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시각장애인과 영화

tosoony 2009. 8. 9. 03:10

입추를 넘겨 뒤늦게 찾은 더위가 반가워야 하나, 낯설어야 하나.

토요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끝내고 나서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이렇게 후덥지근한 밤은 시원한 영화관에서 한 편 땡기는게 최고 아니겠어요~~"

즉흥적인 제의에 우리 부부는 서둘러 집으로 향해 아이들의 잠잘 준비를 끝낸 다음 뒷일은 중학생 딸아이에게 맡긴 채 다시 어두운 밤거리로 나서 영화관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10분 거리에는 1년 전에 문을 연 복합 상가 건물이 하나 있다.

지하는 대형 마트, 2, 3층은 쇼핑몰, 그리고 그 윗층에는 잘 나가는 l 멀티플랙스 영화관으로 구성된 건물 덕에  슬리퍼를 끌며 반바지 차림으로 야간에 내외끼리만의 취미인 영화를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ㅋㅋ

오늘 고른 영화는 단연 요즘 뜨고 있는 '해운대'였다.

밤 10시에 시작해 꼬박 2시간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흘러간 영화를 보며 우리나라 영화도 이제 정말 자리를 잡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이 '해운대'라는 히트작에 대한 어설픈 소감을 읊어보고 싶어서는 아니다.

내 형편을 아는 사람이라면 위에서 쓴 내용을 보고 몇가지 의문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전맹 시각장애인이 영화라니...'

거기에 평소 조금 더 심각한 고민을 하는 습관의 소유자라면,

'어라, 전맹 시각장애인 처지에 따박 따박 '봤다'라는 말을 쓰는 거 너무 웃기는거 아녀??'

   우스개 소리같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평소에 나누는 대화나 인용구 가운데서 이런 '내 신체적 조건과 용어의 불일치'에 대해 작은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최근 1년여 사이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먹고 사는 이야기 이외에 다른 주제는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그간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매스컴의 발달 덕에 장애인의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일선 복지관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세상나들이, 문화체험은 물론 영화 시사회 참가 등의 프로그램이 속속 개발되어 운영되고 있고, 이젠 아예 시각장애인용 사이트에서 지나간 방송을 화면해설 방송으로 다시보기 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직까지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적 문화 콘텐츠는 무용지물이거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의 우매한(?)행위라며 무용론을 주창하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거기에 더해 자신이 정안인의 도움으로 체험한 영화나 여행 소감을 읊는 과정에서 '보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을 표시하는 시각장애인분들에 이르러서는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 문제의 주인공 중 하나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다.

중도 실명때까지의 시각적 경험과 남편을 위해 즉흥 변사역까지 마다하지 않는 현재의 아내의 정성덕에 스크린에서 진행되는 여러 장면에 대해 짧은 설명만으로도 대체적인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행운을 얻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귀로체험하는 모든 문화적 경험 역시 '본다'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국어 문법 교재에 나오는 보조용언이니 뭐니 하는 해석까지 꺼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용하는 '본다'라는 용어는 굳이 꼭 설명을 붙인다면 '경험하다' 또는 '체험하다'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단다.

어떤 학생은 토함산에서 바라본 일출의 황홀한 장관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새벽 공기를 통해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의 촉감과 짠내의 향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또 어떤 학생은 관광단지에서 먹은 산채 비빔밥과 추어탕의 맛이 계속 생각난다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어떤 학생은 오고 가는 버스속에서 배꼽을 잡으며 놀았던 레크레이션이 끝내주었다고 했다.

2, 3일동안 함께 몰려다닌 여행이었지만 이들이 기억하는 수학여행의 체험은 제각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이들의 수학여행 중 누구는 헛일을 했고, 누구의 여행이 가치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포함한 모든 문화 콘텐츠는 이처럼 그 문화를 누리는 사람의 오감에 기초한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만 그 문화 콘텐츠 중 대표적인 매체가 시각에 의지하고 있을 뿐, 나머지 오감을 비롯한 그 사람이 몸으로 느끼는 모든 체험 자체야말로 우리가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내가 가진 영화감상이라는 취미는 정안인들의 그것보다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하고 싶다.

이 글에 대해 어떤 분은 지나친 비약이나 오만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보지 못한 것은 보지 못한 것이기에 말이다.


오래 전 우리나라의 교과서를 편찬하는 부서가 시각장애 특수학교용 교과서 개작용 집필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집필의 취지는 해당 장애 특성에 맞도록 교과서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국어 교과서의 본문 내용 중 '하늘이 파랗다'라고 된 문장이 있었다.

 이 문장에 대해 일부 참석한 위원이 시각장애 학생이 파랗다'라는 걸 어떻게 이해하겠나며 다음과 같이 문구를 수정했다고 한다. 


'바닷물은 짜다'...


위의 내용은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전설처럼 선생님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배꼽잡는 일화이다.

그런데 시각장애를 피상적이고 획일적으로만 이해할 때 겪게 되는 이러한 오류를 일반 정안인이 아닌 우리 내부에서조차 걸림돌로 끌어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도 보이지 않는데 관광은 가서 뭐하고, 학생들 데리고 며칠씩 산과 들로 힘들게 나가봐야 뭐해."

"그 돈이면 집안에서 실컷 맛있는거 사먹고 있는게 좋지."

  물론 문화생활을 포함한 삶의 의사결정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 스스로가 장애인의 문화 접근권과 체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때 비장애인들도 우리들의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바라봐주지 않을까.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주위 사람들에게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거나 아마추어적인 평을 할라치면 여전히 '보았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게 권하고 싶다.

"요즘 시각장애인 연합회 사이버 방송센터 사이트에 속속 올라오는 최신 화면해설 영화 한 편 같이 보시지 않겠어요?"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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