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교육법과 시각장애인
우리나라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아 부모들의 염원이었던 '장애인 등에 관한 특수교육법'(이하 장애인 교육법)이 지난 5월 26일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지난 정부 시절 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과 함께 장애인계의 의미있는 발전 사례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 금번 장애인 교육법은 무엇보다 장애인들 스스로의 목소리와 장애아를 직접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살아있는 요구가 중심이 되어 초석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여러 분야의 요구사항을 담는 과정에서 실제 교육 현장과의 괴리와 예산 등의 불일치로 오는 문제가 이미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금번에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교육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시각장애 교육 현장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치료교육 폐지에 따른 보행교육의 내실화가 시급하다.
금번 신설된 법률안에 의하면, 기존 치료교육에 대한 개념이 치료지원으로 바뀌고 기존의 치료교사제가 폐지되는 대신 이들이 맡아온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의 치료교육을 국가면허 또는 국가공인 민간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치료사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맹학교 치료교육 분야의 하나인 보행지도의 경우 외국에서와 같이 대학원 과정의 보행학과나 국내 보행지도사 과정도 체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에게 이를 위탁할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빠듯한 맹학교 교육과정상 어떤 시간을 보행지도와 일상생활지도로 대치할지도 시급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국내 일부 대학 특수교육과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보행재활 전문가 양성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하겠다.
독립보행은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뿐 아니라 직업 및 경제활동은 물론 나아가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보행교육에 관한 내실있는 보완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특수학교 교원 배치상의 모순이 해결되어야 한다.
금번 장애인 교육법 제22조 '특수학교 및 특수학급에 두는 특수교육 교원의 배치 기준'에 따르면, 법 '제27조제3항에 따라 배치하는 특수교육 담당 교사는 학생 4명마다 1명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본 조항은 그간 특수교사의 부족에 허덕여온 일선 특수학급에는 맞을지 모르나 일반학교와 동일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의 경우 오히려 교사의 부족을 심화시키는 모순이 있다.
가령, 필자가 근무하는 맹학교의 경우 2008년 교사 총원은 41명에 전체 학생이 130명이므로 이를 4명당으로 계산하면 33명만 근무해도 된다는 결론이 된다. 이는 실제 맹학교의 교육을 전혀 고려치 않은 조항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현재 맹학교는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국민공통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일부 교과를 심화 선택하여 운영하고 있고, 재활 과정을 포함한 고등부 2~3학년에서는 전문선택 교육과정으로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직업교육인 이료를 10개 교과 112단위를 교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공과 운영 등 전문 교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일부 맹학교 이료교사 중에는 주당 20시간이 넘는 과도한 수업에 허덕이는 사례가 많은 실정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또는 해당 지역 교육감이 40% 범위내에서 배치 기준을 가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열악한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현실에서 얼마나 예외가 받아들여질지 의문시되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특수교사 증원이 요구된다.
새롭게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최근 내년도 공무원 신규채용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라 당장 2009년 특수학급의 증설과 특수학교의 개교 및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아울러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배치해야 할 교사 등 특수교사의 수요는 각 시.도교육청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신청한 인원만도 1,350명에 달하지만 정부는 이마저도 정원동결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해 버렸다. 특수교사 정원 확보율이 71%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 년간의 투쟁을 통해 제정된 장애인 교육법이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무너져 내리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금번 조처는 설상가상으로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학생 4명당 1명씩의 교사 충원 제도하에서 기존의 동료 교사마저 내보내야 하는 맹학교의 모순을 더욱 악화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러한 단견과 임시처방적인 생색내기에서 벗어나 진정 특수교육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제도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지난 5월에 시행된 장애인 교육법의 문제점을 시각장애 교육의 입장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와 생산적 복지를 새 정부의 핵심 모토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그에 따라 기존의 여러 정책들이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재정비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과 특수교육은 경제성과 성과 중심의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공익적 분야이자 마지막 안전망이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가 부족한 어려운 세상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성장이라는 구호는 누구에게나 귀가 솔깃한 관심사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배제되고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선진국과 경제강국을 필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진정한 특수교육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우리 모두의 깨어있는 관심을 기대해 본다.
- 브레일 타임즈 칼럼에서 문성준.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각장애 교육의 페러다임 변화를 기대하며 (0) | 2011.02.13 |
---|---|
마음의 담장 사라지게 한 대전시청 (0) | 2008.12.15 |
음향신호기 개선 건의 (0) | 2008.04.09 |
시각장애 교사를 생각하며 (0) | 2005.05.17 |
자존심 (0) | 2005.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