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의 이해

안내견 공공장소 출입을 둘러싼 논쟁을 대하며

tosoony 2018. 11. 18. 18:22

 

  흰지팡이의 날, 안내견의 식당 출입 거부를 다룬 특집 기사가 시각장애인통신망 넓은마을 게시판에 게시됐다. 기사의 취지는 법률로 보호받고 있는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에 달린 한 시각장애인의 댓글이 논쟁의 불씨가 됐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안내견의 털이 많이 빠지는 시기에는 시각장애인도 다른 정안인을 배려하여 절실한 상황이 아니면 가급적 안내견의 동반을 자제하자’라는 것이다.
  이에 안내견 파트너 K 씨는 ‘같은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객관적 상황 인식에 대한 공감대와 배려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해당 댓글에 강한 어조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배려심을 갖춘 장애인이 됩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 한마디가 왜 논란의 중심이 되고 말았을까? 당사자 공간에서 일어난 논쟁이라 더욱 아이러니하다.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소수의 의견과 행동은 때로는 같은 처지의 절대 다수에게 불편을 촉발하는 속성을 지닌다. 사회적 변화에 따른 권리의 주장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환경의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의 경향성 때문이다. 사회적 변화에 따른 모든 패러다임의 이동은 기존 질서와 반드시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서 ‘남성을 설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같은 여성을 납득시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령 남편이 가정에서 일하고, 아내가 경제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가장 쌍수를 들고 반대할 사람은 누구겠는가! 바로 남성의 어머니다. 가사 일을 누가 하든 돈을 누가 벌든 어머니 입장에서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가정 일을 돌보는 것 자체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의식에 뿌리 깊이 박힌 고정 성역할에 기인하여, 아들이 사회적 지위를 거세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사에 해방된 며느리의 행복을 축하하기 이전에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강력한 부정의 감정과 마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는 안정적 사회를 바라는 사람의 심리에는 소수의 권리 주장에 의해 침해받을 기존 질서의 파괴에 대한 부담이 깔려 있다. 하지만 사회적 패러다임은 항상 소수에 의해 선도되었다. 다수는 이런 패러다임에 저항하다가 어느 순간 편입되기 마련이다. 이런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이 논쟁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 중의 하나라 하겠다.
  물론 권리를 오용하여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파렴치한 개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양심 또는 범죄적 관점에서 문제시할 내용이다.
  여전히 소수의 안내견 파트너는 같은 시각장애인 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맹학교나 복지관 등에서 오히려 안내견의 활동을 거절당한 파트너의 사례는 그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은 주제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전체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무례함 또는 제도적 미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은 매우 건강한 일이다. 하지만 소수의 정당한 권리에 대한 집단 폭력적 성향이 내포된 논리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 2018년 11월 15일 점자새소식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