화만 이렇게 많은 시간 대에 몰아넣고, 내가 보려는 영화는 엉뚱한 시간에 형식적으로 끼워넣어져 있는 것일까?

매표소 옆에 있는 영화관과 제휴된 음식 판매대에서는 조금만 사고 싶어도 왜 자꾸 돈을 조금 더 내면 양이 큰 것으로 바꿔준다고 종용하는 것일까?

일방적으로 특정 시간대에는 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그 시간대에 더 나아진 편리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래도 줄서서 마냥 즐거워하는 이 사람들..

 

어르신들의 대화 속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 있다.

"'니들은 참 편한 시대에 태어난 걸 복으로 알아야 한다~~"

 

모든 게 편리해지고 윤택해진 세상.

손에는 최첨단 휴대폰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검색과 각종 예약, 영화 감상을 할 수 있고,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각종 편의기능이 망라된 가전제품과 자동차, 가구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터치 하나로 전세계의 맛난 음식도 손쉽게 맛 볼 수 있는세상...

 

하지만 그러한 밝은 빛의 뒷면 그늘 밑에서 최저 임금에도 못미치는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휴대폰 요금도 내기 벅찬 청년 실업자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공공요금과 대중교통 요금에도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자신의 생활을 위해 요금을 지불해가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

대출 이자가 바닥이라며 돈을 빌리라면서도 전세값, 월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빚더미를 틀어막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잠시 들른 영화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모두가 어쩌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내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도 이러한 강압에 무기력하게 길들여져 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느껴진다.

점점 끓는 냄비속에서 헤엄치는 개구리, 내트릭스속 인간들, 호갱...

오늘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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