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골 출신인 내가 안마를 생계 수단으로 세상을 살기 시작한 것이 1985 년부터였다.
안마원부터 시술소의 종업원, 그리고 안마사라면 하고싶어하던 원장까지 잘 나간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세월은 흘러서 IMF 가 한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니 시술소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앞을 내다보지못한 무리한 투자 덕분에 지방의 시술소를 접고 취직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생활은 재산을 모을 수는 없지만 삶을 유지할 정도의 돈벌이는 유지했다. 그러나 성매매특별법의 적용에 따라 시술소는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실직하는 안마사 또한 급증하는데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서 2008 년 1월에 직장을 잃었다.
이제 무엇을 생계 수단으로 해서 세상을 살아갈것인가? 고민 끝에 창업 교육을 받기로 하고 실로암복지관의 안마창업교육 과정에 참여했다. 1980 년대 학창시절 배웠던 이료 용어가 변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내용과 영어 표기가 조금 생소했다. 침술의 새로운 이론, 접해보지못한 카이로프랙틱 실전, 동방 활법 등을 대하면서 다 익히지 못하는 나 자신을 꾸짖기도 하며 한가지라도 배운다는 각오로 6개월동안 열심히 참여하고 이수증을 받는것으로 창업 과정을 마쳤다.
이제 어떻게 할까? 취직 자리는 하늘에 별을 달기만큼이나 힘들고 젊은 안마사도 넘쳐나는데...?
그래. 도전이다. 안마원을 만들어서 참 안마를 알리고 생계를 이어가자. 결심을 한 나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집 근처 아파트내 상가 한칸을 사고 인테리어 전문가를 섭외해서 내부를 정리하고 집기를 구하며 영업장의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할 목적으로 홈페이지 제작자를 섭외해서 200 만원을 들여서 홈페이지를 만드는등의 바쁜 나날을 2개월 보내고 9월에 영업을 시작했다.
마을버스광고, 인터넷광고, 신문전단광고, 명함돌리기등 내 머리로 할 수 있는 홍보를 위한 방안을 실천하느라 돈도 많이 들고 마음 고생도 컸다. 아파트에 무차별로 명함을 넣는 바람에 관리실로부터 항의 전화도 받았고 계속 이렇게 하면 직접 치우도록 조치하겠다는등의 전화도 받았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네 아파트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에 광고 전단지를 붙일수 있게 해줄테니 매월 일정액을 내라는 것이다. 돈을 요구하는 방법도 참 많구나.
홍보를 맡은 사람에게 1대1로 홍보물을 전해달라고 당부에 또 당부를 했건만 무차별로 현관이나 우편함에 넣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믿고 산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처음부터 내방법이 실천하기 힘들다고 말을 했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것인데 솔직하지못한 그사람이 싫었고 내마음을 헤아려줄 눈이 없음이 한없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업은 부진했다. 주변에 아파트가 많아서 주민을 상대로 정성을 기울이면 최소 생계비는 벌것 같아서 시작한 영업이 겨우 은행 이자를 내는 수준이라니? 슬프다. 무슨 대안이 있을까? 주변의 발마사지, 찜질방의 경락마사지라는 업소에는 사람이 많다는게 가끔 들르는 손님들의 말인데... 단골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가끔 세사람이 오면안되는가? 혹은 밤늦게 받을수는 없는가? 이런 질문이 나를 슬프게 했다. 어차피 감당할수 없는 일인데 ...
1년을 버티던 내가 결국 지고 말았다. 운영 자금을 더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서 상가를 구할 당시의 값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제 무슨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고민할때 주변 어느분이 강서구청에서 희망근로사업중에 안마서비스를 한다는것을 알려준다. 5월인지? 6월인지? 신문에서 강서구청에서 찾아가는 안마서비스를 한다는 기사를 본기 억이 났다.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희망근로 담당자에게 안마를 할 수 있는 길을 물으니 전혀 모른다는것이다.
이번에는 구청의 희망근로 담당자를 찾아서 안마사도 희망근로를 할 방법이 있는지를 물으니 동사무소에 서류를 접수하라는것이다. 서류를 만들어서 동사무소의 담당자에게 주며 구청에 접수해달라고 한 다음 며칠이 지나 구청의 담당자는 현재 안마사가 모두 일을 하고 있으니 다음 기회를 이용하라는것이다. 그후 1주일이 지나서 안마서비스 담당기관이 내일부터 희망근로에 참여하라는것이다.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서비스를 이용할 대상이 많아져서 추가로 안마사를 참여시킨다는것.
고민된다. 겨우 3일전에 나를 걱정하는 선배님의 배려로 밤에 출퇴근하는 안마시술소의 일자리를 얻었는데... 시술소 생활을 해본 내가 돈벌이도 작고 아침에 일어나 이동하면서 일을 해야하는 자리에 가야하나? 한나절을 고민한 끝에 놓치기 싫은 자리이고 돈벌이는 안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집에서 식사하고 밤에 쉬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담당 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만들고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제 희망근로가 시작된다. 매일매일의 일정에 따라 나를 안내하고 도와줄 또다른 희망근로자가 나의 집으로 찾아오는것으로 그날의 일정은 시작된다. 급여는 모든 희망근로자가 똑같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 안마를 받을 사람도 도와주어야 하기에 가능하면 요양보호사를 동행인으로 연결해준다는게 담당자의 설명이다. 안내인의 역할은 안마사를 안내하고 이동할 장소의 교통편을 미리 점검해서 안마사를 불편없이 돕는것이고 안마사는 매일 두곳을 방문해서 30분짜리 안마를 세사람 해주는것이다.
처음 이동할 장소는 지적장애인 (흔히 정신지체장애인이라고 함) 보호 시설이다.
안내인이 나를 데리러 와서 10분 거리의 지하철역을 이용해서 이동하기로 했다. 목적지 역에 내려서 보호 시설을 찾아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느곳에서 우회전을 하고 또 다른 곳에서 직진을 하라는 등의 순서로 가르쳐주면 좋은데 그저 무슨 건물 앞이라는 막연한 설명을 한다. 이거참! 정확하게 길을 안내하는 방법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배워야겠다. 적어도 시각장애인은 자신이 정확하게 아는 길은 어느 골목에서 좌회전, 무슨 가게 앞에서 우회전 이렇게 가르쳐주니 찾아가기도 쉽지않을까? 물어 물어서 시설을 찾아가니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4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단다. 운동을 하려고 남산도 걷는데 이것쯤이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각기 특유의 행동과 소리를 내고 있다. 요즈음 유행하는 신종풀루인지? 불루인지를 예방하기 위해서 손소독을 하고 체온측정도 했다. 첫번째 안마를 시작한다. 대화가 안되니 담당 선생이 와서 설명을 해준다. 나이와 성별 그리고 몸의 상태등을 듣고 30분동안 안마를 어떻게 해줄것인가를 잠시 고민한 다음 안마를 시작한다. 신체는 거의 건강한 편인데 자기방어 본능에 의해서 팔다리를 전혀 만지지못하게하는 친구도 있고 주
먹을 꽉 쥐고 손을 피려고 하지않는 친구등 다양하다. 몇분 안마를 하고 있다보면 긴장이 풀어지는지 편히 누워 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중간에 벌떡 일어나서 가버리는 친구도 있다. 안마를 하는 도중에 가끔 다른 장애인이 나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
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옆에 서있기도 한다. 남자인 나도 놀랄 때가 있는데 여자
라면 더 놀라고 무서울 수도 있겠구나! 여기서의 하이라이트는 (많이, 많이) 무슨 뜻이냐고? 처음에 안마를 받으라고 데려오니 안한다고 피했던 친구가 다 끝났으니 일어나라고 하니 (많이, 많이) 를 외친것이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한번 웃고 지나갔다.
다음 장소는 ㄱ의 집. 이곳은 지체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등 30여명이 생활하고 있단다. 장소에 도착하니 안마를 받을 준비도 되어있지않고, 누가 받을지 정해져 있지도 않단다. 서운하다. 이렇게 무성의하게 나를 맞다니? 그래도 자칭 의사라고 뻐기는 나를 이렇게 대접하다니? 그러나 어쩌랴? 주어진 순서대로 할수밖에... 가건물 바닥에 비닐돛자리를 편단다. 가서 보니 사람이 누우면 발이 돛자리 밖으로 나간다.
이런 속에서 내가 자랑하는 안마를 해야 하니 나도 참 바보다. 그냥 전에 선배가 주던 자리로 출퇴근할것을...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는 안내인의 말에 같이 간 동료 여안마사가 기겁을 한다. 청소나 좀 깨끗하게 하고 살면 안되나? 하지만 육신이 부자유스러운데, 자신의 몸에서도 냄새나는 사람도 있는데 주변 정리를 어떻게 할수 있을것인가?
다음 장소는 누워서 생활하는 장애인의 집을 방문한다. ㄴ씨는 두 다리와 왼쪽 팔이 없는 절단 장애인이다. 오피스텔을 찾으니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혼자서 생활하고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는다고 한다. 불편한 곳을 물으니 허리가 아프단다.
엎드리게 하고 뒷머리부터 엉덩이 부분까지 30분동안 유연과 압박을 섞어가며 안마를 하는데 특정 부위만 오래 하는것도 쉽지는 않다. 허리 부분에 침을 한번 꽂아주었으면 좋겠지만 그 일은 내 업무에 들어 있지않아서 다행이다. 침을 꽂으면 시간이 길어지니 안내인도 불평할것이고 만일 더 아프다고 진정이라도 하게되면... 언젠가 어느 복지관에 근무하시던 안마사의 안마를 받고 더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는 글을 본적이 있었거든. ㄴ씨와 이야기 하던중 내가 음악을 주로 들으며 일을 한다고 하니 80년대 가요를 컴퓨터를 통해 들려준다.
다음은 ㄷ씨의 차례다. ㄷ씨는 뇌세포가 죽어감에 따라서 근육도 힘을 잃어가는 병이란다. 이사람도 허리가 제일 불편한 사람이란다. 오늘은 엄지손가락이 무척이나 고생하는 날이다. 집에 들어가니 물파스인지 바르는 파스인지? 냄새가 굉장하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가 없어서 남자 활동 도우미가 엎드리게 한다. 체격은 좋은데 근육에 힘이 없어서 자신을 가눌수 없다는게 믿기지않는다. 말투도 조금 이상한 것이 뇌세포의 변화때문인 모양이다. 안마를 끝내니 사과를 한개 준다. 안내인도 주어야 하지않느냐고 하니 한개뿐이란다.
이번에는 복지관의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이곳은 안마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규칙에 따라 미리 안마를 받을 사람들이 정해진다. 아무리 일찍 와도 명단에 없으면 안마를 받을수 없고 순서가 지켜지지않으면 옆에서 꾸짖기도 한다. 강서 지역에서 희망근로하는 모든 안마사가 이곳에 모인다. 그만큼 어르신들의 호응이 좋다. 안마가 끝나면 손을 잡아가며 (고맙다. 내 손자보다 낫다. 커피값 줄깨.) 등의 인사를 한다. 나중에 오신 어르신들중 안마를 받지못한 노인들은 다음주에는 일찍 와서 받겠다고 다짐도 한다. 가끔 명단에 오른 사람중 빠지는 경우가 있을 때에는 나중에 온 사람중의 한사람이 받게되고 그러면 주위의 어르신들이 복권에라도 당첨된듯 부러워한다. 안마사들이 제일 환영받는 곳중의 한곳이다.
다음은 ㄹ주간보호센터. 이곳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주간에 보호하고 밤이 되면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서비스를 한단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치매환자, 각종 성인병 때문에 몸을 가눌수 없는 환자가 이용하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이나 소득이 낮은 어르신들이다. 손만 얹어도 아프다는 노인들을 주물러 드리는게 쉽지않다 그리고 몸이 부자유스러우니 움직이는게 어려워서 팔과 다리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젊어서 훨훨 날던 사람이 자신의 몸도 이기지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답답할까? 눈이 안보여도 살아있는 한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가눌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그래야 몸을 씻고 대소변이라도 가릴것 아닌가? 안마가 끝나면 일부 어르신은 불편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럴때면 나도 잘하고 있구나! 하는 위안을 해본다.
ㅁ타운. 이곳은 아파트 형태의 복지시설이다. 혼자 계시는 노인, 부부가 함께 계시는 노인들이 실버타운 형태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곳이다. 각 방마다 도우미가 있어서 노인들을 보살피고, 병원과 운동시설 기타 취미생활을 할수 있도록 되어 있단다. 나도 늙어지면 이런 시설에서 삶을 마감할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어쩌나? 이곳에서는 파킨슨병에 시달리는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는다. 아무 말도 못하시는 분이 내가 안마를 하는동안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잠시 곁을 떠나면 아프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던 분이다. 불안해서 그런가?
장애인 시설을 다니다보니 예전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난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1970 년대의 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다. 당시 맹학교에서는 눈이 조금만 보이는 약시는 전맹의 머슴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전맹 시각장애인들의 도우미 역할에 충실했다.
내가 학생일때 집에 돈좀 보내달라는 편지를 써주던 친구가 지금은 나와 같으니 또다른 답답함이 그 친구에게는 있을까? 다른 장애인 시설 또한 형편이 그러했다. 지적장애인 시설에는 조금 똑똑한 장애인이 부족한 장애인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고, 밥먹을때 먹여주기도 하고,지체장애인들중 조금 자유로운 사람들 또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은 내가 안마를 하며 손이나 발을 잡고 운동을 시키면 잘 펴지는 장애인들이 혼자서는 그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경우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꾸준히 시켰다면 부자유스런 팔과 다리가 조금이라도 기능이 좋아질수 있지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유난히 체격이 큰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단순히 수용에 머무르지않고 운동 프로그램을 처방하고 실천한다면 비만을 줄일수 있지않을까? 특히 지적장애인들의 비만이 많은것 같았다.
힘들고 경험하지못한 1주일이 지나면 쉬는 토요일이 왜? 이리도 좋은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않아도 좋다는 편안함이 이런 느낌인가?
이렇게 1주일을 보냅니다. 이곳 강서구 말고 다른 지역에서도 희망근로 안마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 일에 참여하시는 분의 소감을 듣고자 합니다.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지 받으시는 분들의 반응은 어떤지? 가능하면 많은 자료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얻어진 자료를 종합해서 더 좋은 안마서비스 제도를 만드는 참고로 활용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제도라도 일시적인것이 아니고 확고한 제도로 정착될수 있게 하는 것이 이나라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매년 시각장애인은 발생하고 그중에 안마를 배우는 사람 또한 생기는 상황이라면 다소 고생스러워도 미래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위한 작은 불씨라도 살려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저도 얼마나 이 일에 관심을 가질수 있을런지? 장담할순 없지만 일을 하다보면 최소 생활을 할 정도의 급여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고 시각장애인 특히 전맹 안마사 혼자서는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희망으로 전환할수 있는 길이 될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즈음 헬스키퍼 사업이 가끔 공지되는데 전맹 안마사가 취업하고 있다는 말을 저는 아직 듣지못했습니다. 혹 자신이 사는 시,군,구청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면 새로운 길을 닦는 각오를 가진 실력있는 안마사들이 많이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국가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더 좋은 제도로 만들려는 노력을 할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남겨주세요.
- 넓은마을 장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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