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점자를 생각하며

tosoony 2005. 4. 8. 00:02

     점자를 생각하며

 

  인간이 소유한 신비한 능력 가운데 우리의 뇌를 자주 거론하곤 한다. 그

가운데서도 뇌를 통해 인간이 기억하고 언어로 다른 사람과 머릿속의 생각을

공유하는 등의 능력에 대해 아직도 많은 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그 비밀의 베일을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뇌의 채 수 십 분의 1도 사용하지 못한 채 생을 다하며, 언어

발달과 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도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문자를 들곤 한다.

  문자는 인간 사회의 사회화와 문화 전승의 수단이며,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자신의

기억력을 보완하고 다른 사람과 명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지난 36년간 일제에 의해 우리의 말과 글을 강압적으로

빼앗긴 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도 한글 점자가 창안되기 전에 이

세상을 앞서 살다 간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루이 브라이유가 세계 최초로 6점식 점자를 발명하고 국내에서도 1926년

박두성 선생님에 의해 한글 점자가 창안된 이후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의 대표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문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점자는 맹인에게 자신감과

독립성 및 동등권을 주며, 점자를 능숙하게 읽고 쓸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모르는 시각장애인들보다 취업률이 높고, 더 높은 자아 존중감을 갖는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각장애인계에는 점자를 무조건 경시하고

외면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전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모르는 소위 문맹자가 95.7%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실제적으로 점자를 학습 내지는 주된 읽고 쓰기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1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주장도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떠한 이유 때문이며, 이를 합리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문제의 원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나라의 시대적 상황 변화에 대한

요인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한글점자가 창안되던 시절부터 지난 70년대 말까지 이 나라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정보를 습득하고 가공하는 수단은 점자가 유일하였으며 80년대 들어 녹음기의

보급에 의한 녹음도서와 라디오 등이 시각장애인 정보접근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출현률에서도 80% 이상을 전맹이 차지하였고 나머지가

저시력 학생이었기에 점자 중심의 교육과 활용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80년대말 컴퓨터가 보급되고 장애인을 위한 재활공학과 보조공학 기기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컴퓨터와 점자프린터기, 음성합성기 등을 통한 정보접근을

선호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경제수준과 의학의 발달로 교육현장에서도 전맹 학생보다

저시력학생의 수가 월등히 높아지면서 점자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에 대해 외면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상 점자에 관한 두가지의 편견에 빠지곤 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점자란 굳이 배우지 않고도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편견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리 인터넷과 첨단공학 기술이 발달되었다 해도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가장 효율적인 읽고 쓰기와 의사소통의 수단은 단연 점자라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여러 연구에 의해서도 입증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곁에 보급되기

시작한 최첨단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들의 입출력 수단으로 공히 점자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우리는 점자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경시 풍조에서 벗어나 우리의 점자를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점자를 바라보는 또 한가지의 관점은 점자는 시각장애인이라 한다면 그

누구나 능숙하게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점자에 서투르거나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시각장애인 특히 저시력인은 곧 불성실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편견이라 하겠다.

  특히 이러한 우려는 교육현장에서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시대적 변화와 공학매체의 발달이 시각장애 학생의 나태함과 점자 활용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키는 악재로 작용하는 점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점자란 그 가치에 비해 처음 실명한 자가 학습하기에는

묵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며, 나이, 인지능력 등의 변인에 따라

학습기간과 촉각 인지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다. 이점을 고려치 않은 채

하나의 잣대만으로 점자능력의 부족에 대한 나태함을 질책할 수는 없다.

  또한 현재의 시력 정도나 질환의 진행성 유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저시력

학생들에게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는 점자중심의 학습매체 활용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그들의 학업 성취도나 학습에 대한 흥미를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

  점자는 분명 시각장애인의 가장 효율적인 읽고 스기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대상에게 쓰여질 때 그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점자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손쉽고 편하게 점자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점자에 대한 규정이

완비되어야 하며, 점자용 필기도구와 점자정보단말기에 대한 보급이 확대되어야

한다. 저시력 학생의 경우, 진행성이거나 기타 중복장애가 없는 한 자신의 시력

정도와 학습내용에 따라 적절한 광학매체를 활용하여 쏟아져 들어오는 활자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들어 한글 점자의 발전을 위한 정부를 비롯한 시각장애인계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전국적으로 한국점자규정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으며, 8월에는 시각장애 현장 교사 중심의 학술단체인 '시각장애

연구회'에서도 금번에 개정되는 점자 규정에 대한 보다 폭넓은 논의와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또한 전자점자기와 같은 디지털 공학매체 활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전자점

자 규정도 제정되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점자를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점자에 대한 소중한 염원과 노력이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은 물론 실생활에서 점자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손쉽게 쓰여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004년 한맹뉴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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