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시각장애 아이폰 새내기의 수난기

tosoony 2010. 11. 20. 01:24

1) 마이너스 1일째

 

고민을 거듭하다 (말라죽을 것 같은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저지른 아이폰 38차 예약 신청.

대체로 한 주에 10차씩 수령되는 것으로 보아 10월 초순에 받게 되겠군 짐작하고 있다가 심심해서 쇼 공식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웬일, 38차는 9월 28일에 개통 예정이란다. 그런데 반가워야 할 수령 일정이 왜이리 마음이 답답한지..

어라~~ 드디어 9월 27일 내일 아이폰을 수령하러 근처 매장에 나오라는 문자가 날라들었다.

이제 2년 동안 손에 익은 소위 시각장애인폰과도 이별인가 하는 마음에 씁슬해하며 다음 날을 기다렸다.

 

2) 0일째:

 

교감 선생님께 점심시간을 빌어 학교앞 휴대폰 매장을 다녀오겠다는 구두 허락을 맡았다.

교감샘 왈, " 휴대폰 바꾸는겨? 그 아이폰인가 하는거 사는거 맞지!" 하며 심문 아닌 심문을 하신다.

대충 둘러대고 동료 직원과 함께 부리나케 직장 근처 매장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한산한 것이 역시나 매스컴의장난이었군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 문자를 직원에게 내보였다.

그런데 한참 단말기를 두들겨 본 직원의 말, "오늘이 아니신데요..."

이게 대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당당히 공식 문자까지 받고 인터넷 블로그 일정까지 확인하고서 왔는데 초장부터 물먹이는 소리라니..

그러나 멀뚱거리는 직원의 말에 의하면 원래 문자 말고도 매장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아야 진짜고 이 문자는 자기네들이 잘못 보낸거란다.

어려운 시간을 쪼개 달려왔는데, 내 잘못도 아니고 지들 잘못인데 이렇게나 당당할 수가 있는지..

안그래도 KT와의 오래된 악연(?) 때문에 찜찜해하던 차에 한바탕 언성을 높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물건은 받아보고 결판내야겠다라는 마음에 인내의 호흡을 가다듬고 돌아서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참는데, 내일은 어디 한가지라도 걸리기만 해라~~~'

 

3) 1일째: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같은 절차를 밟아 헐레벌떡 매장으로 달려갔다.

성격상 무언가를 하려다 못하게 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참에 억울하게 하루를 낭비한 것 같은 마음으로 긴장한 채로 서류를 작성했다.

'오늘도 딴소리만 해봐 그냥~~'

그럭저럭 서류와 잔금, 계약 조건을 따져가며 이전 폰의 데이터를 옮기고 폰을 받아들었다.

아이폰에 보이스오버라는 tts가 들어있다는 것을 직원들도 아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켜주는 걸 보면서 잡스의 성의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 온 동료는 신기한 기기에 매료되어 연신 두들겨보기 바쁜데, 건네받은 첫 느낌은 그저 납작하고 차가운 유리막대판을 대하는 느낌이라까, 도통 이것이 전화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에 당황스럽기만했다.

아무튼 간에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근무지로 돌아오면서 제발 전화가 오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다행히 그리 자주 오던 전화가 오지 않았다.

컴 앞에 오자마자 미리 다운받아 둔 아이튠스를 실행시켜 동료의 도움으로 계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누구 누구는 센스리더의 도움만으로 진땀을 빼면서도 전맹 혼자 계정과 신용카드 입력을 마쳤다지만 본론도 못가보고 퇴근 시간까지 프로그램 주무르다 혼자 쓰지도 못하는 전화기를 들고 퇴근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이런 저런 짧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아이튠스 설치, 계정 작업을 마치고 전화기 사용이 가능할 때쯤 퇴근 시간이 되어버렸다.

마치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와 헤어지는 느낌으로 동료에게서 아이폰을 받아들고 혼자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참 갑갑하기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흰지팡이에 의지하여 복잡한 4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처음 듣는 디지털 음향소리가 안주머니에서 울렸다.

허겁지겁 가슴속을 뒤져 유리판을 꺼내는데 어디가 앞면인지 뒷면인지부터 헛갈린다.

분명히 앞면을 두 번두들기면 된다는데, 몇 번 두들겨도 벨소리는 계속 울리고, 두 손을 벌려도 보고 오므려도 보고 세게 두들겨도 보아도 바로 받아지지 않더니 겨우 조용해졌다..

 

.

.

.

전화가 끊겼다.

 

도대체 이거 뭐하는 짓인지.

어두운 앞날이 눈앞에 느껴지면서 이거 미친 짓한거 아닌가라는 첫 번째 후회가 강하게 밀려들었다.

 

4) 2일째

 

간밤에 밤늦도록 주물러 대면서 전화기 아이콘을 들락거리며 옮겨온 전화번호부를 차례로 흝어내려 이름을 찾아 거는 연습을 했다.

몇 시간을 연습한 결과 전화오는 것을 받을 때의 손가락 자세와 특정 전화를 걸 때의 순서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중간 중간 엉뚱한 상태로 빠질 때마다 아내를 불러 도움을 청했지만 아내 역시 터치에 처음인지라 헛손질하기는 두 사람이 마찬가지..

그래도 명색이 it 계열에서 10년 넘게 일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렇게나 투자한 시간만큼 학습의 진도가 느릴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20여대 넘는 휴대폰을 쓰면서 그래도 몇 시간 주무르면 대략 사용법과 얼개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건 갈길이 태산이었다.

아무튼 둘째날 그래도 전화 걸고 오는 전화 받을 줄은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 하나로 아침에 직장으로 나섰다.

학교일을 하면서 덤으로 외부 교육 기관과 기타 컴퓨터 관련 업자들과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부탁이나 프로젝트 진행, 그밖에 궁금한 사항을 묻는 전화를 자주 받곤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할 상황도 자주 발생하는데, 이 아이폰에서는 그러한 업무에서의 통화에 대한 민첩함이나 기민성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즈음 점차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외부에서 차를 타고 이동 중이나 걸어가면서 다른 안내자의 팔을 잡고 한손으로도 당당히 엄지손가락만으로 전화를 걸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러한 당연한 습관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뒷자리에 앉아 조금만 몸이 흔들려도 터치는 계획한 곳을 비켜갔고, 수전증에 걸린 것도 아닌데 저절로 엉뚱한 사람 이름에 두 번 터치가 되어 전화가 걸리기 일쑤였다.

도대체 두 번을 두들기면 전화가 끊어진다는데 나는 왜 안끊어지는지, 생각도 않던 사람과 통화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면 괜한 너스레에 간만에 생각이 나서 해봤다는(?) 둥 둘러대기 바쁘다.

이러다 원치 않는 거짓말만 느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더욱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다행스럽게 잘못 건 전화를 용케 빨리 끊었는데, 이 인간이 계속해서 내게 전화를 해오는 것이었다.

내가 미리 끊으면 필요가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면 될 일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리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 죽어라 계속 전화를 걸어온다..

곁에 있는 동료가 왜 전화를 안받냐면서 혹시 빚쟁이냐고 남의 속도 모르고 물어온다.

이러다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 다 말아먹는 건 아닌지...

 

5) 3일째

 

아무래도 이상했다.

나보다 앞서 아이폰의 세계로 빠져 자칭 성공한 모델로 알려진 주위 시각장애 지인에게 물어보면 잘된다는데, 내 손가락은 뭐가 고장난 것인지 시키는대로 해도 엉뚱하게 띵띵거리는 충돌음만 들린다.

두 손가락을 벌려 두 번 터치하면 전화가 걸리고, 통화가 끝나 끊을 때에도 두 번 가볍게 터치하면 곧바로 끊어진다는데 내 경우는 화면을 좌우로 몇 번 비비고 나서 두 번 두들겨야 전화가 받아지거나 끊어지기 일쑤였다.

아이폰을 쓰면서 폼나게 터치하면서 전화를 받으리라던 내 의도와 달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뭐 폰에 불만있냐면서 왜 그리 맨날 황급히 화면을 비벼대다가 전화를 받느냐며 어리 둥절해할 때는 뭐라 얘기를 해주어야 할지 갑갑하다...

특히 전화 연락처 목록에서 ㄱ ㄴ ㄷ 순으로 인덱스를 변경하려고 할 때 남들은 한손가락으로 위 아래로 쓸면 전환된다는데 아무리 지복에 힘을 주어 쓸어내려도 바뀌질 않았다.

그러니 600여명이 넘는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서는 가씨부터 계속 훑어내려 가야 했다..

급하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겠다며 복도에 서서 진땀을 빼며 쓸기를 반복하는데,

그걸 곁에서 쳐다보는 사람들 왈,

"저럴 거면 아이폰 왜 산겨~~ 쯔쯔..."

하며 한심해한다.

이거 as센터에 보내야 하는겨~~?

두 번째로 괜한 짓을 한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화가 극에 달할 때쯤 문득 스치듯이 손가락 하나를 훑는데, '니은'이라고 소리가 난다.

그제서야 한손가락의 지복이 아니라 스치듯이 쓸어야 동작하는 기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6) 나흘째

 

sms 문자는 또다른 장벽이었다.

이전 폰에서는 매달 무료 100건이외에 추가로 100여건씩 사용하면서 제법 민첩하게 이모티콘까지 써가며 풍요로운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아이폰으로 바꾼 후에는 그러한 전력은 고사하고 도착한 문자 열어보기에도 바빴다.

 특히 문제는 문자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이미 아이폰을 바꾸기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서 자판 사용이 제일 문제라는 얘기나 누구는 문자 한 통 보내는데 5분이 걸렸다는 등 어려운 비화를 자주 들었지만 정말 비싼 폰을 앞에 놓고서 업무상필요한 내용을 문자로 보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손떨림을 최소화하며, 어떻게 하면 공을 들여 가장 짧은 글자수로 내 의사를 전할지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자판을 더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서글프기까지 했다.

 더더욱 짜증나는 것은 문자를 보낸 상대가 자꾸 내 문자에 재질문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 대충 알아들을 일이지 왜 그리 궁금증이 많은건지.. 남의 속도 모르고, 이 인간 진짜 질기기 짝이 없다.

 그도그럴 것이 웬만한 질문에는 "응", "아니", "그래" ... 이런 식으로만 내가 답을 하니 궁금하기도 할 것이었다.

 결국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종국엔 성질부리며 통화를 눌러 꾹 참았던 얘기를 전하고만다.

 상대는 영문도 모르고 문자 보내면 될 소리를 왜 전화로 하냔다.. 으이그~~~

 

7) 닷새째

 

시각장애인에게 전화 ars는 아주 요긴한 서비스임에 틀림없다.각종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신문이나 소리 사서함은 물론 텔레뱅킹이나 철도 예약 같은 것은 전화에 친한 시각장애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기능이었다.

평소 텔레뱅킹, 철도 예약을 애용하는 입장에서 스마트폰은 웬지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는 선입견은 크나 큰 착오였음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날도 외부에 나와 있는데 아내가 왜 아들래미 태권도 학원비를 송금 안했냐며 빨리 보내란다.

평소처럼 한소네로 보안카드와 학원 계좌번호를 열어놓고 전화를 걸었다.

문득 귀에 아이폰을대고서는 도저히 키패드 번호를 누를 수 없다는 생각에 옆으로 떼어놓았다.

그 즉시 아이폰의 스피커폰 기능이 동작하면서 수화기 속 메시지가 크게 들려왔고, 키패드 위의 번호를 찾으려고 쓸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도통 아이폰의 보이스오버의 코맹맹이 소리가 스피커폰에 묻혀 알아먹을 수가 없다.

주위가 시끄러운가 하는 생각에 다시 귀에 대니 스피커폰 기능은 꺼졌지만 키패드가 안먹는다. 이토록 당황스러울 수가...

도대체 어쩌란 것인지.

결국 송금은 실패..

나중에야 아이폰 사용자들이 왜 이어폰을 휴대하는지 알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감함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 철도 예약은 그러한 충격을 증폭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 올해 들어 유달리 서울과 지방 출장이 많은 터라 KTX를 애용해 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sms 발권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너무도 편리한 기능이 아닐 수 없었다.

 그 날도 자연스럽게 전화상담원에게 예약을 마치고 sms 발권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 그런데 잠시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나더니 하는 말,

 "저, 갖고 계신 폰으로는 sms 발권이 안되는데요..."

 이젠 완전히 경기가 날 수준이었다.

 스마트폰은 웬만하면 다 되는 줄로 알았는데, 왜이리 안되는게 많은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이유인 즉, sms 발권 시스템 자체가 기존의 폰에 있는 네이트 접속 기능을 기반으로 만들어서 무시로 인터넷을 드나들 수 있는 스마트폰에는 아직 안된단다.

너무 앞서가서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 지금까지 지난 한 달여 동안 아이폰과 연을 맺으면서 초기에 겪었던 애피소드를 희화해 적어 보았습니다.

물론 아이폰은 위의 글처럼 불편하기만 한 기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동안 엡스토어에서 받은 신문으로 매일 아침을 즐겁게 만들고있고, pop3가 되는 외부 email을 통해 지방 출장 중에도 급한 공문을 열람하고 있으며, 쇼네비로 아내의 운전을 도와주고, 미국에 있는 제 아이와 skype로 무료 통화를 하며, 러닝 머신을 타면서 고음질 mp3음악에 심취하고, 블로그에 올라온 다른 사람의 댓글에 답을 하는 등 저의 생활은 이 아이폰 덕분에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다만 그간 아이폰에 대한 열풍이 너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 같아 잠시 웃고 지나가자는 마음에 우리 카페에 짬을 내 포스팅을 해봅니다.

물론 다름 분들은 저처럼 무지한 실수는 안 겪으시겠지요..~~ ㅋㅋ

나름 이러한 좌충우돌도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앞으로도 이러한 기기들이 많이 나와 시각장애인의 재활과 윤택함에 작은 보탬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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