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웹접근성과 소수자로 살아남기

tosoony 2009. 3. 28. 10:16

요즘같이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시절, 대형 할인점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줄 알면서도 맞벌이에 바쁘고 성가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종종 찾곤 하는데요.

그런데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려다 만나는 어이없는 일 중 하나는 장애인 주차장에 장애인 차량 표시가 없는 멀쩡한 차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볼 때라고 하겠습니다.

그 때마다 푸념처럼 "이거 그냥 확 질러 버려!"하고 우스개 소리하며 적극적인 시민의식을 발휘해볼까도 생각해보지만 도리없이 먼 곳에 차를 대고 터덜거리며 걸어가곤 하지요.

그렇게 쉽게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일을 법과 고발로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일반론적 생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일로 법에 호소해봐야 과태료를 문 사례가 지금껏 손에 꼽는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제가 갑자기 장애인 주차 문제를 꺼낸 것은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민의식을 얘기하고 싶어서는 아니구요, 요즘 한창 왁자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장애인차별 금지법 시행에 따른 웹 접근성 준수 문제에 대해 떠오르는 여러 단상들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해서입니다.


이곳 게시판 기사 중에서도 올라왔지만 장차법 시행에 따라 모든 공공기관과 종합병원, 복지시설, 특수학교(특수학급 설치 국공립학교 포함) 및 장애전담 보육시설 등은 오는 4월 11일부터 자사의 홈페이지가 장애인을 위한 웹접근성이 갖추어지도록 의무화되며, 이를 준수치 못해 형사고발을 당할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대전에서도 하루에 한 두통씩 주위 학교와 공공기관 홈페이지 담당자들로부터 전화를 받곤 하는데요, 도대체 웹접근성을 어떻게 따라야 하느냐, 이거 안지키면 당장 3천만원 물어야 하느냐는 둥 완전 혼란 그 자체입니다.~~ㅋㅋ

지난 몇 주간 이들에게 부족하지만 몇가지 참고자료와 도움말을 전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법이 단순히 종이위의 활자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 숨쉬면서 우리 사회를 역동케 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는데요.

지난 참여정부 당시 수년간 투쟁해서 만든 장차법이 하나 둘씩 생생하게 우리 피부에 와닿는 것을 느끼며, 이 법이 통과되도록 땀흘려 온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웹접근성 준수에 관하여 간략히 설명드리면,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이 스크린 리더를 통해 홈페이지를 사용하다 보면 일반 정안인들 위주로 디자인 된 많은 이미지들, 플래시와 자바 스크립트 기술들로 인해 온전히 화면의 내용을 읽을 수 없었는데요, 이런 홈페이지들에 시각장애인들이 정안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내용을 검색할 수 있도록 별도의 링크나 텍스트 문자를 추가, 삽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아시는 바처럼 일반적인 링크 메뉴에 알트 텍스트 문자열을 삽입하는 것과 같은 추가 작업은 홈페이지 개발자 입장에서는 수 분에서 수 십분 정도면 끝나는 손쉬운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번 법률안 시행이 시각장애인에게 얼마나 희소식인지 아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2013년까지 연차적으로 모든 공공기관 등에 의무화가 완료되고, 이에 따라 일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포털 등의 홈페이지들까지 웹접근성 준수가 확대된다면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한편 이번 웹접근성 준수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우려섞인 의견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법률상으로는 무시무시한 벌금조항까지 있지만 사실 그러한 최악의 경우까지 가기 위해서는 먼저 사용자의 이의 제기와 홈페이지 담당자의 거부, 그리고 인권위 등에 대한 제소, 또 그에 따른 여러 조정 기간을 거쳐 최악의 경우까지 갔을 때 고발 조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를 상정한 것임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입장에서야 그러한 일까지 가지 않고서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똑같으리라 보구요.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역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그런 사문화된 법조문으로 남게 되리라는 비관적인 예측을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우선은 대상 공공기관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인식 자체가 천차만별인 데다가 앞서서 제가 장애인 주차금지에 대한 경험을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로 문제점을 고발하는 사례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고발한다 해도 실제 벌금 부과까지 사법 행정 당국에서 과연 민첩하게 움직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들어 더욱 염려되는 사태 하나는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축소 문제입니다.

아무리 강제 규정이 많은 인권 관련 법률을 잘 만들었다 한들 이를 처리해줄 인권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넘쳐나는 민원 처리에 허덕이는데, 이들의 조직과 인력을 다시금 급격히 줄인다는 뜻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구태의연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지난 정부 시절 통과된 장차법과 장애인 등에 관한 특수교육법, 그리고 이들을 묶어줄 인권위의 독립기구화를 통한 활성화에 대해서만큼은 지난 정부에 큰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이제 와서 경제위기와 기업 프랜들리라는 논리앞에 하나 둘씩 무너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헤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장차법 제21조 제3항의 규제일몰제 적용 논란을 비롯해 복지부의 장애인 권익증진과 폐지 등은 현 정부의 장애인 관련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의심케 하는 잣대라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장차법의 웹접근성 준수 조치 시행 역시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과 정책 의지가 의문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오늘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이번 장차법의 웹접근성 준수는 장애인 전체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실제는 시각장애인인 우리가 주인공이되는 규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정말 우리 가운데 혼자서 스크린 리더를 통해 웹을 이용하다가 이러한 접근성의 미비로 곤란을 겪은 분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저까지 요즘 유행하는 '경제성'의 논리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수와 접근성 개선 작업을 비교하겠다는 것은 아니구요, 실제로 국가적으로 벌어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얼마나 준비된 목소리와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요며칠 외부의 접근성 관련 연수에 참여하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각장애인들 중 대다수가 웹을 사용하는데 위의 어려움 때문에 큰 곤란에 봉착해있는줄 알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요?

아직도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이 넓은마을을 비롯한 몇몇 telnet 기반의 통신망에 원격 접속하여 텍스트 문자로 된 게시물을 읽고 자료실에 파일을 내려받는 일에 주력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저역시 2001년도에 처음으로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telnet과 웹이 연동하는 사이트를 개통하면서 초보자 학생들에게 telnet를 교육해오고 있습니다만 정보의 바다를 코앞에 두고 스스로의 한계에 빠져 제한된 정보 접근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정보화 교육 시설의 부족, 적절한 교재의 전무, 학력 수준의 문제, 중도 실명에 따른 재활의 어려움 등 여러 고려사항이 있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내부에서 시급히 이러한 웹접근에 대한 관심과 의견 개진은 물론 이용하려는 노력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주인은 따로 있는 채 형식적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되는, 또는 지키지 않아도 고발하는 일도 없고 벌금도 있으나 마나 한 또 다른 장애인 주차  금지 규정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드는 건 왜일까요..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일단 오늘 이순간부터 가장 간단한 웹 사이트부터 한번 방문해 보세요.

그리고 불편하고 어렵지만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정보접근권에 대해 얼마나 지켜지는지 실제 체감하고 그 생생한 경험을 건의해 보세요.

그것이 오늘날 이 무시무시한 경제성 만능주의 시대에서  웹접근성, 더 나아가 주류 사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소수자로써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남쪽에서는 벌써 동백에 이어 벚꽃 소식까지 들리는 것 같네요..

우리들에게도 봄꽃같이 화사한 소식만 들려오기를 기대하며~~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