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인구절반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산다고 합니다.
면적이 전국토면적에서얼마인지는 몰라도 인구로만 보면 두명중 한명꼴로 수도권에 사는 셈이지요.
그래서 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은 여론의 중심에 있는것이 자연스럽고 실제로 현대통령이 이러한 단계를 거쳤지요.
한국인이 급격히 보수화되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또 돌아보면 언제 한국인이 진보쪽으로 간 적이 있는가 갸우뚱해지기도합니다.
4.19와 5.18과 6.10을 말하지만 그 사건을 관통하는 흐름은 방어적 저항의 몸짓이었지, 적극적 변혁의 몸짓이라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이 승만독재에 눌려있다 3.15부정선거로 촉발되었지만 어떤 지향점이 있는가를 더듬으면 너무 막연한 민주주의라는 거였지, 구체적 합의점이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민중항쟁의 특성상 그러한 지향점을 갖는 것이 힘든 일이긴 하지만 제가 말슴드리고싶은 것은 결국 그러한 지향점의부재가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광주항쟁이 위대한 저항이기는 하지만 역시 자위권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87년 6월항쟁으로오면 아예 지도부가 일반대중에게 업혀가는 모습을 보이다가 급기야 촛불로 오면 지도부가 부정당하기도 합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은 역시 대한민국이 갖고있는 분단에서 풀아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문제는 분단을 빼고 말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유학, 외국진출, 결혼 이민 망명....
분단은 단순히 영토북쪽에 호전적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머물지 않습니다.
바다건너에도 두번씩이나 쳐들어왔던 사람들이 있다는 기억이 알게모르게 우리 의식과 행동을 짓누른다는 사실이 반증입니다.
지금도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국토종단이 멈추는 곳은 항상 휴전선 어디쯤입니다.
더 정확히 민간인출입통제선이겠지요. 민통선이라 줄여 말하는.
우리영토를 말하는 한반도는 대륙으로 연결되었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남한은 반도국가에 살고 있는것이 맞을까요?
고립입니다. 섬이됩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장애입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 비로서 인식을 하거나, 중도장애를 갖게되면 처음에 해야할 일이 장애를 인정하는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장애를 끌어안고 살아야 합니다.
보고 싶어도 못봅니다.
음성으로 손끝으로 정보를 얻습니다.
단순 정보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이동하는 것 ...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부터 위협받습니다.
분단도이런 한계와 절망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다른것이있다면 장애는 떨쳐버리기 힘들지만 분단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떨쳐버릴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리적 한계뿐 아니라 심리적 한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외국에서 가장 무서움을 느낄 때가 북한사투리를 듣는 순간이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접촉한 사실을 대사관에 알려야하는게 아닌가 공포에 빠지는 거지요.
왜 만났냐? 무엇을 의논했냐? 는 의심 앞에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공권력은 당신의 무죄를 입증해라고 고문을 가했지요.
유독 일본과 독일에서 간첩단사건이 많았던 사실을 주목하면 더 가슴아플 뿐입니다.
간첩이란 사실은 국가가 입증하고 개인은 무죄추정이 되어야함에도 거꾸로합니다.
모두가 분단을 악용한 분단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악행입니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 어떻게 될까요?
장애를 갖고 극복해보려 장애를 받아들이려 길거리로 나섰다가, 유도블럭끝에서 볼라드말뚝을 만나는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분단은 휴전선으로 불리우는 지역에만 있지 않습니다.
휴전선이 분단이라면 그 철책을 끊어버림으로 분단을 없앨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려주면 없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가슴속에 있는 그 무언가는 어찌 하여야 하나요?
문제는 다시 사람으로 오게됩니다.
어찌 살것이고, 무엇을 하며 살것이고, 어떻게 살것인지 등등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누구를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게 해결책이 될수 없음을 한국교회가 보여줍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구원자라하더라도 예수를 헛되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구원이 아님을 한국교회는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를 믿는것을 넘어 예수가 누구이고 어찌 본받고 지금은 그 예수정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교회환자가 됨을 증거합니다.
요즘 학생들 급식을 둘러싼 다툼을 목도합니다.
아이들 밥상에까지 빨간 페인트를 칠해야 할까요?
전 군대에서 부자집 병사라는 이유로 군복이나 총을 스스로 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국가가 명령한 의무이니까요.
자기 돈으로 총사서 휴전선 지키라고 하면 과연 몇명이나 국방의무를 무사히 마칠수 있을까요?
사격연습은 제대로 할수는 있을까요?
공군조종사는 전투기를 사야 하는 것인가요?
해군은 무엇을 사야지요?
아이들이 제비처럼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맛나게 먹는 장면을 접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 아이들이 먹고싶다는 갈비집앞을 서둘러 벗어나신 적은 없으신가요?
혹 아이들이 사달라는 천원짜리 핫도그 앞에서 내 주머니를 가늠해보신적이 없으신가요?
혹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몰려와 라면먹겠다고 하는데 너네 아버지는얼마나 버냐는 질문으로 계란을 넣고 않넣고를 결정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정말 가슴아픕니다.
아이들 무상급식은 아버지가 부자냐, 아니냐가 논점이 아닙니다.
왜 부자집 아이들도 공짜점심을 먹이느냐는 어찌 해결해야 할까요?
정말 공짜 점심이라 자존심이 상했다면 무언가 잘못된것이라 생각한다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것은 어떨까요?
올 해 모금액이 작년 십분의 일도 않된다는 뉴스가 벌써 세 번째 나오고 있거든요.
아이들 무상급식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할 의무중 하나를 더 늘렸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해야 풀리는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능력에 맡겨버릴 것인지, 국가가 개입하여 보호할것인지 정해야할 때입니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의사들이 돈 많은 병원으로 몰리겠지요.
의사에게 돈을 많이 주려면 당연 환자에게서 많은 진료비를 받아내야 합니다.
당신은 정말 그런 세상에서 사실 자신이 있나요?
지금도 유명의사에겐 특진비라하여 돈이 더 들어갑니다.
손에 꼽히는 유명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가치는 돈입니다.
대선때 경쟁적으로 닮고자 했던 나라가 사회 민주주의 국가들이었지요.
이들에게 세금폭탄이란 소리는 없습니다.
이들나라에서 부자는 당연히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그 세금으로 모두가 같이 사는 세상에 그들은 합의한 모양입니다.
그들은이런 일을 포플리즘이라고 하지 않는 모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하고, 아프고, 죽습니다.
이런점에선 평등합니다.
이런 부분에 치사하게 돈을 들이대지는 맙시다.
누구나 아프면 그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 고통만으로도 개인이나 가정은 벅찹니다.
경제적 부담은 국가가 짊어지도록 합의합시다.
이런 세상이래야 조금이라도 장애가 덜 무거워집니다.
무상급식은 단순히 밥값을 받느냐 내느냐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거대담론의 시작이고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 정말 충분히 부자이신가요?
- 넓은마을에서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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