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짜장면 이야기

tosoony 2012. 5. 2. 21:20

뒷정리를 하고 느긋하게 혼자 현관을 나서는데 비가 뿌린다.

전혀 생각지 않은 빗방울, 그냥 걸어가기엔 무리라 멀지도 않은 집을 놔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미 금요일 저녁, 학교는 텅 빈 것 같고, 결국 호출택시를 불러 보기로 했다.

예전 제법 집이 멀 때는 미련없이 전화를 걸 수 있었지만 기본요금 거리에 택시를 불렀다가 투덜거리는 기사를 몇 차례 경험하고는 쉽게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모르는 척하고 얼마 더 줘야지 뭐 어쩌겠어~~

뜻밖에 전화를 끊자마자 금방 답문자가 왔다.

학교 옆 홈플러스 앞에 있다가 연락받고 왔다나~~

차에 오르면서 가까운 거리에 불러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했다.

기사님이 그런 게 어딨냐며 당연하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킨다.

모든게 다 복골복이라며 이것 저것 말도 걸고 내리는 집 앞에서도 비오는 길임에도 같이 내려 안내를 해주겠단다.

괜찮다며 그냥 내리며 결국 요금보다 천원을 더 드리는 것으로 내 감사함을 표하며 내릴 수 있었다..


오래 전 지금과 다른 아파트에서 살 때였다.

아이도 없던 신혼 시절 아내는 직장일로 자주 늦게 퇴근하곤 했는데, 별반 혼자서 저녁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던 탓에 동네 배달음식점을 애용했다.

하루는 집 문에 새로이 붙은 중금음식 전화번호 전단을 보고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했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 왈, 한숨부터 쉬더니 한 그릇 갖고 주문은 어렵단다.

사실 외식 음식을 시키는 경우라는게 가족이 있거나 여럿이 있을 때보다 혼자서 갑작스레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 생각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혼자 먹는데 이것 저것 더 시킬 수도 없고, 꼭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값비싼 다른 음식을 시킬 도리도 없는 게 아니겠는가~~

어이없어 하며 전화를 끊고 114를 통해 진땀빼며 결국 낯선 다른 중국음식 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나도 기가 죽어 "짜장면 한 그릇 배달되나요?~~"라고 물었다.

뜻밖에 당연하다는 듯 물론이라고 하더니, 오래 걸리지도 않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배달을 나온 사람은 숱기 없이 착해 보이는 30대 주인 남자로, 개업한 지 얼마 안되었다고 했다.

xxx 중국음식점과의 인연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그날 부터 나는 집에서 찾아온 손님 식사를 대접하거나 가족끼리 밥해 먹기 싫을 때면 무조건 중국음식을 배달시켰다. 물론 그 땐 짜장면이 아니라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여러 비싼 음식을 고루 시키려 애썼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나 근처에 이사온 동료들에게도 모두 그 음식점을 추천했던 것 같다.

"그 집하고 무슨 아는 사이인거야?"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묻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식솜씨가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장사도 그리 잘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그 집을 나는 더 안타까워하며 시키고 싶었다.

아내도 성실해 보이는 아저씨 얼굴을 보고 난 후부터는 나보다도 더 열심히 애용을 했다.

음식점 주인은 우리 부부의 그러한 배려에 너무 감사해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사는지역으로 이사를 한 뒤에야 그 분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어쩌다 시키는 나같은 사람 하나의 노력이 무슨 매상에 도움이 되었을까..

하지만 첫 날 내게 베풀어 준 작은 친절이 아니었다면 나와의 만남도, 그 분의 성실함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비오는 오늘같은 밤이면 웬지 야식이 생각난다...

그나저나 어디다 시킨다지~~ ㅎㅎ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