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설명절에 생각해보는 가족에 대한 단상

tosoony 2010. 2. 13. 03:03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의 대이동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설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입춘을 넘긴 뒤의 폭설로 고향을 향해 가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 해 한 해 점점 더 빠르게만 다가오는 설을 대하며 그 어릴적 언젠가 세뱃돈과 맛난 음식을 고대하며 매일같이 달력을 들여다보던 나의 어릴 적을 기억해 보게 되네요.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과연 설, 아니 명절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 오후였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수도권으로 역귀성을 하는 중에 같이 지내는 장모님을 모셔다 드리기 위해 동승한 당신과 아내의 대화 한 토막이 떠오릅니다.

  지난 해 늦장가를 간 처남댁의 산후조리를 도와주시고 이번 참에도 아예 당신 아들네에서 차례를 지낼 요량으로 서울로 가신다는 장모님에게서는 크게 세 종류의 서로 다른 가치관에 근거한 말씀이 있었는데요.

  우선, 하나는 서울로 올라오기 전 당신 아들에게서 걸려온 전화 내용이었습니다.

일하느라 바쁜 틈에도 설 준비를 급하게 해야 할 어머니를 대신해 미리 시장에서 제수용품을 사다 두었으니 알고 계시라는 아들의 목소리에 당신께서는,

“귀찮아 죽겠는데 자꾸들 이것 저것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올라가봐야 하지 않겠니.....”라는 당신의 말씀 속에는 성가시다는 단어 사용과는 달리 당신 아들에 대한 기특함과 당신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자식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이 묻어 났습니다.

  다음으로 화제가 이제 막 몸을 푼 지 한 달여를 지낸 처남댁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는데요..

  저와 함께 17년 동안 맏며느리로 시부모를 경험해 본 아내가 시어머니, 시누이가 얼마나 힘든 존재인지 아냐며 가급적 잘 못해도 며느리가 하고 싶은대로 또 하자는 대로 그냥 놔두라는 충고 아닌 충고에 어이없어 하시면서 하는 말씀,

“나야 지들 도와준거 밖에 더있니? 솔직히 지드이 감사해해야지 내가 뭘 못해준 게 있다고 그러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연신 새 며느리가 아이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끌어안고만 있을 줄만 안다는 둥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예의 말씀을 하십니다.

  세 번째로 이제 화제는 역시 서울에서 맏벌이로 늦게까지 강의와 연구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처제네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작년 어느 때인가, 처제가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있었는데, 통화 중에 시골에 계신 시어머님께서 아쉬움에 하신 말씀 내용 중에 “아니 너는 손가락이 부러지기라도 했니? 어쩜 이렇게 전화 한번 할 줄 모르니?”라는 내용이 있었다네요.

장모님께서는 그 때 들은 당신 딸아이의 그 말이 시간이 지나도록 영 서운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일하는 여자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어쩜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당신이 좀 하시면 안되는거니?”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모녀가 나눈 여러 화제의 이야기였지만 이 짧은 내용 속에는 오늘날 우리들 인간의 삶에서 겪게되는 여러 갈등과 생각의 차이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저의 장모님께서 쉽게 하신 말씀이 잘못되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사실 이런 어찌보면 앞뒤가 안맞는 생각을 하는 분이 어찌 제 장모님 뿐이겠어요?

제 아내의 시어머니는 물론 어쩌면 이 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행동으로 나타내는 모습이 아닐까요?

모두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로 신분이 뒤바뀌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만 산을 올려다 보거나 밑으로 내려보려 할 때 산은 같으나 같지 않은 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오늘도 TV에서는 설명절의 전통을 발전시키자는 덕담이 가득합니다. 문화란 시대에 맞게 재창조되고 새롭게 계승 발전될 때 그 가치가 온전해진다고 볼 때 어느 한편에서는 그러한 전통이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만 작용한다면 그것이 과연 미풍양속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이라는 틀 속에 부족한 아들로, 그리고 남잘호 남은 제 자신을 반성해 보기도 하네요. 뻔히 힘들어하는 줄 알면서도 감싸주고 덮어주려 하지 못하고 으레 그러는 것이려니 하며 외면해온 이 시대 남자들의 모습 역시 구태를 극복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아쉬운 행태와 별반 다를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내가 내일은 새벽부터 부친개와 동그랑땡을 부쳐야 한다고 하네요.

요며칠 직장일이 고되다면서 힘들다는 소리를 제게만 살짝 해온 아내의 눈초리가 영 무섭더라구요.. ~~ ㅋㅋ

아무래도 내일은 제가 먼저 사고만 치는  부족한 손놀림이지만 동그랑땡 제작 공정에 자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소원 성취하세요.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