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이었었던가요, mbc fm 2시의 데이트 김기덕을 즐겨듣던 누이의 방에서 흘러나온 퀸이라는 그룹의 목소리를 듣고 대번에 반해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프래드 머큐리의 흡인력은 가사의 의미도 제대로 몰랐던 당시로써도 제 마음을 사로잡았었습니다.
당시에는 도통 주위에서 테이프나 lp판을 온전히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 85년 서울맹학교에 같이 다니던 한 친구가 소위 '빽판'이라는게 있다면서 구하러 가자고 하더군요.
그 '빽판'이란 정식 라이센스를 맺고 들여오지 못한 lp앨범을 불법으로 프레스같은 별도의 조악한 기기로 찍어서 복사해 파는 lp를 말하는 것이었는데요~~
제가 퀸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업자에게 부탁해 구해놓았다며 같이 가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받아든 퀸의 앨범이 바로 두 장짜리 'killers' 라이브였습니다.
색이 바랜 것 같은 얇은 종이 표지 속에 엉성하게 감싸있던 비닐을 빼내면 가장자리가 마치 이빠진 톱니처럼 되어 있는 lp 앨범이 들어 있었습니다..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면 마치 바늘이 부러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과 콩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지만 그래도 당시의 한 곡 한 곡은 지금의 대단한 무손실 mp3 곡들 보다 잘 귀에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젠 원하는 곡은 굳이 레코드 가게를 찾지 않아도 얼마든지 고음질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몇 곡 끝나기가 무섭게 턴테이블의 판을 뒤집으러 달려오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제 방 한 켠에는 먼지가 쌓인 300여장의 lp판 가운데 문제의 '빽판'이 같이 끼워져 있습니다.
가끔은 오늘의 세상이 얼마나 편리해지고 윤택해졌는가에 대해 상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다수 mp3으로 압축된 음악보다 간혹 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lp의 음질이 더 따스하고 인간의 귀가 듣기에 현실감있다는 것이나,
아무데서나 싼 값에 구할 수 있게 된 디지털 오디오 기기보다 둔탁해보이는 진공관의 거대한 구형 앰프 소리가 훨씬 더 원음에 가깝다는 것,
멀티플랙스 영화관의 조그만 스크린보다 이젠 없어진 20, 30년전 대한극장의 거대한 상영 스크린이 훨씬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느새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편해졌기에 가치와 소중함도 그만큼 빨리 놓쳐 버리는 세상이 가끔은 안스럽기만 합니다.
토순이.
Live killers-Spread Your Wings - YouTube
http://www.youtube.com/watch?v=x0wWVYdN1BA&feature=share&fb_source=timeline&ref=profile&refid=17&_ft_=fbid.12626421754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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