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한 해를 보내며

tosoony 2005. 7. 4. 00:19

                      한 해를 보내며

  * 2004년 12월

  2004년 새해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힌 새 달력의 첫 장을 넘긴 지가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새삼 놀라곤 한다.
  임용고사를 거쳐 이곳 대전맹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11년이 되었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내게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특수교육 일반사회를 전공하고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지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눈을 갖게 해보겠다고 나름대로의 포부를 갖고 학생들 앞에 섰지만 몇 년 안되어 뜻하지 않은 컴퓨터 담당 교사를 맡게 되었다.
  당시 내가 특별한 자격이 없이 컴퓨터를 가르치게 된 이유는 일선 특수학교에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에 능통하고 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 시절 취미삼아 푹 빠져 지냈던 컴퓨터에 대한 변변치 않은 재주를 갖고 있었는데 이를 높이 사주신 학교측의 배려에 따라 임시로 컴퓨터 교과를 지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학생들과의 색다른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교사가 된 것에 대해 아쉽거나 힘들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분명한 것은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미래 재활의 희망은 컴퓨터와 재활공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첨단 기술을 수업 현장에 접목시키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학습환경을 개선하고 나아가 미래의 새로운 시각장애인 직종 개발에 접목시킬 수 없는지 고민하는 나 자신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컴퓨터를 지도하는 나에게 어느 때보다 의미잇는 한 해였다. 어느 해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각종 전국 대회라는 열려진 공간 안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름대로 좋은 소득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수상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 해준 모든 참가 학생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컴퓨터 정보 관련 대회들이 대내외적으로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올 한 해를 돌아보고 보다 나은 내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 학생들과 몇가지 고민했으면 하는 사항을 적오보고자 한다.
  첫째,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길러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맹학교의 교육환경은 한소네 단말기 초고속 통신망, 최신 스크린 리더 등의 무상 보급에 따라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최첨단의 교육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이것들을 조직화하여 수업 현장의 질을 높이는 것은 1차적으로 교사들의 몫이겠지만 한편에서는이러한 첨단 공학 기자재를 활용하는 학생들 중에는 상당수가 수동적으로 특정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구석에 방치한 채 외면하는 학생들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회를 기회로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발전이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자재와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탐구하려는 강한 호기심과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미래는 누구보다 먼저 기회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전맹학교인들이 되길 바란다.
  둘째, 진정한 모험 정신을 갖자. 최근 대회에 참가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 중에는 참가 대회에서 제공하는 상품의 양과 값어치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참가 자체를 결정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심지어 개별적인 개인 상품이나 대가가 없는 일부 단체 대회에는 노골적으로 참가하기를 기피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학창 시절 각종 경연과 대회에 출전하는 이유는 내가 소속된 모교의 명예를 높인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보겠다는 강한 모험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잠깐의 연습으로 물질적 풍요를 얻거나 행운을 잡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대회를 주최하는 측에서도 지나친 상품이 학생들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비교육적인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인식하여 이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관계없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졌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 우리들은 누구나 각기 다른 개성과 소질을 갖고 있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모두가 소중하며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긍정적인 면으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설사 학창 시절 일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거나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의기소침해하거나 자아 존중감을 낮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상을 타거나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서로를 항상 배려하고 함께 기뻐하며 격려하는 마음자세를 가진다면 훨씬 더 소중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2004년 대전맹 교지 중에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 수 없다는 것  (0) 2006.07.04
새 냉장고  (0) 2005.08.07
제5공화국을 보지 않는 이유  (0) 2005.06.22
할머니와 설날  (0) 2005.04.08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댓가  (0) 200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