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리포트: 영국,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위현복(서울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영국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고풍스러움, 신사적임, 그리고 평화로움. 난 여기서 한 가지 이미지를 더 제시하고 싶다. 자유로움. 그리고 이 자유로움은 항상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살아가는 한국의 장애인인 나에게 영국이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남의 눈’이 주는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느껴야 했던 나에게 영국은 ‘천국’이었다. 휠체어 타는 사람을 참 많이 만났던 것 같다.
필자는 지난 9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장애청년 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영국을 다녀왔다.
▲ 영국의 장애인 편의시설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조금은 불편한 입국절차(줄이 길었던 지라, '휠체어 타는 사람들이나, 노약자는 따로 배정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아마도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목발을 짚어야 하는 절단장애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를 거치고,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영국의 경우 지하철의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힘든 역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지도나 음성서비스를 통해 이들 역에서 장애인들이 하차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고, 가급적이면, 이들 역에서 가까운 곳에 역을 하나 더 설치해, 장애인들이 지하철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지하철 안의 경우, 사이의 통로가 한국에 비해서 좁은 편이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조금 불편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영국의 명물은 2층 버스인데, 장애인이 타기에는 층간의 계단이 가파르고, 사이의 간격도 꽤 있는 편이라서 2층에서 버스 타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1층에서는 상당히 편하다. 비록 미국처럼 완전히 휠체어 제어장치가 돼 있지는 않지만, 역시나 휠체어 타는 사람을 기사가 직접 나서 태우고, 최대한 안전하게 자리를 마련하고,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기본적으로 신사의 나라인지라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이 버스기사에게나, 승객에게나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 팀원 중에서 중증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편의시설을 이용할 경우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남녀구분이 돼 있는 편이었으며, 우리가 방문했거나, 우리가 방문하면서 돌아다녔던 역과 건물에는 기본적으로 경사로와 승강기가 있었다. 물론 식사를 위해 방문했던 식당들이나, 쇼핑몰 등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방문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우리 팀원들이 중증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좁은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휠체어를 타거나 시각장애인이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조금 큰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을 것이다. 식당에서 점자메뉴판을 보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물론, 식당의 종업원이 시각장애인에게 메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메뉴선택에 도움을 주겠지만 말이다.
한편 영국에 있던 시간 동안,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는 축제가 열렸는데, 휠체어를 빌리는 데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이외의 음성지원이나, 수화통역, 화면자막해설 등은 잘 이뤄지고 있었으며,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하는 것도, 거의 모든 요구사항이 그 자리에서 해결되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 에딘버러의 보통 건물에서 공연을 한다는 특성상 장애인의 진입이 어려운 공연도 있긴 했지만, 그런 점들은 안내책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 사회활동에 있어서, 장애는 장애물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가 영국에서 방문한 기관은 SCOPE(영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회), BBC의 어린이채널인 cbeebies와 BBC의 장애인 전용 웹 사이트인 OOPS, 장애인 잡지사인 DN(Disability Now) 등 7곳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터뷰한 선천적으로 왼팔이 없는 지체장애인 패션모델 켈리 녹스까지 하면 진행한 인터뷰는 8회였다.
8회를 거친 인터뷰 동안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언론이 장애인과 사회를 잘 조절한다는 것보다는 현지 장애인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이었다. 인터뷰 대상자 대부분이 장애인이었으며, 다들 뭔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DN의 편집자인 이안 맥레이씨나, OOPS의 데이먼 로즈 씨의 경우, 시각장애인이면서 BBC의 Diversity Center에서 각각 25년과 13년을 근무했거나 근무하고 있었으며, 직접 인터뷰 하지는 못했지만 BBC의 어린이 채널인 Cbeebies의 진행자인 절단장애인 캐리 버넬 씨를 섭외한 PD와의 인터뷰를 통해, 장애와 사회생활의 불편함은 비례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작년에 BBC에서 진행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Britain Top Missing Model>의 우승자로 세계적인 패션잡지 마리끌레르의 표지모델로 데뷔한 켈리 녹스도 자산관리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회인이었다. 물론 한국의 장애인들 대부분이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장애인들이 사회진출 하는 방향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방송진행자의 경우, 현재 kbs <사랑의 가족>을 진행하고 있는 강원래 씨가 유일하다. 그마저도 강 씨가 인기가수 출신이 아닌 일반 장애인이었다면, 강 씨의 방송진행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정도로 한국의 장애인들의 사회진출은 제한적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영국인들이 장애인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장애인들을 사회에서나 혹은 방송을 통해 사회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많을수록, 사회에 진출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날수록,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시선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장치(의무고용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데 필요한 시설제공(보청기, 점자책.) 등은 기본적으로 설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장애인들 스스로가 사회생활을 직접 하면서 겪는 불편함을 요구하면서 이를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장애인이 사회를 움직이는 것도 모두 요구
사실 영국에 있었던 9박 10일 동안 거리에서 많은 장애인을 봤다. 휠체어를 타고, 안내견을 앞세워서 출근을 한다든가, 문자를 통해 업무현황을 보는 청각장애인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지 도심에서만 본 것은 아니었다. 공연장에서도, 쇼핑몰에서도 그런 모습이 없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서점을 많이 들르지만, 종로나 여의도를 자주 가지만, 장애인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단지, ‘사회가 장애인의 활동 공간을 제한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도 나를 보는 불편한 시선을 하루에 최소 두 차례 정도는 느낀다. 하지만 이 느낌이 싫어서 사회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간단한 명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한국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시선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딘가 안돼 보이고, 도와줄 것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도움이 필요하면, 과감히 ‘도와달라’고 외치길 바란다. 도움이 필요 없으면 그 사람에게 ‘괜찮다는’ 미소나 말 한마디 하면 된다. 대놓고 장애인의 도움의 손길을 무시하겠는가? 버스가 장애인 한 명 때문에 늦는다고 해서 대놓고 짜증내는 사람이 있겠는가? ‘없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으면 자신 있게 사회로 나오면 된다. 보이면 보일수록 익숙해지는 것? 동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영국에서 9박 10일 동안 배운 것은 ‘언론의 인식개선’이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자주 서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 넓은마을 브레일타임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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