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매트릭스와 아일랜드

tosoony 2009. 4. 29. 01:56

어릴 적부터 만화와  소설, 영화를 좋아하던 내게 가장 선호하던 장르는 단연 sf였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대한극장에서 만나 본 로봇 태권브이 1탄의 흥분은 아이들의 아빠가 된 지금에도 순간 순간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현실적인 허구요, 다양한 색물감으로 칠한 여러 장의 필름을 빠르게 돌려 우리 눈이 움직이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만드는 활동사진일 뿐이었다.

 그러던 5학년의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가자는 누이를 따라나선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충격적인 외국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스타워즈 1편'이었다.

스타워즈는 나에게 영화는 단순한 허구의 만화가 아닌 실제 현실과 하나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했고, 한동안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으레 스타워즈의 등장인물을 그리며 멍하니 환상에 빠져들곤 했던 것 같다.

그 후 시각장애인이 된 뒤에도 영화에 대한 미련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는데, 요즘도 틈틈이 직장 동료나 아내와 함께 영화감상하는 버릇은 나의 작은 낙이 되었다.

요즘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두 편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하나는 시리즈로 인기를 모았던 '매트릭스'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일랜드'라는 제목의 영화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매트릭스'는 기계에 의해  조작된 과거의 기억을 갖고 통제된 허위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 어느 날 자신이 속한 세계가 정교하게 짜여진 완벽한 허위의 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벗어나 이러한 음모와 대항한다는 얘기이고, 2005년도에 출시된 '아일랜드'는 지구 상에 일어난 생태적인 재앙으로 인하여 일부만이 살아 남은 21세기 중반에 자신들을 지구 종말의 생존자라 믿으며, 부족한 것 없는 유토피아 생활을 하며 언젠가 오염되지 않은 땅인 아일랜드로 가기만을 고대하는 주인공이 자기를 포함한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스폰서(인간)에게 장기와 신체부위를 제공할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에 항거한다는 내용이 대체적인 줄거리라고 하겠다.

  오늘 굳이 철지난 영화 스토리를 되새겨보는 이유는 영화 매니아로서의 평을 공유하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일면 스크린 속의 허구로 우리와 괴리된 대상이지만은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서이다.

잠시 옛날로 돌아가보자.

60, 70년대 경제발전이라는 지상과제는 산업재해가 부지기수였던 열악한 노동현장의 근로자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보상 한 푼 없이 사라지기를 강요했다.

고통에 이의를 표출하는 자들은 대부분 1) 특정 지역 출신 반란책동자 -> 2) 좌파 불순세력 -> 3) 북한의 사주를 받는 빨갱이라는 도식에 의해 정교하게 구조화된 수순에 따라 국가적인 이단자로 몰려 그 사회에서 빠르게 매도되거나 매장되었다.

  70년대 유신의 시퍼런 칼날이 뒤흔들던 시절, 일부 대학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 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당시  주위의 시선은 격려보다 손가락질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80년대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치며 호헌 철폐와 6.29 그리고 6.10 항쟁을 얻어낸 대학가 시위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서도 비싼 등록금 줘서 학교 보냈더니 쓸데없는 데모만 한다며 돌던지던 사람들의 광경이 있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강건한 자기만의 가치관과 소신에 의거하여 그런 자신감어린 행동을 표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자의 탐욕으로 국민을 우매하게 만들고 눈을 가리는 매트릭스요, 아일랜드였다면 어떠할까?

   

요즘의 우리 사회처럼 혼돈스러운 때가 또 있을까?

한편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마음에 모든 것이 법과 질서가 회복되는 과정이라며 반색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공공연한 억압과 통제, 원칙에 어긋난 편파적인 정치 사회 행태가 버젓이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며 개탄하는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그 어느 쪽이든 인간 군상들이 모여 하는 정치 행위인 것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가장 덜 나쁘고 덜 모순된 대안을 찾아 열린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속에서 편견없는 고민을 통해 최선의 안을 도출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주장이나 신념이 절대적이라는 이유로 강압과 독선, 밀어붙이려는 폭력까지도 정당화될 것이라는 오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위정자들은 자신이 머릿속에 품은 욕망과 자신감을 밀어붙이기 위해 잘 짜여진 매트릭스에 국민들을 집어넣고 그 이상의 생각은 허용하지 않도록 강용해왔고 또 그렇게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말이 많고 촛불 들고 나타나는 이들은 특정 지역 출신이거나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용산에서 타죽은 사람들보다 강호순의 활약상을 실시간으로 리포트하는 검사의 발표에 귀기울여주기를 희망하며, 여당과 청와대의 무리수를 지적하면 민주당과 노빠들의 꼴통 팬들이라고 치부되어지기를 고대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한국이라는 스크린 속에서 숨쉬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매트릭스이며, 천국의 섬으로 가는 아일랜드의 우울한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