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미국의 장애판정, 시각장애를 중심으로

tosoony 2009. 10. 5. 15:01

제목:미국의 장애판정, 시각장애를 중심으로


  정봉근(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의과대학 작업치료학 박사과정)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이나 사회적 차별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안 등으로 인해 자신이 시력상실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시각장애인들이 가지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이나 직장, 교육, 사회에서의 차별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사회를 바꾸고 시각장애인들의 인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 모순적이게도 이런 장애인의 장애 정도 및 장애로 인한 일상생활의 제한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채로 국내에서 오래전에 받아들인 정책이 있으니 바로 장애등급 판정제도이다. 국내에서는 비장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장애의 특성을 가늠할 수 있도록 돕고 시각장애인들의 적절한 사회적 보장을 위한 행정적 절차의 편의를 위해서 장애진단을 1급부터 6급까지 다양하게 판정해오고 있으며 이 장애등급이 정부가 지원하는 다양한 장애인복지 정책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장애등급의 판정이 과연 적절하게,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4급과 6급의 차이는 무엇이며, 시각장애인 2급과 지체장애 3급의 차이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과연 현재의 장애등급은 장애등급별 맞춤식 지원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인가? 장애등급으로 인한 구직의 제한 등 사회에서의 역차별은 과연 없는 것일까? 만약에 장애 1급보다 더 높은 장애 0급을 신설하고 장애 0급은 보다 높은 사회보장 혜택을 준다고 하면 어떤 장애범주가 그 안에 들어가야 할까? 정부에서는 기존의 장애등급 판정 제도를 개선하여 보다 효과적인 장애인복지 정책을 가능하도록 몰두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 등급 판정제도로 인한 장애계 안에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장애유형별, 장애인 집단별 불협화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은 장애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장애란 장애로 인하여 최소한의 생계유지비를 벌 수 없는 상태”

  미국 내에서만 하더라도 시각장애인 중 70% 이상이 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정부 기관에서 한시적으로 시각장애인의 고용을 촉진시키기 위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바람직한 장애판정과 함께 적절한 사회보장정책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시각장애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일어나는 곳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교통수단의 이용, 구직, 공공기관 이용, 쇼핑, 주변사람과의 의사소통 등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단 몇 시간 병원방문을 통한 의사의 진단만으로 시각장애의 등급이 분류되고 있으니 시각장애인들에게 맞춤식 지원이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장애등급이 높을 수록 소득수준이 낮을 것이고 불편함이 더 클 것이라고 예측하는 국내 장애판정 기준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복지제도는 장애등급판정을 받으러 가는 시각장애인들로 하여금 자칫 더 낮은 등급의 장애등급을 받게 될까봐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더군다나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의사의 입장에서 한 개인의 사회적 보장 정도와 복지를 결정하는 장애등급판정은 의사들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들 중 약 80%가 환자의 장애등급판정에 부담을 가지고 있으며 장애등급 판정 시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를 이유로 보다 환자들에게 유리한 등급을 적용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특히 의사들은 독립적인 장애판정 기구를 별도로 마련하길 원하고 있었으며 주치의가 환자를 대상으로 장애등급을 판정하기보다는 제3자가 보다 객관적으로 장애등급을 판정하길 원하고 있었다.

  그럼 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장애등급 판정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에서는 장애로 인한 기능적 제한에 대하여 세분화하고 분류하여 적절한 보조공학 장비의 지원뿐만 아니라 직장 내 고용지원, 의료재활서비스, 사회보장기금의 지원까지 맞춤식 지원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시각장애아동의 경우 학교 내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교육적 장애 진단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시각장애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은 시각장애라고 하면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각장애는 맹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경우거나 안구 및 시신경의 손상으로 인해서 후천적인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대상자를 모두 포함한다.

  국내에서는 6등급으로 시각장애 등급을 분류하는데 나쁜 쪽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경우에 장애등급 6급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0.02 단위의 시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검사기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정확한 장애등급의 판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평하게 그 절차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시각장애인 진단의 경우 교육적 진단과 의료적 진단이 다르다. 우선 사회기금의 지원을 받는 경우 의학적 진단이 필요하며 이때에는 장애진단 자격을 갖춘 의사의 진단을 통해 최종 장애등급을 부여받는다.

  미국의 경우 2003년부터 사회보장법에 의한 시각장애 분류기준이 교정시력 0.1 이하 시야 20도 이하이며 보다 큰 범주의 의료재활에서는 시각적 제한으로 인하여 독립적인 일상생활의 제한이나 직업 수행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 시각장애로 분류한다. 이때에는 시각장애인의 시력 및 시야가 주위 환경과 함께 어떠한 장해요인을 만들어 내는지, 기능적 제한을 가져오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정의하는 시각장애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시력이나 시야에 손상을 가지게 된 경우, 시력의 손실로 인하여 사물의 구별이나 읽기, 미세한 작업의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 시야의 손실로 인해 자유로운 보행에 제한이 있는 경우를 포함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원시 및 근시 혹은 두 가지의 시력 모두 손상을 가진 경우를 말한다. 시력 손상의 정도가 아래의 기준에 부합할 정도의 장애여야 한다.

  

  *     잘 보이는 쪽 시력이 20/200 혹은 그 이하인 경우

  *     잘 보이는 족 시야가 동공의 고정 상태로 10도 이하인 경우

  *     전체 시야의 확보가 좌측 우측 반경을 합하여 20도 이하인 경우

  *     잘 보이는 쪽 시효율성이 시력 조절 후 20 퍼센트 이하인 경우


남아있는 시력의 측정인 시력검사표를 기준으로 가장 잘 보이는 시력을 측정하게 되며 이때에는 콘텍트 랜즈나 그밖의 시력 보조기기의 착용이 가능한 경우 이들 보조도구의 착용 후 시력을 측정하게 된다. 시야의 손상을 측정하기 위해 3.3cm 반경에서 시야 측정을 하게 된다.

  미국의사협회에서 새롭게 따르고 있는 장애등급평가기준에서는 국제보건기구에서 2001년 제시한 장애 기능력 분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2001년 제창한 국제장애건강분류 ICF가 바로 그것인데 이 분류기준에 따르면 시각장애와 지체장애 등 장애 범주를 넘어서 어떠한 요인이 장해로 작용하는지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즉 다양한 장애 범주를 일일이 분류하여 장애 종류별 장애로 인한 일상생활 활동의 제한이나 사회활동의 기능적 제한을 직접 분류 코드로 나타내어 직업, 교육, 여가생활, 사회활동 참여의 제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이때에 시각장애의 경우 대부분의 시신경 감각 손실 부분에 체크를 통해서 독립적인 일상생활에 가장 많은 제한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애 분류별 서비스 제공보다는 개인의 수행 능력과 주변 환경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기능적 분류가 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애의 기능적 분류기준을 통해서 이에 적절한 다양한 장애인 직업재활이나 사회보장프로그램이 마련되며 의료서비스의 경우에는 시각장애의 특성에 맞는 의료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즉 목적에 따라 장애의 분류를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애분류체계가 혹자에게는 보다 복잡한 분류체계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보다 실질적인 장애인정책과 지원서비스를 마련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애의 특성을 직접 평가하기 위해서 다양한 평가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직접적인 재활서비스나 맞춤식 사회보장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밖에도 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주정부 사업 지원 혹은 세금 감면 혜택을 통해서 시각장애인들이 보조공학 등의 지원을 통해 취업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결국 기본적인 소득보장은 장애인연금제도를 기반으로 보장하게 되며 별도의 장애 분류 기준을 통해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갖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는 모습이다.


- 브레일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