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동구야, 제발 좀우리도 날아보자!

tosoony 2011. 1. 9. 05:16

몇 년전 개봉된 영화 가운데 '날아라 허동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허동구에게 유일한 관심은 점심시간 주위 친구들에게 주전자로 물을 떠다주는 일이고 그들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고 하겠는데요.

영화는 이러한 동구의 모자란 행동에 창피를 느끼고 항상 업신여기는 부잣집 남학생이 점차 동구의 인간적인 면에 이끌려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언론, 그리고 심지어 이곳 게시판에서도 때아니게 학교 현장의 무상급식이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되는 것을 지켜보며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 지울 수 없습니다.

저도 아련한 기억 속에서 70년대 점심 도시락을 줄자를 든 선생님 앞에서 열어보이며 보리알이 섞여있는지 검사를 받고, 길다란 점심빵을 급식으로 받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2남 2녀를 키우시던 제 어머니는 매일 저녁이면 내일은 또 어떻게 4개의 도시락을 싸야 하는지가 제일 큰 고민이었다고 지금도 말씀하시곤 합니다.

제가 살던 서울 초등학교의 모습이 그러했을진데 60~70년대 어려울 시절 점심을 제 때 먹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이 글을 보시는 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먹을거리가 가득하고 먹는 것보다 버리는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시대에 뜬금없이 '무상급식'이라는 화두가 사람들의 편을 가르고 반목을 하는 소재가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주제와 달리 무상급식에 대한 논의는 저에게는 단순히 먼 이야기는 아닙니다.

학교 홈페이지의 게시판들 가운데 급식 게시판 조회수가 유독 제일 많고, 4교시를 늦게 끝내주는 선생님이 제일 나쁜 선생님이라는 아이들의 입방아가 미소로 다가올 만큼 아이들에게 점심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점심식사란 단순히 아이들이 제각기 먹고 싶은 것을 제 형편이나 식성대로 맘껏 먹는 자유 시간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식사는 엄연히 '식사지도'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이 함께 하여 때로는 질책하고 습관을 고쳐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육의 시간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 시간 동안 공동배식을 위해 차례로 줄을 서고, 마음에 안드는 반찬들이 나와도 억지로 눈치껏 몇 젓갈이나마 먹어야 하며, 다 먹은 후에는 잔반이 없는 상태로 수거통에 담아 놓고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질서와 규칙을 지키며 아이들은 편식의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고, 배고픔을 참는 법과 낭비욕을 없애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점심식사지도에서 엇는 잇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앞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제가 잠시 떠오른 영화속 한 장면을 적은 것은 우리들이 오늘 거대 얼론과 일부 정치가들의 계획된 수사에 홀려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해서인데요.

영화속 주인공인 허동구가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 주전자로 물을 떠주는 데 보람을 느낀다는 장면 속에서 감독이 내보이려 한 것은 신분과 장애 정도를 초월하여 함께 어울린다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즉 영화속 허동구와 반목하는 부잣집 남학생이나 장애로 무엇하나 도움이 안되는 허동구 모두 그 시간만큼은 하나로 어울리게 된다는 것이죠.

최근 서울시장이 시의회와 유례없는 반목을 하고, 여당과 다른 야당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내세우는 논리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즉,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쪽은 무상급식이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고 학생의 안전하고 영양가높은 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서울시와 여당은 무상급식이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불필요한 재정을지출하게 만들고, 야당의 망국적 표풀리즘의 일환일 뿐이라고 맹공합니다.

언뜻 들어보면 서울시장의 내용은 참으로 양심적이고 심지어 고마운 이야기로 들립니다.

왜 아까운 점심식사비를 돈많고 여유있는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쓰느냐, 그 돈으로 차라리 학교 시설이나 다른 교육 관련 하드웨어비로 쓰는게 우선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논리 속에는 얄팍한 허점이 다수 들어 있습니다.

우선 그동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하지 않았던 지난 3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에도 똑바로 된 학교의 제반 시설 지원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몇 백억이라는 예산이 매년 서울시 곳곳에서 파헤쳐지는 보도블럭 설치비, 한강변 르네상스 건축과 분수 운영비, 서해 뱃길 사업 등 도시 미관용 또는 정부의 4대강 관련 의심스러운 사업에 밀려 덩달아 쏟아낸 수 천억 또는 수 조원의 예산에 비해 과연 지나치게 부담이 큰 예산인가는 초등 산수만 꼽아볼 줄 알아도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할 것입니다.

부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는 더욱 가관입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처음 화두가 된 무상급식 논란 당시만 해도 여당과 오후보의 반박 논리에는 부자 형평성 논리가 온전히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 당시만 해도 예산이 많이 든다, 다른 곳에 쓰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정도로 소극적인 논리를 폈던 오후보는 결국에 속칭 강남 3구 아줌마들의 도움으로 겨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던 것이 최근 야당이다수를 이룬 서울시의회의 분쟁 과정에서 돌연 망국적 표풀리즘 운운하며 꺼낸 논리가 부자 형평성 문제입니다.

 저는 이 부분에서 참으로 오시장과 정부 여당에 대해 감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언제부터 우리 정부나 여당이 그토록 서민을 우선시하고 부자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강조해왔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그동안 지방 재정의 파탄과 복지비 고갈을 초래하면서까지 밀어붙인 부자 감세 주장과, 있는 집 아이들의 매끼 2~3천원 한다는 밥값마저 물려야겠다는 논리가 과연 서로 부합되는 논리인가요?

그렇다면 서울시는 정부가 지원하는 의무교육에 따른 무상 교육비 수혜를 똑같이 받고 있는 부잣집아이들에게 왜 교육비와 전기료, 책걸상 사용료 등은 물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요?

또 하나 오시장은 지난 후보 시절 서울 시내를 돌며 내세운 공약 가운데 자신이 '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라고 하는 대표 공약으로 학부모들에게 어필한 사실을 잊고 있는데요, 서울시 모든 학생의 학습 준비물 비용이 점식 식대 2천원보다 더 많이 지출될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이야말로 있는 집 자제들의 형평에 어긋나는 낭비라는 점을 당시에는 왜 주장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일부의 지방 시군구에서 현재 여당 지자체 주도하에 이루어진 무상급식이 학생들의 건강권 향상과 지역 농민들의 유기농 재배와 안정된 팔로 개척 등에 큰 효과가 있었다는 주장은 왜 한사코 무시하려 드는 걸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야당의 논리도 정략적이고 의도된 내용이라고 반박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 무상급식 주장은 지난 지방선거 이전부터 일부 군소 야당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야당 내에서 한동안 쟁점화되지 못한 사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이 순간 무상급식에 대한 타당성과 아이들에 대한 건강권 향상에 대한 혜택 자체를 훼손하는 논리로 폄하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 속에서 허동구를 무시하고 같이 점심을 먹는 것에 창피함을 느낀 반친구들은 점차로 동구가 내민 주전자물을 자연스럽게 따라마시고, 동구의 부족한 야구 실력을 응원하는 동료로 변모하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학교에서 별 것 아닌 무상급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사리 손으로 소란하게 모여서 숟가락을 놀리는 아이들의 손 끝에까지 빨간색을 칠하려 하는 일부 저질 언론과 정치가의 왜곡된 색안경을 개념없이 받아쓰고 박수치며 흥분하는 세상에서 사람다운 미래는 없습니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내 아이가 힘없고 돈없는 장애인의 자식으로 강남 아이들과 다른 건물 다른 식당에서 싸구려 점심을 먹는 동안 부잣집 아이들은 최고급 레스토랑같은 전용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미래가 우리 학교 현장에 온다면 그것도 박수치며 감당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이 사회에서 과연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어 힘없는 이웃을 아끼며 조화롭게 살 수 있을거라 확신하십니까?

 

저는 늘 말씀드리지만 이 나라 강남 아줌마들이 부럽습니다.

이미 가진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정치가와 시장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몰표를던지는 그들만큼 현명하고 영리한 사람들이 있을까요?

하지만 가진 돈도 없고 하루가 다르게 자신의 손 끝에 쥔 얼마 남지 않은 복지 혜택마저 빼앗기고 있음에도 그러한 사실조차 모른 채 매년 복지비가 사상 유례없이 증가했다느니, 밥 한끼 주는 것보다 다른 데 돈을 쓸테니 빨갱이들의 불만 토로에는 단호히 대처하자는 선정적 주장에 환호하는 이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러한 분들을 연민으로 이해하기에는 오늘 이 나라의 어두운 현실이, 그리고 힘든 경쟁을 버티며 싸워야만 하는 험난한 미래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기만합니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