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오늘 강남아줌마가 부러운 이유

tosoony 2009. 5. 24. 01:49

  작년 여름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역전극 하나가 벌어졌다. 우리나라 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서울시의 교육을 책임지고 엄청난 예산을 주무르는 교육감 선거에서 당시 전반적 열세에 몰려있던 공정택 후보는 선거 막판 상대 후보를 제치기 위해 두가지 코드를 사용했는데 하나는 전교조 관련설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강남 지역의 있는 집 자제들이 맘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짧은 시간 급속도로 효과를 발휘했고 투표 직전까지 열세에 몰렸던 공 후보의 표는 선거 당일 소위 강남 3개 지역 아줌마들의 몰표로 근소하게 뒤집혔다.

 그러나 흠결있는 후보의 당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선거 직후 주위 사람들로부터 대가성을 의심케하는 뭉치돈이 계속 드러났고, 특히 가정주부였던 안사람의 통장에서 정체를 알 수없는 돈다발이 발견되면서 급기야 1심 재판에서 당선 무효형에 상응하는 판결을 받고 현재는 항소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종일 궂은 날씨만큼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게 한 있을 수 없는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쪽에서는 망자의 죽음에 대해 절정에 달한 권력의 편파적이고 폭압적인 망신주기가 물러난 지 채 10여개월밖에 되지 않은 자연인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았다는 비판이, 또 한편에서는 시신이 굳지도 않은 죽은 자를 앞에 두고 벌써부터 그의 과를 따지겠다고 법석이다.

이 자리에서 어느 편이 100% 옳다고 한들 자기가 의미를 두고자 하는 쪽에만 신경을 쓰는 부류에서는 그것을 비중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움직이는 여론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해답을 줄 것이기에 그 모든 것을 예단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오늘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대하면서 평소 생각해 온 두가지에 대해서만은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우선 앞서 언급한 공교육감의 사례를 다시 들어보자.

현재 공교육감의 재판의 핵심은 그들 내외가 받은 수백억원대의 엄청난 자금이 대가성이 있었느냐가 핵심이라고 하겠다. 물론 교육감 본인은 줄곧 빌린 돈이다, 대가성이 없었다고 한다.

1심 재판부는 공교육감의 행위를 공직선거법 위반이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고 느리게나마 항소가 진행중이다.(현재 공교육감쪽은 재판중에도 아무렇지않게 업무를 보고 있고 재판이 모두 끝날 때쯤 임기도 끝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어보았으면 하는 것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사건에 포괄적 뇌물죄에 대해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검찰 덕에 노 전대통령의 사례에서 포괄적 뇌물제라는 낯선 법률 용어에 대해 학습했다.

권력의 임기도 다 끝났고, 상대가 명확하게 무엇인지 대가를 받았다는 증거도 없지만 하여간에 뇌물이자 큰 죄이니 구속 운운하며 아무 소리말고 당당하게 죄값을 치러야 한단다.

  그런데 유력 정당의 선거 후보였고, 이제 막 당선된 수도 서울의 교육감이 받은 노 전대통령보다 훨씬 많이 받은 자금에 대해서 이 나라 검사들은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고 솜방망이만 흔들어댄다. 그리고 당사자는 오늘도 교육청 의자에 앉아 당당하게 펜을 놀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어쩔 수 없는 가치의 혼란과 지독한 의문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오늘 이순간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에서 노무현에게 도덕적 강제를 부과하고  공정택에게 도덕적 특혜를 준 것일까?

도대체 누가 노무현에게만 도덕적 완벽의 족쇄를 채우고, 이명박에게 도덕적  자유를 준 것일까?

왜 노무현에게 주어진 도덕만큼 똑같이 공정택과 이명박에게 들이대서는 안되고, 적절치 못한 비유라는 둥 한사코 귀를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전 평소 보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신문 칼럼에 모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쓴 글 중 일부가 떠오른다.

노 전대통령측이 받은 돈이 평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데서 기인할 수도 있다며 그런 점에서 지금의 부자 대통령은 그런 일은 없을테니 다행이라고 한 그의 서글픈 비약이 안스럽고 처연하기까지 한 것은 무엇일까?


다음으로 공정택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소위 강남 아줌마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평소 강남이라는 지역적 카르텔에 둘러싸여 사는 일부 부유층 이들을 손가락질하고 멸시하곤 한다.

실제로 그들은 종부세 탕감과 각종 규제 철폐라는 이 정권의 편파적인 특혜에도 불구하고 시장 활성화와 자금 회전이라는 바램을 무시한 채 엄청난 유동성 자금을 묶어둔채 이 나라 경제는 도외시하고 필요한 투기 대상이 생길 때만을 엿보고 있다.

이들에게 도덕과 공공성은 한낱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공 후보의 강남지역 학교에 대한 특혜 공약은 자기들만의 차별화된 이익을 대변할 대상이자 거래할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무언의 단합과 일사분란함으로 순식간에 공후보에게 몰표를 주었고 그것을 관철해냈다.

오늘 나는 새삼 이들 강남 아줌마가 부럽다.

그들의 재력과 이기심과 도덕에 대한 둔감함이 부러운게 아니다.

자기들이 처한 처지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자기들을 대변해주고 보호해줄 대상을 위해 일치단결할 수 있는 그들의 단순하지만 명확한 행동이 부럽다.

그리고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

돈도 없고 명예와 권력도 없고, 세상에서 소외받는 장애까지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업보를 짊어진 우리들이다.

자기들의 돈주머니를 지켜줄 대상을 위해 움직이는 강남 아줌마들의 행동이 현실적이었다면 권력에 의해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서울시 한복판에서 타죽고 다리위에서 뛰어내려야만 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지 답은 분명 나온다.

그럼에도 정작 저 하늘의 달을 쳐다보지 못하고 몇 사람이 흔드는 손가락끝만 따라 춤을 추는 광대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악마적인 편견과 사악한 잣대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독약보다 독하게 우리의 뇌를 갉아먹는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노무현이 이 시대 민주화의 씨앗이자 힘없는 이들의 피난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이 아귀다툼의 벌판에 우리 밖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슬퍼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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