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넘겨서야 겨우 이 나라의 날씨가 제대로 된 봄날을 찾은 듯합니다.
요즘같은 때 사람들이 나들이를 하며 자주 찾는 곳은 단연 시내 극장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이렇게 날이 좋은 때면 극장가는 오히려 불황이라죠..
지난 해 추웠던 겨울, 늘 애청하는 시각장애인 연합회 kbumac 사이트의 화면해설 영화 가운데 하나가 생각납니다.
'굿 나잇 앤 굿럭(good night and good luck)'이라는 미국영화로 당시 mbc 주말의 영화에서 방영된 내용을 화면해설을 입힌 것이었는데, 아마 오래 전 극장에서나 TV에서 보신 분도 제법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대체적인 줄거리는 1950년대 미소 냉전 시절 믹국의 CBS 방송국의 뉴스 보도국 앵커가 당시 미 전역을 휩쓸던 매카시즘의 공포에 맞서 당당히 진실을 밝히는 내용이라고 하겠는데요.
요 며칠 아래 몇몇 게시물들과 올려주시는 기사를 대하면서 자꾸 제 맘속에 떠오르는 영화였습니다.
요즘같이 이 나라에 살면서 불확실성과 가치의 혼란, 국가 정책의 신뢰성 여부에 대해 국민들이 고민해 본 때가 있었을까요.
정권초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잘되었다 못되었다로, 대운하를 하지 않는다와 4대강 살리기이니 다르다로, 법통과까지 해놓은 세종시를 없던 일로 하겠다느니 등 실로 사람들의 기존 관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뒤엎는 이슈가 매일 쏟아져 나옵니다.
거기에 온 사방에서 사람들의 뒷통수에 소위 말하는 좌파, 좌경, 빨갱이니 보수, 우파, 꼴통 등 수시로 이념의 딱지를 붙이려는 행태가 아예 우리들 사이에서 습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다른 주제와 달리 좌파니 우파니 하는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부분으로 저도 거론한다는게 참으로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요 몇 년 사이 이런 좌우 양대 이분법 가운데 좌파니 좌경하며 특정한 한쪽 편만을 강조하고 그것이 마치 국가를 망치는 온상인 것처럼 단정하는 입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혹시 아래 문구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래 제목들은 제 주장은 아니고요, 인터넷에서 실제로 네티즌들에 의해 등록되었던 것들이니 한번 살펴보시죠.
박지성은 빨갱이다!
박근혜는 사회주의자다!
가톨릭 신부들은 모두 좌경분자다!
어떠신지요.
하나 하나씩 조금 부연 설명을 해드리면,
박지성이 빨갱이가 된 까닭은 작년 월드컵 본선 최종전에서 마지막 이란과의 시합에서 결승골을 넣어 이김으로써 북한이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고, 박근혜씨가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올해 초 여당과 정부 일각에서 세종시를 반대하는 박근혜씨와 친박계의 행태에 대해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가톨릭 신부들이 좌경분자가 된 것은 국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위의 문구들을 과연 얼마나 인정하실까요.
물론 개인의 관점이 다 다르기에 개중에는 완전 동의하는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 물어본 결과 대부분 무리한 주장이라는 게 대세였던 것 같습니다.
분명 이데올로기상으로 좌파란 국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가진 실존하는 계층입니다.
저도 대학교 때 사회과학 서적들을 좀 뒤져가며 머리아프게 외우던 기억이 나기는 합니다만 제 머리로도 이해하기가 참 쉽지 않았던 개념이었죠.. ~~ㅋㅋ
그렇지만 부족한 제 생각으로도 지금의 우리의 좌파라는 개념에는 세가지 면에서 원래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우선, 진짜 사회과학서에 나오는 순수 좌파나 좌파 정권의 개념과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 세계적인 좌파 우파의 분류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완벽하게 뒤집어져 있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좌파의 정의는 주류 정권의 입장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첫째와 둘째의 내용은 아래 여러 게시물들에서 오래 전부터 다들 거론하시던 것이기에 생략하기로 하고요, 저는 마지막의 내용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용산 철거민 참사 때 그 가족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 가족은 일부 언론과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자기들을 좌파라고 매도하는 것에 대해 평생토록 x선일보만 보고, 선거 때마다 x나라당만을 찍어 온 자기들이 어찌 좌파가 되며,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이라는 말이냐라고요..
또 얼마전 모 시민단체의 4대강 사업 반대 토론장에 참석한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들이 한 토론자의 4대강의 문제점 관련 발표 뒤에 이루어진 질문에서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당신은 6.25를 겪어봤느냐?..."
앞서 소개한 영화에서 1950년대 미국은 매카시라는 의원이 미국 국무성 내 수백명의 빨갱이 좌파가 있다는 폭탄선언을 함으로써 온 국가를 4년여 동안이나 빨갱이와 반공의 패닉상태에 빠드렸습니다.
백악관의 관리들과 정 재계는 물론 국방부와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매카시의 입에서 나오는 좌파, 빨갱이라는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고 몸을움츠렸고 그들은 주위 사람들이 억울하게 빨갱이 취급을 당하면서 매장되어 가는 것도 외면하게 됩니다.
그 때 바로 CBS 방송의 한 앵커가 이러한 매카시의 편향되고 악의적인 덧씌우기 행태를 매스컴을 통해 고발하게 되고, 매카시의 빨갱이 딱지에 굴하지 않고 결국 진실을 알리게 된다는 내용은 50여년이 지난 오늘 태평양 바다를 넘은 이 곳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동족상잔의 비극과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한 피비린내나는 고통을 겪은 나라로 그러한 어려움을 재현하지 않기 위한 노력과 경각심에 대한 가치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또 국가의 자위권을 위해 안보의식을 높이는 작업만큼 필요한 것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본분에서 벗어나 국가가 행하는 정책은 늘 정답이고, 그에 반대하여 혼란을 조장하는 세력은 이 나라를 저 위쪽의 나라에 고스란히 바치려는 사람들과 한 편이며, 결과적으로 그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덩달아 좌파, 불순세력이라고 매도하는 도식만큼 공포스럽고 위험한 논리가 또 있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이러한 계산된 프레임에 천착해 사람들에게 잘못된 색안경을 싀우고 세상을 보도록 유도하는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들의 손 끝으로 이끌며 특정한 집단과 부류를 찝어 사상 검증이라는 잣대로 빨간색을 칠하려고 애를 쓰곤 합니다.
그리고 그 타겟이 된 대상은 일단 언론에 오른 순간 사실무근 여하에 관계없이 이미 빨간색의 전력을 가진 불순한 존재로 취급을 받게 되고, 덧칠을 시도한 집단은 실제로는 이미 성공을 거둔 셈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좌파 10년이 끝난 지 3년여가 되도록 좌파 판사, 좌파 교사, 좌파 종교, 좌파 예술가 등 빨간색을 뒤집어 쓴 집단은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또 다른 신종 좌파 맹인(?) 부류가 출현했다고 걱정하시는 분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되네요..~~ㅋㅋ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혹시 우리가 지나치거나 잘못된 색안경으로 비이성적인 군중심리에 휩싸여 알맹이를 놓치고 냉정하게 사회를 바라보지 못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21세기 소중한 내 가족과 형제, 이웃이 한국판 매카시즘의 망령으로 인해 한순간에 억울한 눈물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길이 아닐까요?
장황한 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혹시라도 생각이 저와 다른 몇몇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를 바라며..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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