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의 세상 견문록

수안보 생환기 2

tosoony 2005. 4. 14. 23:51

다음날, 서둘러 짐을 꾸려 찝찝하기만 한 여관 방을 나와보니 길은 이미 녹아내려

진흑투성이였고 안개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안개가 걷힌 주위는 완전히 다른 세상같았다.

어젯밤의 일이 마치 꿈만 같을 따름이었다.

우리는 다시 난리를 피워가며 체인을 풀어넣고 서둘러 수안보로 달렸다.

꼬불꼬불한 길을 보며 우리는 어젯밤 이곳을 지나가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지난 모두하나 전모때 머문 상록호텔 옆에 있는 한전 생활연수원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서둘러 근처 집두부집이라는 음식점에서 비지장, 청국장 등을 먹으며 간밤의 이야기

를 하느라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특히 야릇한 비린내와 함께 금방 만들어 내주는 순두부는 정말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여러분에게도 추천할 만한 음식점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일정은 충주호와 고수동굴 구경이었다.

물어물어 한참을 달려 커다란 충주호에 다다랐다.

원래는 배를 타고 건너가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근처 고수동굴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도착한 시간이 12시였음에도 막차인 2시반 배밖에는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10분을 쉬고서 바로 회황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늘상 우리가 잘 써먹는 방법을 실행하기로 했다.

모두들 정박해 있는 배앞으로 달려가 온갖 갖은 폼을 잡아가며 마치 이제 막 배에서

내린 양 뿌듯한 표정으로 단체사진을 박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충주호에서 배를 탄 셈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고수동굴로 막바로 향하기로 했다.

총원 12명(아니 3살박이 애까지 13명이었다)이 크레도스와 프라이드 dm에 각각

6명씩 타고 프라이드가 앞장을 섰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프라이드는 내려앉지도 않고

이름처럼 자존심을 세워가며 잘 달려갔다.

(기아차 만세!)

중간에 충주호에서 막바로 단양을 거쳐 고수동굴로 가는 길이 있다면서 길가에

서있는 시골 아낙네로부터 지름길을 들은 우리 차는 앞차의 영도아래 열심히

따라갓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어제의 불행이 어제의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음을...

갑자기 아스팔트가 끝나고 돌투성이의 비포장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 새로 생기는 길인감?'

우리는 의심 반 의혹 반으로 덜컹거리는 차를 달래가며 계속 차를 몰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경고'  '낙석주의'   '위험' '발파지역'

도대체 알 수없는 표지판과 경고문구가 곳곳에 빨간색으로 우리를 막는게 아닌가?

거기다 길은 점점 더 험해지면서 또다시 완전히 인적이 끊어진 것이다.

미처 지도를 가져오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위에는 이미 폐가가 되어버린 낡은 시골집이 드문드문 보일 뿐 도저히 사람이

사는 곳 같아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틈에 3시가 가까와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본능적으로 해가 지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터라

앞차를 서둘러 세워 내린 다음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저쪽에서 한 사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서둘러 달려가 그 분에게 물어보니,

'이리 가면 길이 없시유. 여긴 xx마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을 뿐인디유.'

으악!   또야!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

우째 이런 일이..

막막했다. 차바닥 다 긁어가며 내려온 길인데 다시 되돌아가라니..

기사에게 안물어보고 동네 아줌마에게 길을 물어본게 큰 실수였다.

되돌아가는 언덕길은 더욱 험난하기만 했다.

작은 프라이드는 진창의 언덕배기에서 그 잘난 자존심을 완전히 배려가며 기어오르질

못했고 결국 모두들 차에서 내려 꽁무니를 밀어야 하는 고행을 몸소 격어야 했다.

그래서 중형이 좋은거야..   그래도 우리 차는 그정도는 아니었다.

한참을 다시 달려 '제천'이라는 도시가 나타날 때쯤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고수동굴이고, 고자동굴이고 다 관심이 없어진 듯 모두들 먹을 수 있는 데만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겨우 찾아낸 기사식당에서 우리가 헐레벌떡 먹은 음식은, 다행히 국밥이 아니라

'라면'이었다.

결국 우리의 고수동굴 시도는 거기서 무산되었고 모두들 무조건 수안보로 돌아가자는

여론에 못이겨 다시 제천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길을 향했다.

이번엔 확실히 실수하지 말자며 재삼재사 길을 물어 출발했다.

다행히 이번의 길은 넓게 뚤린 것이 아주 좋았다.

그러던 것이 얼떨결에 박달재 고개가 나타났다.

모두들 하는 말, '어, 여기가 박달재 고개네!'

덕분에 박달재 고개라는 노래는 실컷 부를 수 있었다.

그러그러하여 수안보로 되돌아오니 시간이 오후 5시반.

도대체 우리는 오늘 무얼 구경했지?

서로서로 묻는 이러한 황당한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것은 박달재 고개하나는

지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 충북 땅을 다 돌아본 듯한 기분과 함께 차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도로상황을 다 경험했다며 집사람은 운전실력 하나는 확실히 늘은 것 같다고 한다.

저녁은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꿩 샤브샤브'를 먹어보기로 했다.

7가지의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꿩 샤브샤브는 처음에 끓는 육수에 꿩고기

안가슴살을 살짝 데쳐 양념에 찍어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육수에 담근 국수,

꿩탕수육, 꿩만두, 꿩육회, 꿩야채잡체, 마지막으로 꿩도리탕까지 온통 꿩꿩꿩

투성이였다.

나중에는 말까지 꿩꿩 거리는 것 같았다.

나오는 갯수는 몇 점 안되어 입맛만 버리는 것 같았는데 다 먹고나니 의외로

배가 불러왔다.

맛도 특별했지만 인상깊은 것은 일곱번이나 들락거려야 했던 점원 아가씨의

바쁜 모습이었다.

(이런 장사는 정신없어서 못하겠다)

그날 밤 근처에서 친구가 기념으로 특산주를 하나 골라온다고 했는데, 들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니라 '안동소주'였다.

수안보에 웬 안동소주?

이것이 우리나라 관광지의 현주소인 것 같았다.

하여간 양주와 비슷한 그 비싼 소주맛을 보며 수안보에서의 마지막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은 늦으막히 짐을 꾸려 연수원을 나섰다.

한전에서 운영하는 연수원이라 무척 깨끗하고 좋았는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예전같으면 신정연휴 때에는 정신없이 인파로 바쁜 곳이었으련만 모두들 imf 한파로

몸을 사리는 듯 한전 식구들을 포함한 손님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올라올 때는 내려올 때와 정반대로 너무도 편안하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비록 힘들고 고생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의미있고 재미나게 보낸 시간이었다.

한가지 교훈이라면, 결코 연휴 때 일정을 잡지 말자는 것.

또하나, 다시는 수안보에 가지 말자는 것.

이상입니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