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이 시대 가톨릭 신앙의 수장이자 정신적인 바탕을 이루어 온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 지
난 일요일(4월3일) 마침내 돌아가셨다.
내가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된 것이 1982년. 그 분이 교황님으로 즉위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나는 영세를 받은 이후에도 한동안 교황님의 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었다.
당시 실명과 함께 찾아온 우리 가족의 심적
혼란을 멎게 하고 평화를 가져다 주기 위해 어머니가
선택한 마지막 방법이 가톨릭 신앙으로의 정착이었고, 정말로 당시 우리 가족은 완강하셨던 할머님
을 포함하여 전 가족이 나로 인해 영세를 받는 축복 아닌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이어 내게 다가온 지방 맹학교로의
유학(?) 생활은 나에게 새로운 출발과 함께 전혀 생각
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들었고 그 속에서 내게 가톨릭 신앙은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막연히 힘든 나 자신을 기대야 하는 높은 곳의 엄숙한 존재로만 여겨졌다.
어쩌면 당시 30분을 걸어 찾았던 주일날의 대동
성당과 종교 회합날 몇 안되는 신자 누님과 함께
방에서 외로이 기도했던 그 때야말로 신앙적으로 순수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튼 당시 힘들고 어려웠던 대전에서의
맹학교 시절 가운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그것은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찾게 되었다는 사실과 우리 어머님이 나를 데리고 당시 여의도
광장
에서 있었던 집회에 나를 데려가 주셨다는 것이었다.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녘 엄청난 인파 때문에 서둘러 나서야 했던 그 날의 일들이
아직도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역사책 속에서만 존재했던 박해 시절 순교자들의 신앙의 증거 모습과 그 분들에 대
한 시성식 장면은 나의 마음 속에도 뜨거운 그 무엇을 느끼게 한 것 같다.
어쩌면 평생 유일한 경험이었을 지도 모르는 그 날의
교황님과의 만남 이후 나의 학창시절과 신앙
은 아주 조금이었지만 자라나고 있었다.
그 후 다시는 이 땅에서 그 분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던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교황님은
1989년 가
을 다시 외롭고 힘들었던 이 나라를 찾아오셨다.
대학 1학년이었던 나는 그 때도 용케 교황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지금의
집사람과 함께
그 분이 우리말로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의 교황님의 선종과 장례식에 대해 세간의 관심과 국내의 언론을 통한 보도가 쇄도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낯설은 느낌을 갖곤 한다.
우리나라가 가톨릭 국가도 아니고 어찌 보면 먼 외국의 일개 대통령 정도의 사망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금번의 교황님 선종 소식을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럽게 특집 보도를 매 시간마다 하며 관심을
쏟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그 분이 28년이라는 긴기간동안 교황님 생활을 하고 120개국의
나라를 순방하며 어찌
보면 정치적인 행보를 많이 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또 세계 역사를 돌아보며 고대 가톨릭의 전파와 중세 크리스트교 사회의
발전은 물론 현대 기독교
사상에 미친 바티칸과 교황님의 입지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도 들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다른 생각에 무게를 두고 싶다.
지난 1980년대에 있어 우리나라는 그 어떤 때보다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였다. 80
년을 여는 첫 해 일어난 광주 학살의 피비린내나는 만행과 군부 독재의 폭압, 그리고 입과 귀를 틀
어막았던 언론 통제, 그리고 대학생들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외로운 투쟁들.
아무도 알아줄 것 같지 않았던 동방의 작고 미개한 땅에
외신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교황이
친히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소외되고 고통받아도 아파할 수 조차 없었던 이들을 어루만져주던 그 분의 용기와 행적에 많은 이들이 고맙고
감동받았던 것은 아닐까.
두번이나 방문을 하여 종교에 관계없이 상처받은 이 나라 국민들을 어루만지던 그 분의 몸짓 자체가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한국과 유달리 인연이 많았다'라는 언론의 수식어를 낳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 역시 당시 그 분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맞추고 축복해주시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튼 어쩌면 거품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번의 교황님의 선종과 관련하여 생각하고 싶은 것은 다시는 이 땅에서 교황님의 방문에 눈물짓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를 바라는 그러한 국민은 되지 말자는 것이다.
행복하라고 하는 그 분의 당부가 무슨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오늘이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냉장고 (0) | 2005.08.07 |
---|---|
한 해를 보내며 (0) | 2005.07.04 |
제5공화국을 보지 않는 이유 (0) | 2005.06.22 |
할머니와 설날 (0) | 2005.04.08 |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댓가 (0) | 200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