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생활속 숨어있는 점자 얼마나 아시나요?

tosoony 2009. 10. 6. 01:33

언젠가부터 집 근처 슈퍼에 들르거나 새로 사온 식료품을 꺼낼 때마다 하는 작은 일이 있습니다.

하도 요즘엔 과자나 플라스틱 용기 디자인이 다양하고 아이디어틱해서 그걸 손끝으로 확인하는 것도 나름 큰 흥밋거리인데다 간혹은 주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뚜껑 여는 법을 몰라 촌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이렇게나 과대 포장(?)을 하는 나라에서 과연 나중에 이 복잡한 폐기물은 대체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작은 걱정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작은 탐색 중에 월척(?)처럼 발견하는 놀라움이 하나 있다는 걸 일반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요?

그건 바로 다름아닌 용기 한켠에 붙어있는 점자 표시입니다.

그저 가족이나 다른 직장 동료와 함께 매장에 들러 비닐봉지에 담겨지는 평범한 일상용품에 숨어있는 점자, 그걸 발견할 때의 작은 기쁨은 무수한 모래알 속에서 뜻밖의 보석을 찾아낸 느낌이랄까요, 밋밋하기만 했던 낯선 물건이 나만을 위해 특별히 선사하는 인사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물론 일부 용기의 점자는 그 태생이오래된 것들도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맥주캔 상부에 붙어있는 ‘맥주’라는 점자 표시는 이미 많이들 아실 것 같구요.

한동안 초기 모델인 르노삼성의 sm5 내장 손잡이, 도어핸들 등에 나란히 솟아있는 고무 재질의 점자 안내표시 등은 유명하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익숙한 상품말고도 요소 요소 숨어있는 점자가 우리 곁에 참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참이슬을 비롯한 진로의 유리병 옆면에 금영상태에서 제작된 ‘진로’라는 두 글자의 점자는 그렇게나 회식 자리에서 연신 술병을 기울이면서도 얼마 전에야 찾아냈습니다.

또 술얘기입니다만 맥주캔 중의 하나인 ‘카스’에 붙어있는 ‘카스’라는 점자도 잘 만져지구요.

얼마 전에는 집안의 주방 한켠에 오래 되어 먼지가 얹여진 주방용 호일 종이박스 표면에도 흐릿하나마 점자 상표가 버젓이 있다는 걸 우리 딸래미가 찾아내 들고 오더군요.

욕실에서 아내와 딸아이가 같이 사용한다는 유명 샴프인 ‘미장셴’ 좌우에도 자사 상표가 점자로 돌출되어 있다는 것도 숨은그림찾기인양 딸아이는 환호를 지르며 찾아냈습니다. 

그밖에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판매하는 일부 연고나 종합감기약 등의 종이 상자 표면에서도 간혹 무게에 눌려 지워져가는 점자 상표를 본 기억도 나고, 선풍기의 누르는 버튼 위치를 알리기 위해 말소표(6점의 점자 모두를 돌출시키는 것)표시를 해둔 가전제품도 본 듯 합니다.


이처럼 장애인을 위한 배려와, 더불어 사는 기업의 사회참여 활동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습니다.

자사의 포장에 남들이 알아주지도, 해석되지도 않는 기호를 삽입하기 위해 금영 주물을 바꾸고 디자인비를 추가 지출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기술적인 문제로 더 양질의 점자를 추가하지 못한다는 것도 다양한 제품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구요.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다양한 소비자의 만족을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많은이들에게 긍정적인 부가 이미지를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부터도 이왕이면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 점자가 부착된 물건으로 고르려 하니까요.

그밖에도특정 제품 즉, 중요 의약품이나 먹는 생활용품 중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물품에 점자 표기를 한다는 건 또 다른 면에서 장애인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소중한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의 경우도 예전에 상처에 바르는 ‘후xx' 연고를 구내염 치료를 위해 혀 끝에 바르는 ’오xxx'연고로 잘못 알고 열심히(?) 발랐다가 한동안 내 몸에 이상이 없을지 고민하며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ㅋㅋ~~


한편 점자를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당사자로서 가끔은 웃지 못할 일도 경험하곤 한다는 것도 밝혀야겠군요.

우선 오자 문제인데요.

최근에 알게 된 ‘미장셴’이라는 샴프에 붙어있는 좌우의 점자는 방향이 서로 정반대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가령 좌측 표면에 만져지는 점자는 정상적으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점자명이 나열되어 있는데, 반대편으로 돌려보면 어이없게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글자가 씌어져 있다는 거죠.

이 사실을 저도 딸아이이 앞에서 한참을 씨름해서야 알았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점자 역시 일반 글자처럼 왼쪽에서 우측으로 나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분들은 좌우가 헛갈리는 것인지 의아해하다가 결국은 상품의 디자이너가 좌우 점자의 시각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쪽을 바꾸어 표시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즉 디자이너는 점자의 원리는 전혀 모른 체 시각적으로 볼 때 돌출 모양의 좌우 균형만을 생각해 의도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죠.

거기에 더한 것은 보통 상품에 점자를 표시할 때는 해당 점자만을 돌출시키고 나머지는 원형 모양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샴프에는 해당 점자 이외에 나머지 빈 점자 자리에도 크기는 다르지만 점자를 똑같이 표시해두는 바람에 제가 만지기에는 모든  점자가 다 튀어나온 것처럼 정신없게만 만져지더군요.  

그밖에도 지금은 고쳐졌습니다만 초기 현대사의 엘리베이터 제품은 매 층마다 있는 ‘상’, ‘하’ 버튼 중에 ‘하’라는 점자 버튼이 모두 거꾸로 붙어 있었습니다.

 제품 출시전에 한번만 더 시각장애인들에게 만져보게 했다면 이런 우스운 실수는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애매한 점자 단어 선택의 문제인데요.

하이트맥주사의 맥주캔에는 ‘맥주’라는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맥주마다 다 ‘맥주’라는 것이지요.

물론 아예 없는 것보다야 백배 낫습니다만 저처럼 ‘하이트’를 먹다가 요즘 새로 맛에 빠져들고 있는 ‘맥스’를 골라낼 방법이 도통 없습니다..~~ ㅋㅋ

아주 오래전 캔음료의 점자 표기붐을 을으킨 비락사의 ‘비락식혜’ 사례는 더욱 극명한 사실을 알려주지요.

 모두가 당시 처음 나온 캔에 붙어있는 점자를 신기하게 너도 나도 만져볼 때였습니다만 그 위에 붙어있는,

  ‘음료’

라는 글자에는 모두 경악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캔은 음료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이 안에 출렁이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다른 방법으로 스스로 탐구학습을 하시라는 것인지 난감이더군요.

(물론 나중에 대부분 식혜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실제 시각장애인들도 궁금해하는 것이 제품의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최소한 일반인들이 공유하는 실제 제품의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일반 정안인들처럼 각종 매스컴에 노출되어 있고, 정확한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여기에는 해당 제품에 사용될 수 있는 점자의 여유공간이 차이가 있고, 일부는 매 제품마다 정확한 주물을 짜서 각자의 명칭을 구현하기 난감한 면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이점은 아마 별도로 시각장애인계의 전문 그룹과 해당 업체간의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최소한 시각장애인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거나, 잘못 사용하여 위험이나 큰 손실을 치를 수 있는 제품들을 우선하여 점자 표기가 부착될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이 마련되었으면 하구요, 기업 차원의 보다 많은 자발적 관심도 더욱 기대해 봅니다.

다시 한번 시각장애인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기업 관계자분들게 감사 드립니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