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혹시 댁에 재봉틀 있으세요?

tosoony 2010. 10. 5. 01:04

지난 추석 긴 연휴 어떻게들 보내셨는지요?

개인적으로 저에게 이번 추석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기간이라 그런지 아직도 그 여운이 문득 문득 떠오릅니다.

사실 마음의 여유가 좀 있었다면 예년처럼 종종 이 블로그에 들어가 제 넋두리도 좀 하고, 블로그질도 해가며 이곳을 꾸몄을 텐데 한동안 텅 빈 공간을 방치했네요~~

 

제가 갖고 다니는 보물들 가운데 한소네 lx라는 점자정보단말기(시각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가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나 직장에서 수업을 위해 교실문을 넘나들 때나 늘 어깨에 메고 다니며 요긴하게 쓰는 이 물건이 어느 날 갑자기 제 어깨에서 스스로 내동댕이쳐지며 저를 경악케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게 웬일, 멀쩡한 어깨끈이 떨어져 나간 것이죠.

대여받은지 채 6개월 밖에 안되는 새 기기의 천으로 된 어깨끈의 끝에 고리가 연결되어있었는데 그 연결을 이어주는 부분의 박음질이 스르륵 풀려 고리는 고리대로 본체는 본체대로 각자 나동그라진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뭐 어깨끈이야 소모품이니 몇 천원주고 새로 교체하면 되겠다라는 마음에 끈을 버릴까도 하다가 그냥 주워왔었지요.

그런데 업체에 전화해보니 그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별도로 어깨끈만 파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한소네를 감싼 케이스까지 함께 구입을 해야 하는데 요것이 6만원이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장애인용 공학기기들의 부품값이 세계적으로 좀 높게 책정된다는 현실적인 면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작은 문제에도 통째로 무엇인가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은 사용자들의 세세한 입장을 고려치 못한 사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조금 더 서운했던 점은 이게 소모품으로 개인의 과실이 우선이라 한다지만 같은 시기에 동시에 대여받은 제 곁의 선생님 한 분도 산 지 2달만에 똑같은 문제로 이미 몇 달째 몸체만 끌어안고 다닌다는 것이었고, 다른 선생님들의 한소네 어깨끈도 살펴보니 어설픈 박음질에 조만간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 같다는 조짐이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소모품의 규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담당자가 업체 개발팀에 좀 더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튼튼하게(?) 만들게 하겠다는 답변 아닌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적인 조언의 말씀,

주변에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봉틀로 몇 번 수선을 하시면 금새 쓰실 수 있을 거라는...

 

피식 웃으며 전화 통화를 끝냈습니다.

그런데 끊고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재봉틀을 어디서 봤더라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봉틀'

 

참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단어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재봉틀이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낯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서울의 변두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낡은 마루끝과 작은 방 한켠에서 눈에 익었던 재봉틀..

뾰족한 바늘이 발밑의 페달을 밟을 때마다 새의 부리처럼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입 끝에 매달린 실을 무엇인가 천위에 소복히 쪼아대던 그 재봉틀은 어린 저에게 자못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제 할머니와 어머니는 재봉틀을 어린아이들은 손대지 못하는 물건으로 간주하고 당신들만이 조작 가능한 아주 귀한 물건으로 관리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구멍난 옷감, 박음질이 풀어진 낡은 커튼, 누이의 학교 가사 실습 숙제 등등..

종종 그 재봉틀은 우리 집에서 요긴하게 돌아가며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을 되살려주고 부족함을 메워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재봉틀을 어디서 구하나 생각하던 끝에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런 거 박아주는 재봉틀 어디서 구하지?'

저의 물음에 아내는 피식 웃으며 세탁소에 맡기면 다 되는 거 몰랐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제서야 동네 세탁소에서 옷수선을 할 때에도 재봉틀을 주로 사용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런데 이거 몇 번 박아달라고 집에 오라고 할 수도 없고, 들고 나가야겠는데 저나 아내나 저녁시간마다 왜 그리 일이 많은지 도통 아파트 근처의 세탁소를 들를 짬이 안나더군요.

그래서 2주가 넘도록 가슴에 보물처럼 끌어안은 채로 수업에 들어간 뒤에야 겨우 근처 대형마트 내의 세탁소에서 무료로 박음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1분도 안 걸리는 이 일을 못해서 그렇게 아쉬운 통화를 하고, 끈만 가방에 넣어 둔채로 집앞을 드나들었다는게 참 우스웠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그 늦은 밤, 우리들의 머리맡에서 조용히 재봉틀의 바퀴를 능숙하게 돌리며 헤어진 옷감을 재단하시던 젊은 날의 할머니와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널려 있고 쉽게 구하며 쉽게 버리는 세상.

가끔 갖는 생각은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원하는 것을 가지기에 또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물질만능과 금권지상주의에 빠지고도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더 얻으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이 참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의 한가운데 10월입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날씨로 얼룩진 올 한해이지만 마음만은 온기를 잃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네요...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