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착한 마트, 착한 사람들

tosoony 2012. 7. 7. 23:57

직장 생활에 쫓겨 지내다 보면 원하던 시장도 가기 어려워지고, 몸도 마음도 게을러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대형 마트야말로 이런 현대인에게는 아주 요긴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다보면 웬지 고도의 심리적 상술에 홀려 영락없이 꼬임에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어 불쾌해해지기까지 합니다.

- 매장으로 들어서자마자 구내 방송이 흘러 나옵니다.
"011 016 019 기존 쓰던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신 갤xx 효도폰을 '무료'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미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휴대폰에서 무료라는 게 기계값만, 그것도 제한적으로 최대 요금제를 사용할 경우에 한해서만 명시적으로 무료라고 청구서에 쓰여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매장은 교묘하게도 이를 잘 모를 것 같은 나이 든 노인용 폰을 지정해서 그것도 '기계값만'이라는 용어도 버리고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낙시질을 해댑니다.

- 오늘도 어김없이 치약 하나 더, 샴프 1 + 1 이라는 광고가 눈에 띕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이 포장만 똑같지 내용물을 열어보면 이전까지 사용해 온 튜브 싸이즈보다 교묘하게 작아진 것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하지요..

- 아내는 아무리 주의를 줘도 이리저리 다니면서 눈에 띄는 새로운 물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어머~~ 어릴 적 먹던 쫀득이네."
"자주 보기 어렵다던 프렌치 로스팅 분말커피가 다 있네"
역시 오늘도 기대하지 않았던 물건들이 하나 둘 카트 위에 얹어집니다.~~ㅠㅠ

-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산을 위해 길게 늘어선 주말 카트 행렬들, 그러한 눈앞의 계산대 좌우로 아이스크림 냉장고와 껌, 음료수 진열대가 늘어서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역시나 따라온 아들 녀석은 아이스크림통 앞에서 떨어지지 않고, 잠시 후 우리 가족은 모두 한 개씩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습니다.

- 계산대 위에 수북히 올려놓은 물건들의 바코드를 찍으면서 직원이 습관처럼 말합니다.
"포인트 카드나 ok케쉬백 주세요"
아내는 주섬주섬 지갑 속을 뒤져 갖가지 포인트 카드 중에 한 장을 꺼내 적립을 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물건값의 0.1%, 다시 말해 10만원어치를 사봐야 100원씩 쌓이는 실속없는 포인트, 결국 바가지를 쓰고 사도 무언가 아꼈다라는 위안을 느끼도록 만드는 심리 상술의 절정입니다.

- 겨우 넋이 나간 듯한 대혼란에서 벗어나 잠시 숨좀 돌리고 가려 해 보지만 이 넓은 매장 공간 중에 아무런 눈치 없이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으지 하나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찾아낸 화장실 앞 간이 의자에 한숨을 쉬며 엉덩이를 붙여 봅니다.
이 넓은 매장에 의자와 창문 구경하기가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대부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돈을 쓰고서도 그 점에 대한 개선 요구나 이의 제기는 잊은 것 같습니다.

-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또다시 방송을 통해 마트의 광고 로고송이 흘러 나옵니다.
"착한~~ 홈xxx~~"
이런 행태가 바로 '착한'  행동이라는 걸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주입을 받게 되고,
이 순간 우리들은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착하게'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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