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이제 저물어 갑니다.
힘든 한해였고 때로는 슬픈 한해였다고 기억됩니다. 그렇다고 즐거운 기억이 없는 것 또한 아니지요. 갑자기 공지가 되고 관심있는 회원들이 모인 화성에서의 만남은 올해를 보내며 잊히지않을 즐거운 추억으로 저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것은 나뿐 아니고 대한민국의 서민 특히 시각장애인은 더 크게 다가왔던 한해였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일터를 찾아 헤매는 일은 결코 쉽지않은 것이지요. 제가 희망근로 한달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을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일을 마치고 난 느낌을 몇줄 적어볼까 합니다.
날마다 출퇴근하는 일을 해본적이 없는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그날의 일정표에 따라 이곳 저곳을 다니며 안마를 해야 하는 일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건물 내에서만 움직이던 생활이 지하철과 버스를 오르내리며 안마를 하러 다닌다는것 자체가 생소하고 번거롭기도 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끝까지 마칠수 있을까? 비오는 날이면 과거의 편안함에 젖어 오늘은 안가고 싶다! 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려한다. 과거의 일자리 같으면 쉬고 싶을때 대타 안마사라도 구해놓고 쉴수 있겠지만 이 일은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것을...! 하지만 내가 가지않으면 약속된 사람이 안마를 받지못한다. 일어나자! 그리고 힘을 내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자!
어제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서 안내하는 활동보조 도우미조차 힘들어한다. 자신도 걷기 어려운데 나까지 안내하려니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난주까지 약속대로 끝이 났다면 이런 어려움은 겪지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이제 이틀 남은 약속을 잘 지켜야지. 오늘은 나와 활동보조인 둘이서 안전하게 다니기위해 택시로 이동하자.
이렇게 합의를 하고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차를 부탁한다. 눈이 와서 다른 시각장애인이 이동하지않아서인지 필요한 차가 연결되어 빙판길을 걷지않고 차량을 이
동해서 하루 일을 마친다. 나와 활동보조인이 아무 사고 없이 약속된 일을 마쳤다.
이겼다! 내가 처음으로 매일 출퇴근하며 다닌 직장 일을 잘 끝냈다. 20 여년이 넘는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의 방법을 익혔다. 이제 이런 일도 할 수가 있으니 또 한가지를 배웠다.
평소에 하던 안마는 거의 일방적인 수준이었다. 안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꼼꼼히 받는 피술자에게는 정성을 다하지만 술에 취해서 그저 형식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나 또한 형식적일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희망근로에 따른 안마는 나 자신이 피술자의 상태를 보고 어떻게 안마를 해야 피술자가 도움이 될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안마를 해야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그리고 파킨슨씨병이나 치메환자, 다발성 근경화증환자등 다양한 피술자들을 만났다. 나름대로 그에 따라서 환자에 맞는 안마를 생각해보게 되고 각종 질병에 대한 상세한 증상도 찾아보게 되니 공부도 되고... 힘들지만 보람 또한 있었다고 본다.
할머니 할아버님들은 고혈압이나 당뇨가 많아서 어떻게 하면 병을 고칠수 있는지?
무슨 음식이 좋은지? 등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내가 전문의가 아니니 시원한 답을 해드릴수는 없지만 아는데로 말씀드리면 고마워 하시며 실천해보겠다고 하신다.
안타까운 것은 홀로 사시는 어른들이 많아서 제때 식사를 하지않는 어르신이 많고 젊어서 몸을 보살피지않아 관절변형이 있는 어르신 또한 많이 보았다.
노인들 대상의 복지관에 안마를 하러 가면 서로 먼저 안마를 받겠다고 다투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귀가 시끄러워서 더이상 견딜수 없을 정도가 되어 시각장애인들은 귀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르신들이 이렇게 다투시면 저희가 안마를 잘해드릴수가 없으니 밖에 나가서 다투시라고 고함을 지른적도 있다. 그러고 나면 죄송하기도 하고 복지관의 담당 직원이 미리 정리를 해주었다면 이렇게 어르신들께 죄송한 행동을 하지않아도 될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안마사 5 명이 복지관에서 할머니들을 안마해드리고 있으니 안마를 다 받으신 어느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신다. 담당 직원이 무엇이 불편하시냐고 여쭈니 그 할머니 (내 생전에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어. 남편도 자식도 이렇게 자상하게 만져주고 주물러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안마를 잘해주어서 감사해서 눈물이 나네.) 라고 하신다. 거기 계신 할머니들 모두가 그렇다고 동의를 하시며 고마워! 고마워! 를 반복하신다. 이런 때는 힘이 난다.
안마를 하러 가기 싫은 집이 있었다. 다발성 근경화증을 앓고 있는 50 대 남자.
조그만 방에 아무것도 깔지않고 누워 있는 남자. 뭔가 질문을 하면 (예) , (아니오). 만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남자. 게다가 내가 좋아하지않는 강아지도 한마리가 있어서 가끔 안마를 하는 내게 와서 혀를 들이미는 집. 그분의 아내는 안마를 하러 가는 우리를 보고도 인사 한마디 하지않는 그런집? 안마를 할때 맨 방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하니 힘들고 방이 좁아서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불편한 그집. 한번, 두번, 세번.... 횟수가 거듭 될수록 이 남자는 말을 하게되고 불편함을 말하기 시작한다
. 처음에는 허리만을 주로 주물러 달라던 남자가 이제는 팔다리가 불편하니 모두 주물러 달라고 한다. 시간은 없고 요구는 많고 해서 옆에서 그분을 도와주는 활동보조 도우미에게 할 수 있는한 운동을 하면서 안마를 받아야 그나마 효과를 볼수 있으니 운동을 시키는데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을 하며 나름대로 팔다리 운동법을 보여주었다. 희망근로가 거의 끝날 즈음에 이 아저씨는 우리를 보면 얘기도 나누고 힘들지만 몸도 움직이려고 노력도 하게 되었다. 작지만 달라지는 모습에 안마의 효과를 체험했다. 과학적인 증명을 하라고 주장하면 근거는 제시할 수 없지만... 희망근로가 끝날때까지 이 아저씨를 1주일에 한번이라도 주물러 드렸다면 좀더 편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을텐데... 원래 예정인 11월말에 함께 일하시던 안마사 한분이 그만두게 되어 나는 그집에서 복지관으로 일터를 바꾸게 되어 그 아저씨와 이별을 했다.
이 일을 하며 정안인들과 매일 만나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었다. 원래 대화술이 부족한 내가 정안인들과 다니며 이야기를 많이 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른 안마사는 도우미와 대화를 잘도 하니 앞으로 화술에 대한 공부도 좀 해야할것 같다. 하지만 기본 바탕이 아무라도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가 아닌가?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해묵은 숙제가 다시 머리를 짓누른다. 지금에 와서 성격을 바꿀수도 없으니 그냥 그렇게 지낼수밖에...
희망근로를 다니며 2006 년 안마사들이 안마를 찾기위해 시위하던 모습을 제작한 동영상과 안마에 대한 설명문을 모아서 시디로 구워 가지고 다니며 복지관의 담당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꼭 시디를 보고 안마를 마사지라고 부르지말아 달라는 부탁도 많이 하고 다녔다. 얼마나 호응을 하고 시디를 봐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네 안마사들이 최선을 다하며 우리를 알리는데도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안마를 알릴수 있는 홍보용 책자를 구하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보았지만 마땅히 구할 곳이 없었다. 안협 중앙회에 홍보용 책자가 있는지를 물었지만 홈페이지밖에 없다는 대답이었다. 안타까웠다. 내 스스로 책자를 만들어보려고 이곳 저곳에서 자료를 모아서 간단히 인쇄하려고 알아보니 그 비용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 는 일이다라고 마음을 접었다.
희망근로를 마친다고 하니 언제 다시 안마를 받을수 있는지를 묻는다. 나의 대답은 (안마를 받아본 이용자가 국가기관을 상대로 안마를 받으니 어떤점이 좋으니 계속 받게 해달라고 민원을 신청하면 언젠가는 가능할것이니 국가기관인 복지부나 구청 등의 민원실에 email 이나 전화로 의사를 전달하라)고 일러주는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
개인적으로 국가기관에서 한번 시작한 사업을 사라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희망근로로 시작된 안마가 확대되어서 노인 대상의 각종 복지관이나 장애인 대상의 복지관에 안마사들이 상주하며 서비스를 하게 되면 이용자들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될것이고 안마사들은 경제적 자립의 기반을 마련할 기회가 되니 이런 사업이 계속 될 수 있도록 안마사협회는 물론이고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 또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안마사들의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 쉽고 편하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회에 동화될수 있는 안마사로서의 자부심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일하던 서울시 강서구의 경우 희망근로 안마사 10 명을 모으려고 했는데 홍보 부족과 안마사들의 외면으로 6 명만이 함께 일을 했다.더불어 피술자의 특성에 맞도록 안마를 할 수 있는 마인드는 기본이라고 본다. 그리고 피술자와의 대화술 또한 중요하다. 피술자에게 일부러 말을 시킬 필요는 없지만 피술자가 대화를 원한다면 그 주제에 맞도록 함께 대화하는것 또한 치료의 한 방법이라 본다.
이 일을 마치며 많은것을 배웠다. 단순한 안마에서 개인의 특성에 맞는 안마를 연구하는것부터 계층에 맞는 대화술을 연구해야 하고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 또한 다시 깨닫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어르신은 요양원에서 생활하지만 넉넉치못한 어르신은 매일 아침에 복지관의 보호소에 와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것을 보며...
그리고 매일매일 일을 할 곳이 있어야 한다는것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형편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더 자세하게 그리고 이해가 될수 있도록 쓰고 싶은데 재주가 없어서 이만 쓰겠습니다. 그냥 메모처럼 몇줄 끄적여두려는데 자꾸 글 쓰는것을 포기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게시판에 올린다는 각오를 갖고 적었습니다 그래야 좀더 신경을 써서 쓸것 같아서...
여하튼 늘 새로운 다짐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갑시다. 회원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에 평안이 넘치기를 바라고 더불어 새해에도 늘 마음이 편한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넓은마을에서 장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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