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순이의 세상 견문록

공짜 복권으로 제주도 여행 다녀온 사연 3

tosoony 2010. 1. 22. 01:29

 

  평일날, 그것도 이른 아침 지방 공항은 그야말로 한산함 그 자체였습니다.

간단히 티케팅과 수화물을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지요.

항공사 직원은 제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다가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시라며 저를 이끌어 잠시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비행기 내에서도 앞쪽에 자리를 배치해 주더군요.. 우리나라 장애인에 대한 항공 서비스 아주 좋았습니다~~ ㅋㅋ)

비행기가 지상을 떠나 있는 시간이 고작 45분, 상승과 하강을 빼면 겨우 15분.

그 짧은 시간 동안 기내 스튜어디스들은 그야말로 민첩하게  쥬스와 커피를 나르고 빈 컵들을 수거해 갔습니다.

제주의 아침 날씨는 생각보다 덜 추운 듯했습니다.하긴 그 며칠 사이 엄청난 한파와 폭설로 육지는 말이 아니다보니 잠시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죠.

 전날 문자로 배달된 공항 주차장 번호와 렌터카 이름을 확인하고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 조그만 버스를 개조해 만든 땡땡땡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 좁은 안으로 들어가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미 차는 아반떼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죠.

담당자는 몇 명이 운전을 할 것인지를 물었고, 제 아내가 혼자 운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자꾸 저를 쳐다보며 혼자 운전한다고 하다가 다른 사람이 운전해서 사고나면 큰 문제가 된다며 자꾸만 확인을 하더군요..

결국 제가 말했습니다.

"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자 그 당황한 아저씨, 이번엔 자차보험을 낼 것인지를 묻더군요.

아저씨 왈, 운전에 자신이 있으시면 그냥 안내고 타셔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그게 꼭 내라는 말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제주 정도야 날도 춥지 않고 눈도 잘 안오는데 그냥 타지 뭐~~"

그 때 아내가 무안하게 그러더군요.

"지금 밖에 눈오거든요."

결국 자차보험료 3만 6천원을 추가로 내고서야 렌터카를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 차나 마찬가지라는 호언장담을 듣고 올라탄 차에 앉자마자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차에 타면 항상 즐겨듣는 음악을 듣곤 했거든요.

며칠 전부터 미리 챙겨 둔 mp3 음악 cd를 집어넣는 순간 'error'이라는 험악한 액정에 메시지가 떴습니다.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나중엔 뒤집어까지 넣어보았지만 그 놈의 플레이어는 계속 제 cd를 뱉어 냈습니다.

 새 차라며 건네준 그 차의 cd 플레이어는 오디오 cd만 되는 놈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새 차라미, 이게 뭐여~~'

마치 단무지가 빠진 김밥을 씹은 느낌이었습니다.

제주의 장관 사이를 달리며 멋진 음악을 들으리라던 기대 하나가 깨어졌고, 우리 부부는 2박 3일 내내 j***인가 뭔가 하는 잘 나오지도 않는 지방 방송의 트로트 음악만을 들으며 힘겹게(?) 운전을 해야 했습니다..

 

첫 날 여행 코스는 '우도'로 잡았습니다.

'1박 2일' 프로에 등장해유명해진 섬 중의 섬이라는 우도를 가기로 한 이유는 매스컴 때문만은 아니었구요, 아이들 교육이나 실제 관광보다 우리 부부끼리 조용한 곳에서 멋진 정취를 느끼며 산책이나 하리라는 맘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네비의 지시를 따라 가는 동안 날씨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다 말다 한 눈발이 심한 바람과 함께 흩날리더니 하늘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1시간 가까이 달려 마침내 성산항 선착장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마친다는 음성 안내를 들으며 멈춰선 주차장은 완전 텅 비어 있었습니다.

겨울이라 아무래도 날이 추워 사람들이 잘 안나다닐꺼라는 위안섞인 멘트를 날리며 뛰어 들어간 대합실에서는 대형 LCD TV만이 혼자 떠들고 있었고, 기상 상황으로 인해 배 운항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씁니다.

어이없었습니다.

다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았다는건가?

어쩐지 아무도 없더라니...

그제야 선착장 연락처나 배운항 일정 등을 꼼꼼히 보지 않고 계획을 잡은 것이 후회가 됐습니다..

날라갈 것 같은 바람을 헤치고 다시 차로 달려가는 저희들 뒤로 대합실 옆 음식점 아줌마가 속도 모르고 밥이나 먹고 가라며 뒤에서 소리치면서 자꾸 화를 돋구었습니다... ㅎㅎ~~

그제서야 차속에서 아내와 저는 지도를 펼쳐놓고 이제부터 어디를 갈 것인지를 따져 보았습니다.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곳은 모두 다 이럴 것이라는 생각에 신영 영화 박물관으로 가기로 했죠..

신영 영화 박물관은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지인들로부터 기증받은 각종 영화 장비와 우리나라 영화 발달사를 재미있게 구성해 꾸며놓은 곳이었습니다.

오래 된 영사기와 필름, 이런 저런 장비를 만져보고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틀어지는 여러 비디오 자료를 보며 뒤로 이어진 야외 장소로 나갔습니다.

'킁엉 해양 경승지'라고 안내되어 있는 곳으로 바다와 이어진 절벽과 기기묘묘한 바위 위에 벤치와 전망대, 조경이 어우러진 산책 코스 등을 만들어 둔 곳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런 곳이 다 있냐며 경치가 너무 멋지다고 탄성을 연발했습니다.

저야 당근 아내가 멋지다고 하면 저도 멋진 거죠.. ㅋㅋ

 중요한 것은 언제 눈발과 바람이 몰아쳤냐는 듯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 비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금 우도에 대한 미련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줌씨 말대로 밥만 먹고 기다렸드라면...'

한참 동안을 남도의 여유를 즐긴 우리는 그제서야 시장함을 느끼고 서귀포 중문 단지 안으로 들어가 해물 전골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주상절리라는 지리 교과서에 나오는 곳을 둘러보고 여행사가 제주시에 예약해 둔 문제의 특급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어서 계속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