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나를 지켜주는 인권 당신을 지켜주는 인권

tosoony 2010. 6. 30. 15:27

삼청교육대를 아십니까?

80년 신군부가 쿠테타로 집권하며 사회정화란 이름으로 자행한 인권 탄압 사례입니다.

길가다 끌려갔고, 술먹고 지나가다 끌려갔습니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군대였고 온갖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있었죠.

감금 폭행 구타 고문...

장안의 화제를 뿌렸던 드라마 모래시계에도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아레 제가 올린 화학적 거세란 글에 보인 반응대로라면 이 삼청교육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로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상당수고요,

국가의 이름으로 법이란 이름으로 집행되었으니까요.

국가와 법률이 얼마나 폭력적일수 있는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더 거슬러 가면 유신이란 괴물이 나타나고 유신은 비상조치란 태어나선 않되는 자식을 낳습니다.

재판도 필요없습니다.

치마길이도 자로 재버립니다.

정치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을 금지시켜 버립니다.

이 모든것을 행하며 내걸었던 주장은 잘살기위해서였고 경제발전이었으며 북괴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무수한 젊은이와 양식있는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런 정책을 집행한 최고책임자의 최후도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총성과 함께 막을 내린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이 앞서 거론한 삼청교육대를 저지릅니다.

그 역시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지만 군선배여서 그런지 착실하게 아주 착실하게 전임자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광주가 학살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정말 많은 사건들이 사회면과 정치면을 장식했습니다.

부천에서는 성고문이 있었고, 남영동에선 물고문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도 녹화사업이란 이름으로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있었죠.

올림픽때 장애인과 구걸하는 사람은 모두 어찌 되었는지 기억들 하실 것입니다.

걸인이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장애인없는 사회도 없고요.

그런데 우리의 인권지수는 이러한 사람들의 감금에 눈감아 버립니다.

나라체면이 깍인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말이죠.

그럼 저 사람들 어찌 살아가야할까요?

그나마 인권을 주장하는 역겨운 사람들이라도 있어 버틴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란것 사실 따지고 보면 별다른 특별한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장애인 당사자인 내가 걸어가고 생활하는데 위협을 막아달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수용시켜버리면 된다는 발상은 거부해야 겠지요.

같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아이를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예쁘다고 꽃으로 장난삼아 때렸을지 모르지만 꽃이 몽둥이가 됩니다.

꽃으로 맞는것에 익숙해지면 몽둥이로 맞는것에도 익숙해집니다.

겨자씨만한 크기가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이런 사실을 포함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중범죄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그들을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다루다보면, 그범죄의 양태가 점점 내려올 것입니다.

경범죄자까지 그런 형태로 다루려 하겠지요.

그러다보면 범죄자 아닌 일반국민에게까지 그 생각구조가 적용됩니다.

그래서 역겨워도 범죄자의 인권을 지켜주어야하는것이라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막아버리면 더이상 진행을 막거나 더디게 할 수 있죠.

박정희가 총들고 한강다리 건널때 유신이란 공포시대를 예감하고 치마길이까지 재는 그런 세상을 예상했을까요?

그도 열혈청년으로 한강다리를 건넜을 것입니다.

전두환도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할때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했을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날줄 알았다고 했다지요.

하지만 부천서, 남영동, 삼청동이 줄줄이 나타났습니다.

경찰서에서의 고문이 부활되었다는 뉴스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인권이 역겹다고 고개돌리는 순간 언제든 국가의 폭력은 부활합니다.

범행자백과 공범내지 여죄추궁으로 고문을 묵인하는 순간 누구라도 고문에서 자유롭지 않게됩니다.

그렇게 염려하는 우리의 자식들이 그런 고문에 노출됩니다.

억지논리라거나 확대해석이라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가 뚜렷이 보여주는 증거는 경고에 눈뜨라 말합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신앙에만 존재하는 경구가 아닙니다.

바늘도둑 소도둑된다는 말씀을 남기신 조상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제가 인권의식이 투철해서도 아닙니다.

전 겁이 많기에 그런 일이 두렵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언제든 누구든 무엇이든 자행할 명분을 얻을 테니까요.

국가와 민족이 명예와 돈으로 환치되는것은 시간 문제겠지요.

그리고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명분을 만들고 공포정치를 해나가겠지요.

그 공포정치에 맞서는 힘중 하나가 역겨워 하시는 인권입니다.

그 인권이란 이름으로 국제적 지지도 이끌어 냅니다.

인권이 없다면 복지는 동정에 머무릅니다.

동정은 시혜자의 눈치를 보아야합니다.

인권이 개입하면 복지는 정당한 권리가 됩니다.

정당한 권리는 눈치의 대상이 아니라 행사할 권한을 부여합니다.

화학적 거세를 살펴보면 본인의 의사에 따른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권을 의식한 구절이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선택권은 성과를 묻는 누군가의 관심대상이 되는 순간 바로 묻혀져 버립니다.

더 지켜보아야겠지요.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어보았습니다.

 

- 넓은마을에서 강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