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준(대전맹학교 교사)
얼마 전 여름휴가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차량을 이용해 새로 생긴 민자 고속도로 휴게소의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각종 편의시설을 구비한 쾌적한 최신 시설이라는 홍보에 기대를 하고 찾은 화장실에서 필자는 적잖게 당황하였다.
이유는 해당 화장실이 남성용 공동 화장실로 들어서는 좁은 통로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정작 이성 안내자가 화장실을 안내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개인용 화장실 내 좌변기의 물을 내리는 버튼이 뒤편 감지센서로 되어 있어 지체장애 등 거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편리할 수는 있었으나, 시각장애인에게는 오히려 어느 부분이 센서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탓에 홀로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여년 사이 우리나라도 장애인의 동등한 교육과 직업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이 속속 제정되었다. 특히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및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면서 이전까지 겪어 온 차별과 불편함이 하나 둘 개선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과연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 보장이 현행과 같은 법제정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가라는 데 필자는 의문을 갖곤 한다.
앞에서 제시한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관련 법률에 근거하여 장애인의 이동과 접근성을 고려하여 상당한 비용이 투자된 채로 설치되었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화장실 시설의 설계 과정에서 규정대로는 했을지언정 실제 각 장애인별로 불편함은 없는지 사전에 검토를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용의 낭비와 난처함은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 밠효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공공기관과 특수학교의 홈페이지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웹접근성 지침을 준수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가 개발자들이 지침 문구를 획일적으로 해석하여 홈페이지를 개편한 탓에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사용을 하고자 할 때 오히려 더욱 불편하거나 혼란을 겪는 사례를 자주 접하곤 한다.
또한 대도시 주요 횡단보도 신호등에 설치된 음향신호기의 경우 고장난 채로 방치되는 문제가 연이어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해당 부서의 관리 감독 부재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특히 상당수 조항이 의무가 아니라 권고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과 실제 벌금 조항이 있더라도 문제가 발생될 경우 관계 당국이 이를 행정적으로 집행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등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꼭 강조되어야 할 사항으로 필자는 우리 자신의 관심과 참여하려는 태도의 변화를 들고자 한다.
장애인과 관련한 모든 법률은 혜택을 보는 이들이 있기에 존재하며, 기본적인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많은 시간과 공공의 비용이 크게 요구되는 사업이나 서비스가 정작 사용 주체인 장애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그들로부터 외면당한다면 결국 국가 재정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필자는 수 년전부터 집과 근무지 주위의 주요 횡단보도에 음향신호기를 가설해 줄 것을 관계당국에 건의하였고, 현재까지 주위의 모든 횡단보도에 음향신호기가 설치되었다. 당시 담당 경찰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매년 특정 시기에 관련 장애인단체로부터 민원을 접수받은 바는 있지만 실제 이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로부터 음향 신호기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은 거의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또한 필자는 주요 공공기관이나 박물관 등을 들어설 때마다 현관 로비에 놓인 점자블록을 쉽게 접하곤 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무 기준없이 무질서하고 형식적으로 방치된 채로 놓여 있다는 점에 대한 문제가 과연 지금까지 지적된 적이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얼마 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 중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통해 웹서핑과 검색을 자유롭게 하는 이들이 채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어느 복지관 관계자로부터 상당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집 앞의 횡단보도에 음향신호기가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부름센터 차량의 증차 관련 민원에만 관심이 있다는 푸념을 들은 바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보화 교육에 어려움이 있는 우리의 현실과 위험 시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도로 현실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법률에 따라 값비싼 공공의 비용을 투자하여 완료한 웹사이트나 공공장소의 편의시설물을 장애인이 스스로 사용하지 않거나 잘못된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사이에 고도의 비용이 투입된 이러한 편의시설들은 몇몇 업자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눈먼 돈과 복마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다.
최근 국가적으로 복지 확대에 대한 이슈가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2012년 주요 선거가 몰리면서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여론과 표를 의식한 복지 공약이 쇄도하고 있고, 장애인 단체들 또한 이를 이용하여 각종 민원 해결과 복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복지의 가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장애인의 절실한요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보장은 단순한 법률적 제도의 제정과 설치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보편적 복지국가는 정부의 물량적인 개입 뿐 아니라 이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감시하는 우리들 자신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 2011년 10월 브레일타임즈 포커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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