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영화이야기

시각장애인이 영화 '블라인드'의 영화평을 말하다

tosoony 2011. 8. 16. 02:35

오늘 말로만 듣던 영화 '블라인드'를 보고 왔습니다.

시각장애 여주인공(김하늘)이 변태 살인마의 목격자가 되어 쫓기면서도 시각장애인의 오감을 총동원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인데요.

작가가 나름 특이한 소재를 통해 공포와 스릴러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눈앞에서 주인공을 향해 잔악한 미소를 짓는 데도 불구하고 시각장애 주인공이 그것을 못 알아채는 장면은 정말 새로운 스릴러의 한 축으로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구요.~~

영화 속에서 우리의 이 아이폰이 아주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가려고 잠시 들렀습니다..

 

영화속에서 김하늘은 처음부터 아이폰의 보이스오버로 척척 전화를 걸고 받더라구요.

처음에는 작가가 마침 우연히 최신 아이폰을 쓰는 몇 안되는 맹인을 표본삼아 시나리오를 구성했구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아이폰이 시각장애인을 위기에서 탈출시키

 

는 첨단 it 도구로 사용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어넣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김하늘은 살인자로부터 쫓기면서도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눈앞에 그 자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데요.

그 때 멀리서 이를 지켜 본 동료가 자신의 아이폰으로 전화를 걸어 김하늘에게 이어폰을 꽂게 한 후 영상통화를 통해 주위를 돌려보게 하여 살인마가 맞은편 의자에 앉

 

아있다는 걸 알려 줍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려 대합실 통로에서 쫓기는 동안에도 아이폰의 영상통화 기능을 통해 전면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김하늘에게 알려주어 부딪치지 않고 도망갈 수 있

 

게 해줍니다.

정안인 입장에서는 뭐 별 것 아니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얼마전까지 제가 이곳에 올린 것처럼 주위 몇 분의 정안인들 사이에서 아이폰의 고성능 skype 영상통화로 독거 시각장애인의 일상생활과 독립 보행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모색해 보자는 논의와 실제 필드 테스트까지 좀 해본 경험은 있었는데, 이 시나리오 작가가 저희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는 건 정말 작은 놀라움이 아니었나 싶

 

었습니다.

그밖에도 영화 중간에 김하늘은 센서를 통해 물체가 접근할 때 진동으로 알려주는 전자 케인도 아주 적절히 활용하는 등 실제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무심코 넘어가는

 

여러 장치들을 맛갈나게 혼합하고 있습니다.

볼라드로 인해 항상 상처가 나 있는 주인공의 무릎과 스프레이 파스를 보여준다거나 컵이나 욕조에 물이 찼을 때 신호음을 내주는 기기를 범인 유인에 사용하는 것 등

 

은 얼마 간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을 뒤따라가면서 적당히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시각장애인 주인공이 전직 경찰학교 출신이라거나 지나칠 정도로 감각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것 등은 제가 보기에도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은 가질

 

수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를 그간 상영된 시각장애인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와 차별지을 수 있는 점은 분명히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시각장애인이 출연하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반드시 때없이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다거나 눈물어린 재활과 감동이 함께 버무려져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애초에 그러한 관객 대상의 계몽이 주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는 손끝, 청각 또는 냄새라는 감각 단서가 모두 동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일부의 단서는 틀린 추정이 되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마찰을 빚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만 그러한 혼란 조차도 작가는 평소 시각장애인 실상의 현실

 

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 흑백 TV에서 오드리 햅번이 시각장애인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두워질 때까지'인가라는 영화를 언뜻 본 기억도 납니다만 아무튼 나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에서 많은 수확을 얻어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라인드'란 영화를 통해 아이폰이 영화 속에서 자동적으로 시각장애인의 필수 재활도구로 일반인들에게 홍보가 되었다는 점은 앞으로 우리들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직 못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더운 여름, 한번 권해드리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