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에게 한 해 농사를 정리하는 추수의 계절이 가을이라면 매년 2월은 교육계에서 한 해 동안 이루어진 교육에 따른 수확으로 분주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쓰기에 앞서 그간 어려운 특수교육 현장에서 땀흘리며 학생들 교육에 헌신하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지난 한 해 우리나라 교육계는 어느 해보다 많은 사건들로 인해 변화의 파고를 겪어야 했다. 경쟁과 학력 신장을 강조하며 출범한 새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며 선출된 일부 지방 교육 수장들의 다양한 교육 실험이 시도되었으며, 교권의 회복과 학생의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론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한편 지난 한 해 시각장애 교육에서는 8차 교육과정 개편과 직업 교육의 강화에 따라 맹학교 이료 교과서가 새롭게 집필되고 대학 합격자 수가 증가하는 등 외적인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부 교단의 문제가 매스컴에 오르는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에 필자는 21세기 시각장애 교육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해 오늘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교육 환경 변화에 따른 우리 내부의 대처에 대해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의학의 발달과 국민소득의 증가, 컴퓨터와 각종 공학기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맹학교에서는 전맹 시각장애 학생보다 저시력 학생의 수가 월등히 높아졌으며, 상당수 저시력 학생들이 맹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맹학교라는 물리적 공간과 제도화된 교육을 중심으로 시각장애 교육 정책을 펼쳐 왔으며, 담장 밖에서 힘들게 수업을 받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맹학교에 다니는 학생수는 나날이 감소하고, 교원 및 재정 감축에 대한 위협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는 등 새로운 환경 적응에 대한 모색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맹학교에서는 재학생 이외에 관내 일반학교에 통학하는 저시력 학생의 수를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시기능 평가와 학습 지원 등의 순회 서비스 등을 제공함으로써 맹학교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시각장애 인재 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질높은 직업교육 모델 개발을 위해 힘써야 한다.
안마사 자격 제도는 국가가 보장하는 시각장애인만의 유보 직종으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삶 유지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안팎에서 자행되는 무자격자의 난립과 업권 침탈로 인해 정상적으로 맹학교 이료 직업교육을 이수하고도 사회에서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생계 자체를 위협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편 2009년부터 일부 맹학교를 중심으로 시각장애 학생의 질높은 안마 창업과 전문 이료 기술 습득을 위한 학교기업형 안마실습실 건축과 대단위 창업 훈련이 모색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와 함께 생활 밀착형의 소규모 개인 안마원 창업에서 요구되는 마케팅, 재정, 운영 기술 등의 전문적인 기술 등을 학교 현장에서 연마함으로써 실질적인 직업 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셋째, 수요자 중심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대부분의 맹학교에서는 갈수록 학령기의 단순 시각장애 학생보다 중도 실명자와 중증의 중복장애 학생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에 따라 사회 경험과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 실명을 함으로써 심리적, 정서적으로 갈등과 혼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중증의 중복장애 학생에게 요구되는 물리치료 등의 치료 재활 서비스에 대한 학교 현장의 요구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 일선 맹학교에서는 인력과 재정면에서 이들에 대한 요구를 모두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바람직한 재활을 위해 전문 상담 인력의 충원과 관련 치료지원 서비스의 제공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페러다임 변화에 따른 철학이 모색되어야 한다.
필자는 얼마 전 우연히 미국 동부의 맹학교와 시각장애 연합회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발달된 교육 재활 서비스를 경험하러 간 자리에서 필자는 의외의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미국에서는 점자정보단말기, 점자프린터기, 확대독서기 등의 공학기기들이 학생이나 취업을 한 시각장애인에 한해 제한적으로 무상 지원되었고, 우리나라와 같은 활동보조인이나 직업보조인 등의 제도는 아예 없거나 시각장애인 본인이 이동과 재활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서비스가 종료되곤 했다. 열흘 남짓 찾아다닌 맹학교들과 기관들에서 그들이 강조하는 공통적인 단어는 오직 '독립심'이었다. 독립심이 있을 때에야 독립 보행에 나서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선택권을 향유하며 장차 직업을 통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논리로, 그러한 능력을 갖춘 자에게만 지원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맹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점자정보단말기와 확대독서기 등의 공학기기가 주어지고 있고,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빌어 통학과 외출을 하며, 관공서와 복지관에는 연일 심부름센터 차량 증차를 요구하는 민원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안정된 시스템이 필요하며, 장애인에 대한 교육권 확보를 위한 지원 역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스스로 도전하려는 장애인 스스로의 용기와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교육 현장에서도 단순히 학생에 대한 양적 물질적 지원 확대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원이 학생의 인성 개발은 물론 독립과 재활 및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체계화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도 전국의 맹학교에서는 졸업과 입학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 오늘의 어려움에 포기하고 무력해지기보다 새로운 변화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성공의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견지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아직 희망적이다.
- 2011년 2월 15일자 점자새소식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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