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정관념

tosoony 2005. 4. 8. 00:12

                                   고정관념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국내의 유명한 한 대기업에서 주최한 장애인 정보검색

대회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출전하게 되었는데, 주최측 기업체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 자기네 사내방송의 홍보용으로 우리 학교 출전 학생들의 모습을 촬영하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단순한 사내방송용이라는 것이 아쉬웠지만 나름대로의 홍보가 될 듯도 싶고 학생

본인들도 동의를 하여 촬영에 협조키로 했다. 그러나 일정 조정 마지막에 촬영은

취소되었다. 이유는 학생들이 전맹이 아니라 화면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약시라서

시각장애 학생으로 보이기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 인간이 가진 나쁜 습성 중 하나로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들곤 한다. 어떤 사건의 초기에 경험한 내용을 고정불변한 진리로 받아들여

더이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이르는 용어인 고정관념은 첨단 정보화

사회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정치 사회는 물론 우리 주위에서 순간 순간 우리 자신의

발목을 붙잡곤 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폐해는 종종 언론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각인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언론의 시각은 극히 경직된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하나는 불쌍한 불구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불굴의 승리자들이다. 불쌍한

불구자들은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정상인’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자선의 대상이 된다. 반면 불굴의 승리자들은 평범한 장애인들이나 정상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범적 인간상으로 제시되는데, 언론은 이런 태도를 통해

다음과 같은 관념을 강요한다. “장애인들에게 우리와 동등한 수준의 경쟁 조건을

제공해 줄 수는 없지만 만약 장애인들 중 일부가 초인적 노력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들에 한해 온갖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겠다.”

장애인들을 이와 같은 두 가지 틀 속에 고정시키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불쌍한 불구자로 고통스런 하루를 살아가지도 않지만 불굴의 승리자처럼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하루를 생활하고 싶어하는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는

훨씬 많다. 그러나 고정화된 이 사회에서 불쌍한 불구자나 불굴의 승리자에

해당되지 않는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소위 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거리가

되지 않는 홰색의 대상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 불굴의 승리자들이 경험하는

기쁜과 성취감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남의 일일 뿐이다.

  이처럼 가진 자들에 의해 포장되고 왜곡된 배타적인 고정관념은 진정한 복지를

희망하는 우리들이 꼭 해결해야 할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제이다.

  최근 들어 우리 나라의 일부 시민단체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과거의 구습과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획일화된 외모와 몸매에 의존하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대하는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의 개최나 자신의 외모적

콤플렉스를 떳떳하게 내세우며 노래 실력으로 승부하려는 가수의 등장 등은 이 시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시각장애인은 반드시 검은 안경을 착용해야 하고 맹인은 꼭 점자를 잘 읽어야만

성실한 사람으로 간주되며, 시각장애인들은 학력이 낮고 생활수준이 빈약하기에 기

초적인 경제적 지원만 바랄 것이다라는 식의 부지불식 중에 우리에게 유입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에서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모습 자체를

보둠어안고자 할 때 비로소 대다수의 장애인이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까?

 

* 2003, 2004년 대청의 샘터, 한맹뉴스, 대전 시정소식지 기고.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각장애 교사를 생각하며  (0) 2005.05.17
자존심  (0) 2005.05.02
시각장애인의 대학 진학을 생각하며  (0) 2005.04.08
점자를 생각하며  (0) 2005.04.08
준법투쟁  (0) 200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