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나의 직장생활 이야기

tosoony 2010. 1. 1. 11:20


  류석종(삼성안내견학교)


  아침 6시, 휴대폰 알람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제일 먼저 TV를 켜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슈화되는 가장 굵직한 소식들을 정리하여 알려주는 뉴스 채널에 고정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최신 음악과 TV 프로그램을 챙겨보았고, 대학시절에는 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잡지 등에 주목했다면,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은 단시간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뉴스가 도움이 된다. 사실 이들 내용 가운데 실제적으로 직접적인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없다.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고 상식을 넓히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세대에 맞는 정보 습득 채널을 가까이 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적절한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큰 힘이 된다.

  다음으로 이부자리를 정리한 후 입고 나갈 옷을 고른다. 회사 근무복이 따로 있어서 그나마 편하긴 하지만 출장이 있거나 퇴근 후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본 기억이 없으니 색깔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볼 수 없으니 모임의 성격에 맞는 옷을 고르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러므로 옷을 기준에 맞도록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은 혹시 모를 난처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수적이다.

  아침마다 집에서 회사까지 항상 차를 태워주시는 직장 상사분이 계시다. 아무리 가는 방향이 같아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간다는 것이 무척 성가시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더욱 그 분이 고마운 것은 언제나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해주신다는 점이다. 만일 오로지 도움의 목적이 보행의 제한이 있는 시각장애인 직원을 돕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면 분명히 오랜 시간 관계가 지속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시각장애인이 비시각장애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의 태도가 뒤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주종관계 또는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비인간적 관계로 연결되어 좋지 못한 인상만 남길 수 있다. 나만 잘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관계의 지속 여부는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나와 채송(안내견)이를 기다려 주시는 그 분께 다시금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다보면 도저히 눈을 빌리지 않고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팩스와 프린트된 문서 확인하기, 작성된 문서가 양식에 제대로 맞는지 확인하기, 행사를 위한 관련 시설 체크하기 등이다. 이때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부탁을 할 것인가 잘 고민하여야 한다. 자칫 눈치 없이 행동하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요청해야 할 일들의 비중이 높고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대인관계에서 행해지는 눈치 싸움이 비단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원활함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중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도움받을 일의 성격이 시각의 장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제한적 요소로 인한 것인지 또는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기인된 실력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엄격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당당하게 자신의 업무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할 일들을 완전히 끝마치지 못하여 늦게 나가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출근시간은 같아도 퇴근시간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 처음 입사하고 약 3개월 동안은 퇴근 시간이 일정했다. 집까지 가는 길을 제대로 몰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퇴근시간만 되면 누가 언제 나가는지 눈치를 봐야했고,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주변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진 후 혼자 출퇴근이 가능해지자 마음의 큰 짐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업무의 종료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일을 하게 되니 위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을 때에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고스란히 능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게 되었다.

  채송이와 함께 걷는 퇴근길은 너무나도 기쁘다. 간혹 일이 있어서 채송이 없이 퇴근할 때면 보행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다.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 모든 주의를 지팡이를 든 오른손에 집중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진행방향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주변의 모든 단서를 파악해야 하는 그 상황은 아무리 익숙한 장소라도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굳이 나갈 일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출퇴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중 하나이니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들고 나선다. 하지만 채송이가 있을 때만큼은 자연을 느끼며 비시각장애인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어서 보행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 행복감을 느낀다. 사실 채송이와 고정적으로 걷는 시간은 출장 또는 여가를 즐기는 시간을 빼면 하루 가운데 출퇴근을 다 합쳐도 1시간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겪어야 하는 작은 보행 스트레스는 남은 전체 생활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윤택한 삶을 즐기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이 걷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나가야 할 일들이 생겼을 때 어떤 마음으로 보행에 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욱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일상에서의 이루어지는 소소한 일들이 시각장애인의 직업재활 및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너무나 큰일들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에 끼지 못하거나 옷차림이 모임의 성격과 동떨어져 있다거나 도움만 받는 존재로 인식되었을 때 이 모든 것은 시각장애로 인한 태생적 문제로 각인될 뿐이다. 또한 성공적인 직업재활을 위해 업무적으로 이루어지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에서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급변하는 시각장애인계를 돌아보면 다양한 직업 현장에서 비시각장애인과 함께 활동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맹학교 및 직업재활과 기초재활을 담당하는 복지관과 관련 지원 센터 등에서는 시각장애로 인하여 제한받고 있는 이동과 경험 및 상호작용의 기회를 늘릴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계발하는 한편 해당 고용 업체와 연계하여 현장 실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넓은마을 브레일타임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