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비둘기와 태풍

tosoony 2012. 8. 30. 00:34

일찍 다가선 7월 무더위 속에서 비둘기의 독립 준비는 하루가 다르게 부산해져만 간다.
실외기와 창문벽 사이를 푸드덕거리며 올라서기 연습에 여념이 없다가도 애미가 먹이를 물고 나타나기만 하면 시끄러울 정도로 짹짹거리기 시작한다.
이젠 아예 날 무시하기라도 하는건지 방안에서 헛기침을 하거나 박수를 쳐 보아도 창밖에서는 지들끼리 먹이 쟁탈전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제7호 태풍 카눈이 몰려 왔다.
부서질 것 같이 흔들어대는 바람과 함께 몰려 온 태풍의 기세에 습한 저녁 내 창을 열어 둘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드는 생각은, 이런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조류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미연에 대피하는지 궁금해졌다.
하긴 엄청난 에어컨 실외기 소음과 인간의 위협에도 끄덕없는 녀석들인데 당근 잘 지내겠지 하는 생각에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조용해진 바깥을 느끼며 창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문제의 녀석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금 아이를 데려다 창문 턱 주변을 둘러보게 해도 그놈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둥지로 쓰였던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나뭇가지와 배설물의 잔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이놈들이 떠났구나~~
나름 기다렸던 결과에 잘됐다라는 반가움이 들었다.
아내도 이제야 비로소 대청소를 할 때가 왔다면서 조금씩 흩뿌리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임시 비둘기의 거처를 물로 씻어냈다.
"설마 태풍에 죽기야 했겠어요~~ 미연에 알고 다른 안전한 곳으로 각자 떠나갔겠지요.."
반색하며 청소에 여념이 없는 아내가 무심히 말을 했다.
그럼에도  잠깐이나마 아쉬운 생각이 든 것은 왜인지~~
무단 주거침입에 공짜 전세를 산 놈들이긴 했지만 한 달 가까이 서로를 관찰하며 더부살이를 한 녀석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며칠 후 딸아이가 집에 들어서며 말한다.
아파트 앞 산책로 나무위에 어린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것을 봤다며 그놈들이 우리 집에서 동거한 놈들일지 모른다나..
딸아이도 작지만 가버린 비둘기가 떠오른 것이었을까.
  아무튼간에 이왕이면 독립을 잘해서 잘 먹고 잘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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