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영왕이라고 하는 5월이다.
유독 5월에 기념할 날들이 여럿 지정된 이유는 그만큼 축복받은 화창한 날씨로 가득하고, 인간이 활동하기 좋은 때라서가 아닐까.
만약 내 자신이 혼자 보행할 능력이 없거나 그런 형편이 안되어 집안에 갇혀 있거나, 심부름 차량 속 창문사이로만 이 계절의 햇살의 기운을 느껴야만 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길고도 우울한 이상 기온의 터널에서 벗어나 뒤늦게 찾은 봄기운을 느끼면서 흰지팡이로 출퇴근을 하며 요즘 자주 느끼곤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역시 시각장애인이 독립 보행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과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은 한 층이 4가구씩 31층으로 된 거대한 규모이다. 한 집에 4명씩만 산다고 계산해도 496명이니 웬만한 시골 동네 전체 주민 인구가 아니겠는가.
그러다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두 개임에도 언제나 기다려야 하고, 1층 현관 앞은 웬만한 관공서 입구처럼 넓기 그지없다.
그 날 아침도 분주하게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고 집안 뒷정리를 한 후 급하게 1층으로 내려갔다. 한 아파트에 같은 학교 동료 여선생님이 있어 바쁜 출근 때에 카풀을 하기에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1층 현관은 자동 센서가 있어 가까이만 가도 안에서 열리게 되어 있고, 열려진 문을 통과하면서 가방에 든 흰지팡이를 펴서 옆 동 앞까지 걸어가 차를 기다리는게 평상의 일과였다.
자동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성큼 걸어나가 흰지팡이의 고무줄을 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얼굴앞이 답답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눈앞이 번쩍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어이쿠, 이게 뭐야?"
생각지도 못한 물체와 부딪친 이유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물체란 내가 사는 동 어느 집의 입주를 위해 이사짐을 내려놓기 위해 대어놓은 대형 트럭의 뒷꽁무니였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그렇겠지만 열린 공간에서 무엇인가와 부딪칠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고통에 대한 분노보다 창피함과 멋쩍음에서 벗어나려는 보호본능이라고 하겠다.
나 역시 그 순간은 이마가 아픈 것도 제대로 느낄 새가 없이 시간에 늦지 않게 카풀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짜증스런 푸념만 몇 번 한 채로 그곳을 황급히 떠나갔다.
차에 올라타고 이마를 손수건으로 대어보고서야 통증과 함께 피가 조금씩 새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 넓고 넓은 현관앞 공터에서 꼭 현관문 앞 1m도 안되는 공간까지 바짝 차를 대는 센터 직원의 무개념에 화가 났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보건실에 들러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찢어진 정도가 병원에서 봉합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에 대일밴드라도 붙이자는 권유도 사양하고 연고만 바른 채 그 날의 일에 들어갔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는 내 모습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혹시 흰지팡이 보행을 하다가 사고가 난 건 아니냐는 가족의 질문에 아침 시간의 어이없는 해프닝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나마 이 정도로 경미한(?) 흔적과 내 머리의 튼튼함(?)에 대해 내 스스로 놀랍다는 농담으로 그 날 일을 잊으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마침 대전으로 내려와 집안 일을 거들어 주시던 장모님께서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유독 분을 삭이지 못하시는 것이었다.
앞도 못보는 불쌍한 사위가 그런 봉변까지 당했다는게 그 얼마나 안타깝고 화가 나시겠는가..
아무튼 다음 날 퇴근을 할 때였다.
평소에는 간간히 인사만 나누던 아파트 경비실의 경비 아저씨가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는 내쪽까지 부리나케 달려와서는 내 팔을 부축하는 것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러나 아저씨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 이게 웬일이여~~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나한테 말혔어야제~ 괜찮은겨?"
그제서야 어제 아침 사고일을 말하는 것임을 알았다.
한사코 별 큰 사고는 아니고 치료를 받아서 금방 나을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며 집앞까지 안내해 주는 그 분께 몇 번이고 확인을 시켜 드린 후에야 그 분은 돌아서 가셨다.
집 안에 들어서니 장모님의 격한 목소리가 한층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 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나의 물음에 당신께서는 오늘 당신이 손수 처리하신 행적들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우선 1층 경비실로 내려가 코앞의 현관에서 벌어진 일에 대처를 하지 못한 경비들을 세워놓고 잘라 버리겠다며 정신 못차리게 혼을 냈고, 관리사무소 소장에게는 열 번도 넘게 전화를 해 당신 사위가 억울하게 다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여 결국 사과를 받아냈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전 날 짐을 부리고 가버린 이삿짐 업체까지 찾아내곤 사무실에 전화해 역시 관리 책임자에게 다시는 이 아파트로 올 때는 현관 앞에 차를 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신 것이었다.
평소 시골에서부터 여장부로 혼자서 동네 농사와 과수 양계를 치셨던 장모님의 투사(?) 기질은 그렇게 하루 종일 내가 사는 아파트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하고도 분이 안풀리시는지 저녁 내 큰소리를 치시는 장모님을 가라앉히느라 우리 부부는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계절이 바뀐 어느 날, 아파트 입주자회에서 동마다 현관앞 공터에 무단으로 외지차들이 주 정차를 한다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말뚝을 박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공식적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대는 트럭 등에 대해서는 말뚝과 지표면을 있는 자물쇠를 만들어 필요시 뽑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무단주차 문제로 불편을 겪던 정안인 입주자들에게야 반가운 소식이리겠지만 안 그래도 흰지팡이로 출퇴근 할 때마다 내 경골과 생명의 위협의 주범인 볼라드로 예민한 상황에서 집 코앞에까지 말뚝을 박는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걸 아파트 관리 담당자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장을 보고 오시던 예의 나의 장모님께서 이 광경을 보시고는 물건도 내팽기치고 달려가 말뚝을 박는 인부를 붙잡아 내 사위 넘어져 죽게 만들거냐며 눈물이 쏙빠지게 혼을 내신 것이다.
인부가 아무리 아파트 전체에서 결정한 일이라며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날의 해프닝이 있은 며칠 후부터 총 16동의 아파트 모든 현관마다 우람한 말뚝이 두 개씩 박혔지만 내가 사는 203동 앞에만은 오늘까지도 말뚝이 없이 멀쩡하다.
그날 이후 생긴 또 한가지 변화가 있다.
저녁 흰지팡이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설 때면 예의 경비 아저씨가 부리나케 내게로 달려오시며 한사코 괜찮다고 해도 길을 건너 아파트 현관앞까지 안내해 주시는 것이다.
이런 일상은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이런 일을 대하면서 처음에는 너무 지나친 내 장모님 행동이 창피해 우리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도 나름 이웃 사이에서는 교사 생활하며 순리가 통하는 직장인들이라는게 이렇게나 마구잡이식으로 넌더리를 치게 만들면 결국 우리 가족만 외면당하는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단한 특수교육이니 장차법 조항 하나 모르시는 내 장모님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며, 당신의 숨은 애정에 고마움을마음 속 한켠에 새삼 느끼게 되었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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