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도토리 키를 재야 하는 이유

tosoony 2009. 12. 25. 12:51

  초등학교 때였던가. 수업 시간이었는데 뒤에 앉은 짖꿎은 녀석 하나가 심한

장난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무시했는데 녀석의 장난이 하루가 다르게 더욱 심해지자 나도 모르게그 녀석과 다투게 되었고 때마침 돌아본 담임 선생님께 불려나가 수업 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똑같은 채벌을 받았다.

  한 반이 70명에 육박했던 70년대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심한 채벌도 아니었지만 어린 나이였음에도 꽤나 억울해했던 것 같다. 소란을 피운

잘못은 분명했지만 나와 시비를 건 녀석을 동일한 잣대로만 취급하신 선생님이 그 때는 무첫 서운했다.

  올 한해도 복잡다단한 사건들속에서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특히 세밑 정국을 달구는 국회 파행을 보며 사람들은 또다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머리아파 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  

이 즈음 우리 주위에서 정치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용어가 '양비론'이다. 양비론이란 말 그대로 어떤 사안에 대해 이해 당사자 양측 모두의 잘못을 문제삼아 이를 똑같이 비판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자기 당의 이익만을 위해 서민의 실정을 도외시하는 정치인들의 습성을 가리키기에 충분한 용어이기도 한 이 양비론적 태도는그러나 간혹 진실을 밝히고 사태의 본말을 명확하게 파악하려는 이들의 눈과 귀를 막고 사태를 호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우리는 얼마나 알까.

  특히 일부 언론과 정치집단에서는 이러한 양비론적 시각을 악용하여 자신들에게만 쏟아지는 비난을무마시키고 상대측도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희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서 의도적으로 행동하는이들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 도로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의 상당수가 50대 50의 쌍방과실이라고 한다. 물론 양자의 잘못이 명확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측의 과실만을 큰소리로 주장하는 요즘의 흐름속에서 궁여지책으로 내리는 조처인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양자가 잘못은 했을지언정 보다 많은 과실을 저지른 쪽이 분명하게 있었다면 그것을 판가름해주지 않고 막연히 양쪽 공히 배상 책임을 물도록 하는 담당 직원의 안이한 태도가 얼마나 억울할까.

  잘못에도 큰 잘못과 보다 작은 잘못이 있으며, 힘있는자의 악의적인 부정이 있는가 하면 악행을 막기 위한 소수자의 불가피한 행동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쉽사리 그들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며 그들의 다툼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막연히 질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번 국회 파행의 핵심은 아시는 것처럼 4대강 사업 추진이 핵심이다. 대폭 줄이고도 늘었다고 호도하는 복지 예산, 정부 각 부처는 물론 멀쩡한 공기업에 예산 수행을 떠넘기고도 얼마 안되는 예산이라고 TV에 나와 당당하게 우기는 소위 힘있는 자들의 오만과 거짓의 폐악을 바로잡는 마지막 수단으로 수장원공사에 지원하는 이자 800억원을 삭감함으로써 수자원공사가 집행해야 하는 수 조원의 잘못된 4대강 예산 집행을 막으려는 소수 야당의 몸부림마저 양비론의 사슬에 눈이 멀어 똑같이 침을 뱉고 손가락질한다면 과연 우리가 존경하고 칭찬할만한 정치집단이 과연 미래에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을까?

  한가지 이채로운 점은 금번 4대강 관련 국회 파행에 대해 소위 조중동에서는 양비론적 관점에서 비난하고 이를 통해 소외된 이들의 복지 예산 집행이 어려운 데 대한 문제는 제기할 지언정 껍데기만 남은 복지 예산이나 800억원밖에 안되는 예산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알면서도 거론치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자신이 소위 지지하는 세력을 포함시킨 채로 양쪽 모두를 양비론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데만 앞장서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툼에는 분명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다. 또 잘못도 의도적인 잘못이 있고 억울한 이의 항의도 있다. 그럴 경우 최소한 가해자나 의도적인 잘못을 자행하는 이들에게 50%만의 부담은 이득보는 장사가 아닐까? 그에 더해 없는 이들의 비스켓만한 복지 지원도 끊길테니 할테면 하라는 기사 문구는 서민들에게는 말그대로 무형의 협박이 아닐까?

  오늘도 그 어떤 분이 쌀푸대를 안고 힘없는 장애인을 찾아가셨다는 뉴스가 각종 신문을 도배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 대단한 멘트를 날렸다.


"누구 탓도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있다. 차이를 비교해 보아도 별반 다른 점이 없다는

점을 나타낸 선인들의 속담은 당시에는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 모두 이 속담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작은 도토리라도 키를 재보고 차이를 찾아내어 보다 나은 아니 덜 나쁜 것을 골라낼 줄 아는 현명한 시민의 자세. 그것이야말로 오늘처럼 암울한 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등대의 불빛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