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준법투쟁

tosoony 2005. 4. 7. 23:58

 

       준법 투쟁

 

  얼마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컴퓨터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준법 투쟁이 뭐예요?"

  사이버 공간에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 만들어지는 낯선 신조어들로 인해 늘 네티즌의 이슈를 먼저 체크해두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학생의 질문에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로 '준법'과 '투쟁'이라는 용어는 글자상으로는 전혀 공존할 수 없는 모순된 용어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노동자와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의사표시 방법 중에 '준법 투쟁'이라는 것이 자주 사용되어 왔다.

  준법 투쟁이란 사전 적으로 법규를 규정대로 지키면서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노동 쟁의를 말한다. 버스 기사가 신호와 차선 위반을 하지 않고 운행을 하여 늦게 도착한다거나 지하철 노동자의 배차와 정차 시간 준수 투쟁은 물론 최근 일부 공무원들의 준법 투쟁에 이르기까지 준법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행위는 많은 이들의

혼란과 불편을 가져오곤 한다.

  법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덕이나 양심에 의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사항을 법률로 강제하여 규정한 것으로 법과 질서는 우리 사회를 안정되게 지켜주는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법을 지킨다는 것이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했을까?

  그것은 물론 1차적으로 입법 과정에서의 오류와 담당자들의 태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일상에 함께 공존하는 법과 제도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외면하고 법은 법이요,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는 식의 안이한 생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채 문구상의 법규정으로만 존재하는 법률들은 앞서 언급한 사례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복지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포괄적으로 산재해 있으면서 우리들의 준법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

  장애인 주차 위반시 단속과 벌금에 대한 규정이 엄연히 만들어졌음에도 필자는 이러한 단속 조항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아직도 상당수의 복지 관련 법률에 나타나 있는 '... 할수 있다.'식의 형식적인 법규정들은 법이란 단지 힘을 가진 자들이 필요할 때 약자를 억압하기 위한 미끼이자 미사어구일뿐이라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지난 가을 우리 시각장애인계는 새로운 법률 조항의 시행으로 인해 크나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안마업에 종사하는 영세한 시각장애인과 이제 갓 졸업한 후배들에게 이번의 사태는 실업이라는 차가운 우리 사회의 고통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금번의 사태가 닥치기 전에 미연에 이를 대비하여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관련 법률과 제도를 완비하지 못한 우리 자신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그와 함께 생색내기식의 장애인 복지와 물량 중심의 획일화된 복지 행정을 일삼는 정부 당국의 안이한 대응과 선진국에 비해 낙후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장애 관련 법률 제도에 대해서도 시급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금번에 제 17대 국회에 진입한 장애인 의원의 탄생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법과 현실의 잘못된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희망을 갖게 하는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하겠으며, 장애인 스스로가 당사자주의에 입각하여 보다 내실있는 법률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법을 지키는 것이 투쟁의 수단이나 강자의 횡포로 전락하는 일이 없이 국민 모두가 이 나라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가장 올바른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기를 바란다.

 

2005년 2월 28일 한맹뉴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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