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스케치

어느 시각장애인의 보행기 1

tosoony 2009. 6. 16. 00:34

지금의 내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온 지도 어느새 만 2년여가 흘렀다.

분양을 받은 새 아파트를 꾸미는 설렘으로 힘든 것도 모르고 망치질을 해대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아파트를 둘러싼 우래탄 산책길을 아우른 나무들의 녹음이 하루가 다르게 우거지면서 이젠 제법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다.

직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집을 마련한 탓에 매일 아침 저녁 10분씩 헐레벌떡 택시로 통근을 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저지른 이사는 대체로 성공이었다.

그 덕에 1200세대가 넘는 큰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아들 녀석 방도 하나 챙겨줄 수 있었다. 또 아파트 바로 곁에 우뚝 선 식장산의 신선한 공기를 매일 호흡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원래 작심한 대로 걸어서 통근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짭짤한 일거삼득인가 말이다.

그런데 분양 신청을 하기 전 새 아파트의 조감도를 눈대중으로 보고 가족끼리 결정한 '보행 가능'이라는 의지는 이사 첫 날부터 난관에 봉착해야 했다.

 신시가지로 반듯하게 구회지어지고 그 경계를 따라 놓인 차도에는 하나같이 음향신호기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공사 당시 토지공사측에서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직접 찾아와 장애인을 위한 시설 착공에 필요한 자문을 얻어갔다고 한다. 당시 경찰청 교통 담당자와 공사 관계자는 우리 학교 주위에 점자블록과 몇 군데 차도에 음향신호기를 설치하기로 결정했고, 나역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가 보행할 지역에도 음향신호기가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 모든 네거리를 다 돌아다니며 확인할 수도 없었고, 전화로 어디 어디에 음향신호기가 놓이냐고 물어보아도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뚜껑이 열린 첫 날 알게 된 결과는 온전히 통근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1, 2개의 차도를 무단횡단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내게 실로 두려움이었다.

중학교 때였던가. 실명한 지 얼마 안되어 전학으로 들어선 맹학교에서 배운 보행 기술이라곤 생활적응 시간에 약시 친구와 손잡고 뒷산으로 함께 놀러간 것, 학교 운동장에서 숨바꼭질한 게 전부였다.

고등학교에 올라서도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그리 썩 개선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외출은 약시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도 대학 시절 자취집에서 가까운 캠퍼스와 강의실을 찾기 위해 터득한 흰지팡이 보행 기술은 취직 이후 통근을 마치고 집 앞에 내려 내가 사는 아파트를 찾는데 아주 요긴하게 이용되었다는데 위안을 삼을 수나 있을까.

아무튼 그렇게 취약한 토대위에서 저지른 단독 보행이라는 목표는 신호등 무단 횡단이라는 난관앞에 한 순간 꼬리를 내리고 말았고, 동료 정안인 교사와 아내의 도움으로 하루 하루 무기력한(?) 생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또다른 시각장애 후배 교사는 이러한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흰지팡이와 청각 하나만을 의지한 채 당당히 무단 횡단을 일삼으면서도 몸성히 직장생활을 하였으니, 이건 참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는 그 친구를 뒤따라 간 적이 있었는데, 안전 보행의 비결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그저 주위가 조용하면 지팡이를 내딛고 건너간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하냐는 말에 흰지팡이만한 신호등이 없다나... 대량난감이 따로 없었다.


그 때부터 나의 민원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아무리 내가 보행에 재주가 없고 소심하다기로서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신호등이 없다면 모르지만 신호등의 색깔을 알지 못한 채 횡단보도 앞에서 주위가 조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내겐 만용일 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매일같이 시청, 구청, 경찰청은 물론 음향신호기 업체를 총동원하며 전화와 홈페이지 검색을 통해 관련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때로는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가르치는 맹학교의 학생수를 몇 배로 불리기도 했고, 교통사고가 날 뻔 했다는 긴박한 거짓말도 섞어가면서 음향신호기 설치의 중요성을 사방에 설파했다.

그 덕에 지역의 음향신호기 설치는 해당 경찰청 교통계 담당자분의 판단과 민원 요구에 따라 예산 범위안에서 설치해 주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음향신호기가 유도기와 신호기로 나누어지되 유도기는 표준이 정해져 있으나 신호기는 아직까지도 표준이 정해지지 않아 부실이 속출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 해 나의 민원이 모두 받아들여져 하반기에 설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회답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다른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즈음 모 인터넷 신문기자가 전국에 설치중인 음향신호기가 부실투성이에 표준도 없는 엉터리라는 기사를 연일 내보냈고, 관련 단체에서는 당장 음향신호기 설치를 중단하라는 민원을 정부에 내는 바람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설치 일정이 덩달아 모두 무기한 연기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일부 음향신호기 업체들은 해당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단가가 너무 낮다며 계속 유찰을 시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표준이 정해지고 수지타산이 맞는 날까지 음향신호기 설치가 무기한 미루어짐으로써 그사이 발생하는 시각장애인의 교통사고는 누가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나는 이러한 모순에 대해 경찰청 담당자와 시청 예산 담당자분들에게 여러 차례 귀찮아할 정도로 설명을 드렸다.

다시금 시간은흘러 춘삼월에 신청한 민원은 흰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로 변해 있었고, 마침내 12월 26일 기다리던 음향신호기가 아파트 앞에 설치되었다.

편도 2차선밖에 되지 않는 평범한 차도를 리모콘으로  음향신호기를 동작시켜 혼자 건널 때의 감회는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2년이라는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를 둘러싼 차도들에서 음향신호기 소리를 듣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종종 음향신호기가 고장나거나 오동작할 때면 나는 으례 아무렇지도 않게 지역의 교통계 경찰청 담당자분께 문자를 넣는다.

"어디 어디 음향신호기 또 고장났네요~~ 부탁드려여~~"

그러면 즉시 답문자가 온다.

"점검 후 수리 완료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루 20분 정도 걸리는 작은 보행길이지만 흰지팡이와 리모콘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출퇴근은 이렇듯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지역의 시각장애인들의 안전한 보행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내 일처럼 헌신적으로 수고해주시는 한승훈 경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토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