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20년의 인연과 세월을 감사하며

tosoony 2009. 9. 6. 01:22

  대전역에서 ‘대전역 0시’ 축제가 있다는 뉴스를 보고 방학중이니 아이들도 지루해하고 해서 금요일 오후 학원 시간에 쪼들려 맘부터 바쁜 큰아이까지 데리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뜨거운 늦여름의 햇살속에서 장터를 연상케하는 이벤트 코너들을 보니 어릴적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며 미소가 번졌다.

그냥 저냥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아보고서 큰 딸아이를 학원에 보내놓고 막 집에 들어서는데, 대학 시절 여자 서클 동창으로부터 아버님의 부고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 몸이 편찮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기어코 여름을 못 넘기고 가셨다는 말에 우리 내외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허겁지겁 기차 시간 예약을 알아보고 채 30분여밖에 머물지 못할 조문을 하러 대전역으로 되돌아갔다.

KTX라는 문명의 이기 덕에 그 짧은 시간의 조문이 가능했으니 참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은 우리 부부의 방문에 친구는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다시 장례식장을 나섰다.

밤 10 5분 막차에 올라 대전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이 복잡했다.


1989년 대학에 들어가 서클을 만들고 대학 내 여러 과에 흩어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지낸지 어언 20년이 되었다.

  대학 4년 동안 공부도 별로 한 것 같지 않고 내내 서클실과 학교 잔디밭, 두류공원, 또 이런 저런 MT 장을 돌아다니며 웃고 울며 보냈던 그 시간들.

‘등대’라는 계모임을 만들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모임이 지속되리라고는 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었다.

중, 고등학교 동창회도 채 한 두 번 밖에 얼굴을 대한 기억이 없는데 세월이라는 무게에 눌려 자연스럽게 잊혀지겠지 하는 생각속에 지나온 우리의 모임이 얼마 전 8월 21일 경주에서 20번째 모임을 마쳤다.

그 사이 샤프하고 솜털이 보송했던 피부는 목과 얼굴에 작은 주름을 만들었고, 뱃고래가 왜 그리도 없냐며 핀잔까지 들었던 배에는 어느덧 세월이라는 무게감이 두루뭉실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10명 남짓했던 창단 계모임 회원은 이제 부부마다 딸린 두 아이들이 모여 20여명의 대부대 모임으로 커져 있었고, 모임 장소도 아이들의 놀거리가 있는지가 최 우선이 되고 말았다.

93년이던가, 울산에서 여름 계모임을 가졌을 때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이 있었다.

피서지를 지나가는데 중년의 단체 가족여행객들이 모여 앉아 아이들은 근처를 뛰어다니며 먹을 것을 먹고 아빠들은 런닝 차림으로 고스톱에 열광하는 광경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이 되어 있겠지.. 하며 읊었던 그 모습 그대로가 지금의 우리들이 되었다.

사회로 흩어지고 나서 정기 모임 이외의 우리들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는 늘상 결혼이었다.

     그 첫 스타트는 졸업하던 93년 5월 8일 등대 서클에서 만난 나와 아내가 차지했고, 당시 서울의 모 성당에서 있었던 결혼식에는 우리 둘의 결혼을 궁금해하고 신기해했던 동기, 후배들이 떼걸지로(?) 몰려와 이동 뷔폐 식사가 바닥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줄줄이 결혼을 하고 이내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면서 어느새 우리들도 직장에서 속칭 한참 때라는 물이 올라 있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전부터 우리 모임에도 하나 둘 각자 부모의 부고 소식으로 모습이 바뀌고 있다..

그 사이 우리들의 나이도 불혹이라는 이름표가 하나 둘 붙었다.


그런 것이리라..

누구에게나 세상은 공평하고 한결같다는 것을.

그 단순한 진리를 잊고 부질없이 애태우다가 느끼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제 와서야 되돌아보게 되니 세상은 죽을때까지 늘 배우게 되는 가 보다. 

올해 초부터 20년이라는 우리 부부의 만남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여러 가지 이벤트를 궁리해왔다.

그 처음 행사가 지난 1월 중국 가족여행이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방학에는 막내 아들까지 포함시켜 다시 2박 3일 제주도 가족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

녀석들은 고급 호텔과 맛나고 신기한 음식과 관광지 모습에 그저 좋아만 했지만 내가 느끼는 올해는 참 하루 하루가 마음에 담고만 싶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이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분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또 다른 10년을 위해 오늘의 내 자신을 추스르며 이 하루를 접는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