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생활의 발견- 사진 찍기

tosoony 2013. 10. 26. 21:20

푸른 하늘이 높아만가는 황금같은 가을 주말이건만 아내는 직장일로 집을 비우기 일쑤다. 곧이어 큰 아이마저 주말 보충수업으로 집을 비우고 나면 남아있는 작은 녀석과 아빠 둘이서 하루를 보내곤 한다. 다른 아빠들은 같이 나가서 공도 차고, 게임도 한다는데, 그런 흔한 일조차 함께 해주지 못하는 이 아빠의 마음은 늘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집을 나선 아내는 틈날 때마다 전화를 해 온다.

"지금 뭐하고들 있나요?"

"점심은 뭐해서 먹고 있죠?"

그때마다 이런저런 비슷한 답을 하곤 하다가 오늘은 문득 떠오른 생각 한 가지. 백 마디의 말보다 사진 한 장, 영상 하나가 더 많은 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이미 오래전 아이폰에 푹 빠져 이런 저런 기능을 익히던 중 아이폰의 카메라로 사람에 포커스를 맞추면 자동으로 사람 얼굴이 몇 명인지, 그 위치를 보이스오버로 알려준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 때부터 나는 아이를 집안 여기저기로 끌고다니며 아마츄어 사진작가로서의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아이폰의 특성상 렌즈가 위쪽 구석에 있는 탓에 정면의 원하는 피사체를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조금만 아이폰을 앞으로 숙이다 보면 멀쩡한 마룻바닥만 찍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때마다 아이폰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공하는 놀라운 친절은 나로 하여금 곧바로 잘못된 점을 수정할 수 있도록 음성으로 안내해 주곤 했다.

'1명의 얼굴 작은 얼굴 왼쪽 가장자리에 있는 얼굴'

그럴 때마다 다시금 조금씩 상하 좌우로 자세를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1명의 얼굴 작은 얼굴 중앙에 있는 얼굴' 이라고 말할 때가 오는데 이 때 얼른 터치를 하거나 왼쪽의 음량 버튼을 누르면 마침내 사진 촬영이 끝난다.

아빠 때문에 죄없이 지루하게 이리 저리 쇼파와 거실벽 사이를 오가던 아이도 처음엔 짜증을 내더니 아빠의 뜻밖의 촬영 솜씨에 신기해하는 눈치다.

다음은 두 사람을 동시에 피사체 안에 두고 찍기. 큰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려 쇼파에 둘을 나란히 앉혀두고 도전한 사진찍기 역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자 비교적 손쉽게 촬영할 수가 있었다. 찍은 사진을 밖에서 일하는 안내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아내도 아빠 혼자서 두 아이의 정면 사진을 혼자 찍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운지 칭찬이 가득한 답문자가 돌아왔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아이들한테 미래 사회의 모습에 대한 글짓기를 지도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창의적인 글 속에서 미래에는 시각장애인이 우주선을 조종하고, 카레이서가 되며, 사진작가로 전시회를 연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어릴적 풍부한 상상력안에 머무를 것이라고 웃고만 넘어갔던 종이 위의 그 이야기들이 오늘 마치 예언과도 같이 이 순간 하나하나 실현되는 모습에 문득 작은 전율마저 느껴진다.

오늘의 마지막 도전은 셀카 촬영. 앞서의 도전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나는 휴대폰을 돌려 나를 바라보게 하고서 섬세하게 방향을 조정했다. 원하던 안내 설명을 듣자마자 찰칵! 셀카를 완성한 나는 예의 아내에게 포토 문자를 날렸다.

"내가 찍은 생애 최초의 셀카가 어때?"

조금 있자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답문자가 왔다.

"여보, 웬만하면 셀카는 금지하는게 좋겠어요... ㅠㅠ"

'어라, 왜 그런 거지?' 아내는 그 날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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